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에게 “지난해 제주도에서 우승할 때 봤다”고 아는 체를 했다. 연장전에서 최경주의 볼이 기적적으로 작은 섬에 올라가 파세이브를 해서 우승한 SK텔레콤 오픈 얘기였다. 캐디는 “그때 운이 좋았다”고 했다. 최경주는 “아니다, 신의 뜻이었다”라며 웃었고, 캐디는 “운이 좋은 거였다”고 키득거렸다.
경쟁이 치열한 투어에서 선수와 캐디는 대부분 긴장 관계다. 최경주는 캐디와 농담을 하면서 행복하게 투어생활을 하는 듯했다.
최경주가 9년 만에 메이저 무대에 나왔다. 17일 북아일랜드 로열 포트러시 골프장에서 시작되는 디 오픈 챔피언십이다. 그는 2016년 PGA 챔피언십을 끝으로 메이저대회에 나오지 못하다가 지난해 시니어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이 대회 출전권을 땄다. 그의 53번째 메이저대회 출전이다.
젊을 때 딴 역대 우승자 자격으로 50대에도 메이저대회에 꾸준히 출전하는 선수는 더러 있지만, 50대에 들어 메이저대회 출전권을 새로 따는 선수는 흔치 않다. 뚝심의 최경주니까 해낼 수 있었다.
1998년 이 대회가 최경주의 첫 메이저대회였다. 2007년 커누스티에서 열린 디 오픈 최종라운드를 공동 3위로 출발했다가 공동 8위로 끝냈다. 2008년 로열 버크데일 대회에서는 그렉 노먼에 2타 차 공동 2위로 최종라운드를 시작했다. 최경주는 “마지막 홀 쿼드러플 보기를 하는 대형사고를 치면서 순위가 밀렸다”며 웃었다.
디 오픈은 메이저 대회 중 처음으로 그에게 문을 열었고, 우승 기회를 줬고, 지난해 시니어 오픈 우승컵을 선사했다. 디 오픈은 3위, 4위, 8위를 한 마스터스와 더불어 최경주가 가장 풍성한 성과를 낸 메이저대회다.
최경주는 체력은 잘 유지하고 있다. 술과 커피, 탄산음료를 끊고 운동을 열심히 한다. 시니어 투어는 카트를 타도 되지만 걸어 다닌다. 시력은 어떨까. 그는 “그린 경사 보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노안이 와서 흐릿한 날 티샷할 때 문제가 있을 때도 있다. 훅 라인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어드레스하면 슬라이스 라인으로 보이는 것 같은 헷갈리는 때가 있다”고 했다.
55세의 최경주가 젊은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물론 쉽지는 않다. 최경주는 “오늘 바람이 불지 않으니 선수들이 파 4홀의 페어웨이 벙커는 다 그냥 넘겨 버리고 파 5홀에서 4번 아이언을 치기도 하더라”고 말했다.
바람이 불면 장타자들이 반드시 불리한 건 아니다. 그러나 바람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인내심이 부족한 선수들이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면 최경주의 장점이 조금 더 빛을 발할 것이다. 최경주는 “이 코스는 링크스치고는 그린 경사가 심해 그린 속도가 느리다. 지난해 시니어 오픈 우승할 때 이 정도의 그린 스피드였다”고 말했다.
이 경기는 그의 PGA 투어 499경기째다. 최경주는 “이 대회에서 컷통과를 한다면 PGA 투어 역대 우승자 카테고리에서 순위가 올라가 올 말이나 내년 초 500번째 대회에 참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주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최경주는 현지 시간 17일 오전 6시 46분, 한국 시간으로 오후 2시 46분 티오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