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 물어도, 어떤 공격을 해도 참고 견디면서 북극항로 대응, 1극 체제 극복 때문이라고 대답해야지.’ 전재수 해양수산부장관 후보자는 이리 작심하고 나온 듯했다.
지난 14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해수부를 왜 부산으로 옮기느냐’ ‘문체부를 광주로 옮기자는 말도 나온다’ ‘정치적 목적 아니냐’는 야당 의원들의 공격성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거의 모두 ‘북극항로 대응’과 ‘수도권 1극 체제 극복’으로 귀결됐다. 해수부 부산 이전이라는 업적을 남기고 내년 시장 선거에 나가려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는 “출마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고 했다. 불출마 선언이냐는 물음엔 “내일 일도 모르는데, 세상일을 어찌 단정할 수 있겠느냐”고 피해갔다.
세종시·해수부 노조 강력 반발
행정 효율, 외청 설립 등 논의없어
사회적 합의 없인 균형발전 난망
세종시는 해수부 부산 이전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세종해수부시민지킴이단·세종시소상공인협회·세종시여성단체협의회 같은 단체가 연일 반대 시위를 한다. 최민호 세종시장은 해수부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해수부 노조는 삭발식을 하고 단식투쟁을 한다. 부산 이전은 국가균형발전과 행정수도 완성이라는 목표를 훼손시키는 것이며 어려운 세종시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기에 절대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런 반발에도 해수부의 부산 이전은 기정사실로 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재명 대통령이 밀어붙이고 있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신속히 준비하라고 지시하고, 충청권을 향해선 “대전·충남·세종은 행정수도 이전으로 혜택을 받고 있다. 다 가지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균형발전 차원에서 기준과 목표가 합당하면 수용하리라 믿는다고 했다. 해수부가 들어올 건물로 부산 동구의 한 빌딩이 결정됐다.
이 대통령 말대로 국가균형발전차원에서 해수부를 부산으로 옮길 수 있다. 문제는 지금처럼 밀어붙이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공약 실행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강조했다. 주 4.5일제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사회적 합의로 정년 연장을 추진하고, 국회와 대통령 집무실의 세종시 이전도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진하겠다고 했다.
사회적 합의를 강조했던 건, 합의를 거치지 않은 정책 추진이 가져올 부작용을 걱정했기 때문일 거다. 그런 사회적 합의가 지금 해수부 이전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세종시뿐 아니라 인천을 비롯한 여러 지자체가 반발하고, 상당수 해수부 직원이 반대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2017년을 전후해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서울 소재 정부 부처의 세종 이전이 늦네, 아니네 했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 해수부의 부산 이전 과정은 전광석화다. 해수부 이전에 관해 제대로 된 토론회 한 번 없다. 숙의 과정이 생략돼 있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이처럼 서둘러야 하는가. 대통령이 약속한 행정수도 완성에 정말 차질은 없는가, 행정의 효율성은 어떤가, 해수부 직원들의 근로조건 악화나 생활여건 변화는 어떻게 지원해야 하나, 해수부 본청 이전 대신 ‘북극항로청’ 같은 걸 만들어 부산에 두는 건 어떤가, 부산을 해양수도로 육성하려는 거면 ‘해양수도개발청’을 만드는 것은 어떤가. 논의하고 합의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대통령은 세종 행정수도 완성 외에도 다양한 균형발전 전략을 내놨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 거점 국립대 육성을 통한 서울대 10개 만들기, ‘5극 3특’ 전략이다. 5극은 5대 초광역권(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 구성, 3특은 3대 특별자치도(제주·강원·전북)의 자치 권한 및 경쟁력 강화다.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은 취임사에서 ‘5극 3특 균형발전 전략 달성을 위한 설계도 마련’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지금 전북 완주군과 전주시 통합을 둘러싸고 갈등이 상당하다. 통합을 반대하는 완주 주민들이 시위를 하고 지방의회 의원들은 삭발을 했다. 김관영 전북지사는 주민을 설득하겠다며 현 주소지인 군산을 떠나 완주에 아파트를 구해 이사갔다. 기초단체인 완주-전주 통합 과정도 이런데 5극 3특 같은 대형 균형발전 전략 추진 과정에서 이보다 더한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럴 때마다 이건 대통령의 공약이고, 나라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며 밀어붙이기만 할 것인가.
해수부 이전은 특정 지역에 예산을 투입해 다리를 놓거나, 공항을 만드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하지만 부산 이전으로 세종시가 잃는 것이 분명하다. 그걸 균형발전의 이름으로 누르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어도 설득과 합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게 길게 보면 행정수도 세종과 해양수도 부산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완성시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