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을 더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교내에 CCTV(폐쇄회로TV)를 추가로 설치하는 사업이 교사·행정실 직원 사이 갈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초 대전의 한 학교 안에서 일어난 초등학생 피살 사건을 계기로 추진되는 사업이다. 하지만 부산의 일부 초등학교에선 교사와 행정직원이 ‘누가 책임지고 CCTV를 설치·관리 업무를 맡을 것이냐’를 두고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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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장비는 행정실” VS 행정실 “안전 업무는 교무실”
15일 부산시교육청에 따르면 교육청은 지난달 초등학교 303곳에 ‘안전 사각지대 CCTV 확충 예산’을 각 300만원씩 지급했다. 지난 2월 10일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김하늘양(8)이 교사 명재완(여ㆍ48)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계기로 학내 안전 강화를 위해 추진되는 사업이다.
300만원은 CCTV 4대를 추가하거나, CCTV 2대를 추가하고 영상 기록ㆍ보관 장치를 고급 사양으로 교체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한다. 부산시교육청은 공문에서 각 학교 여건에 따라 사업을 완료하고 내년 2월까지 결과를 통보해달라고 당부했다. ▶CCTV 설치 위치 ▶기존 진행 중인 교내 공사 ▶학사일정 등을 검토해 사업을 추진하란 의미다. 각 학교는 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나라장터에서 CCTV를 구매하며, 실제 물리적인 설치는 전문 업체에서 한다.
그런데 일선 학교에선 구매계약 등 설치 관련 업무를 누가 담당할지를 두고 갈등이 일었다. 일부 교사들을 중심으로 “CCTV는 장비에 해당하는 만큼 교사가 아니라 행정직원들이 맡아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이에 행정직원들은 “단순 장비가 아니라 학생 안전과 직결된 것이니 생활안전부(교무실) 소관”이라며 맞받았다.
부산시교육청은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건 알지만, 정확히 몇 곳의 학교에서 일어난 일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취재진이 동·서부산 초등학교 10곳에 전화를 걸어봤더니 3곳에서 “업무 주체를 놓고 갈등과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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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ㆍ공무원 노조 ‘대리전’도
갈등이 커지며 각 노조 ‘대리전’도 벌어졌다. 전교조 부산지부는 조합원들에게 ‘단체협약과 교육부 고시 등에 따르면 CCTV 같은 시설 사안은 교사의 업무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문자 메시지를 조합원들에게 보냈다. 전교조 부산지부 관계자는 “일선 교사들로부터 여러 건의 문의가 있었다. 의견 수렴, 협조는 할 수 있지만 CCTV 설치에 따른 행정 절차를 따져보면 교사 업무로 보기 모호하다”고 메시지 발송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부산 교육공무원노조도 노조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맞불’을 놨다. 노조는 이 문자 메시지에서 “단순 시설관리ㆍ화재예방이 아니라 사각지대에 CCTV를 설치해 귀가 안전망을 구축하는 게 사업 목적”이라며 행정실이 아닌 생활안전부 업무라는 점을 강조했다. 노조는 “일부 교사노조가 교사업무 경감을 주장하며 ‘업무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교마다 추진 방식은 제각각이다. 학생 수 기준 부산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A초등학교에선 이런 ‘밀당’ 끝에 결국 행정직원도 교사도 아닌 방과후학교를 담당하는 늘봄실장이 맡았다고 한다. 이 학교엔 2학기나 되어야 CCTV가 추가 설치될 것으로 보인다. 전교생 1000명이 넘는 부산진구 B초등학교 교감은 “행정실이 맡아 추진하고 있다. 급식실 등 교내에서 진행중인 다른 공사 일정을 검토해 설치 시기를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초등학교 행정실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대전 사건 이후로 교사ㆍ행정직원 간 책임 소재가 매우 예민한 문제가 됐다. 이번 사업의 경우 이후 교내에서 안전사고가 생겼을 때 CCTV 위치가 적절했는지 등 책임 문제를 신경쓰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진경 참교육학부모회 부산지부장은 “교사와 행정직원들이 최우선 보호 대상인 학생의 안전을 서로 떠 미루고 있는 상황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고 책임자인 학교장이 내부 갈등을 조율하고, 교무실과 행정실이 협조해 가장 효과적인 위치에 신속히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CCTV 확충 사업은 전국에서 추진중이다. 대전 사건 직후 전국 17곳 시도교육청 교육감 간담회에서 CCTV 설치 확대 등 안전 관리 강화 방안이 제안되면서다. 다만 방식 및 추진 시기는 조금씩 다르다. 사건이 일어난 대전의 경우 11억5800만원을 들여 1학기 시작 전 202개 학교 CCTV 2000여대 추가 설치를 마친 것으로 파악된다. 대전에서도 CCTV 추가 설치 업무를 누가 담당할지를 놓고 마찰이 있었지만, 학교마다 교장 결정에 따라 업무 분장을 마쳐 진행한 것으로 대전시교육청은 파악했다.
이외에도 대구(158개교 3억4400만원) 광주(28개교 32억원) 충북(66곳 1억7500만원) 경남(159곳 5억9200만원) 등 지역에서도 교육청 예산, 혹은 학교 자체 예산을 들여 CCTV 확충 및 교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