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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 스님의 마음 읽기] 상념에 빠지다

중앙일보

2025.07.15 08:16 2025.07.1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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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염천을 조금이라도 벗어날 요량으로 이른 아침부터 책상 앞에 앉았는데, 도무지 글 밭일은 진척이 없고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란 망상의 시간만 흘려보냈다. 컨디션은 좋은데 글이 안 써진다며 뒷짐 지고 산만하게 법당을 왔다 갔다 했다. 불공 준비하던 기도 스님이 내 머리를 만져보고는 머리가 너무 뜨거워서 그런 거라며 얼음팩을 머리 위에 얹어주었다. 아~ 어찌나 시원한지, 잠시나마 기분까지 찌릿해지는 느낌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펄펄 끓는 이 지구에도 얼음팩 하나 얹어서 좀 식혀주고 싶다. 지구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 것일까. 대체 어쩌려고 우리는 이 다툼과 욕망을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환속한 도반에 느꼈던 배신감
지나고 나니 옹졸한 방패막
남에게 상처 주는 줄 몰랐네

김지윤 기자
예전에는 아무리 더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태양 눈초리가 매서울수록 짙어지는 그림자 밑에만 숨어있어도 여름은 견딜 만했다. 내 고향은 강가를 따라 논밭이 쭉 연결되어 있어 강바람에 한숨 돌리기도 괜찮았고, 해 질 무렵이면 강 끝까지 길게 드리운 붉은 노을을 풍경 삼아 집으로 향하곤 했다. 나무 그늘도 많아 친구들과 뛰어놀기에도 좋았다. 아침마다 들려오는 새들과 가축 울음소리가 좀 지겹긴 했지만, 그래도 내성적인 나에게는 모두가 친근한 동무들이었다. 빨래 바구니를 머리에 인 어머니를 따라 냇가에 가서 양말 한 짝을 열심히 빨던 모습이 아직도 눈가에 선하다. 그때의 그 어머니도 나른한 고향 마을도 이제는 더 이상 내 삶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를 함께 다닌 동창 중에 나보다 먼저 출가한 친구가 있었다.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어렵지 않게 출가로 이어졌던 모양이다.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한다며 연락이 왔을 때, 나는 먼 길을 찾아가 머리 깎은 친구의 손을 잡았다. 이전에 알던 친구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민머리에 잿빛 승복을 입은 낯선 스님만이 존재했다. 그러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이 영적 힘을 발휘하였는지, 존경심이 일었다. 밤하늘의 별이 무수히 쏟아져 내렸던 가을밤의 산사가 지금도 내 마음의 저장고에서 아름답게 빛난다.

출가 생활을 한창 시작하고 있던 내게 어느 날 손님이 찾아왔다는 전갈이 왔다. 종각 앞으로 나가보라는 말을 듣고 나갔는데, 아는 얼굴이 아무도 없어 이상하다 싶었다. 잘못 전달된 말인 줄 알고 체념하여 돌아서는 순간, 멀리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바로 그 친구였다. 그런데 이번엔 쉽게 알아볼 수 없었다. 내 앞의 그는 성숙미가 흐르는 속세의 여인이었다.

무슨 일인지 놀라긴 했어도 나는 친구가 반갑지 않았다. 머리 깎은 모습이었더라면 달랐을 것이다. 함께 손을 맞잡고 평생 서로에게 힘이 되는 도반(道伴)이 되자고 약속했건만, 그날의 약속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것인가. 미리 언질이라도 주지. 옹졸해진 나는 순식간에 외로워졌다. 우리를 에워싼 인연의 끈을 야멸차게 끊어버리고, 눈물이 나는 걸 가까스로 참았던 기억이 난다. 분명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배신이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날로부터 그는 내게 더 이상 도반도 친구도 아니었다. 그 결과, 평온을 깨트리는 뒤엉킨 감정을 나 홀로 끌어안고 오래도록 응시해야 했다.

지난날 나를 쓰라리게 했던 변곡점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다 부질없는 기대와 욕심 때문이었다. 모두가 각자 자기 인생이 있는데, 제멋대로 상대의 인생을 재단하고 인연을 끊어버렸으니, 이 얼마나 우매한 결정인가. 내면의 갈등은 다 내가 가진 욕심 때문이었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자기가 원하는 바에는 끝이 없다.

세월은 흐른다.

살면서 어떤 내적 갈등을 겪으며 살았더라도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모든 것은 변한다. 나는 유년 시절부터 차갑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입을 안 열고 웃지 않으면 어려워서 말을 못 붙이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나이가 들어가니 온순한 마음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주는 유연함이다.

어려서는 세 치 혀를 칼처럼 휘둘러 인연을 자르는 게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잘라내는 건 우리(출가자) 전문이니까. 하지만 에둘러 변명하자면, 젊은 날의 어린 비구니가 자신을 지켜내려는 옹졸한 방패막이였다. 그런데 우스운 건, 남에게 준 상처는 생각도 안 하면서 남이 내게 준 상처에만 연연하며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입으로는 자비 운운하면서 정작 가슴은 냉담으로 일관하는 태도 말이다.

출가자로 살다 보니, 여러 이유로 불행의 자락은 쉽게 와 닿는데, 행복은 여간해서 느끼지 못한다. 감사하다는 말은 많이 해도 행복하다고 말한 적은 별로 없었으니까. 누구라도 무탈하면 최선이라는 무심한 답을 앵무새의 입처럼 달고 살지만, 어쨌든 오늘은 모두에게 다정한 마음으로 나의 상념을 전하고 싶다.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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