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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잔치 할 돈으로 '라이브 공연장 오픈'…약속 지킨 변호사

중앙일보

2025.07.15 13:00 2025.07.1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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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 마포구의 공연장 우무지. 포스트 하드록 밴드 해리빅버튼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 이성수는 공연 시작부터 “달리자”고 했다. 질주하는 전자 기타와 베이스, 드럼. 100석 규모의 공연장은 금세 터져나갈 듯한 음악 소리로 가득 찼다.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의 공연장 우무지에서 밴드 데뷔 14주년 기념공연 중인 포스트 하드록 밴드 해리빅버튼. 우무지는 비영리 단체인 사단법인 코드가 운영하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지난달 말 문을 열었다. 현재 개관 기념 릴레이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김한별 기자

공연장 우무지는 지난 2021년 열린 온라인 라이브 뮤직 페스티벌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우무지)’에서 유래했다. 코로나 19로 폐업 위기에 몰린 라이브 공연장을 돕기 위해 마련된 행사였다.

이성수가 미국 아티스트들의 ‘세이브 아워 스테이지(Save Out Stage)’ 운동을 소개하는 글을 SNS에 올린 게 계기가 됐다. 법무법인 광장의 윤종수 변호사가 자신이 대표로 있는 비영리 단체 코드와 함께 행사를 기획했고, K팝 팬덤 플랫폼을 운영하는 엔터테크 스타트업 스테이지랩스의 백명현 대표가 기술 지원을 자청했다.

2021년 온라인 뮤직 페스티벌 '우리들의 무대를 지켜주세요(우무지)'을 성사시킨 세 주역이 4년 뒤 문 연 우무지 공연장 무대에 다시 모였다. 왼쪽부터 공연장을 운영하는 비영리 단체 '사단법인 코드' 대표인 윤종수 변호사, 포스트 하드록 밴드 해리빅버튼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 이성수, 엔터테크 스타트업 스테이지랩스의 백명현 대표. 함께 록 스피릿(Rock Spirit)을 상징하는 손동작을 취했다. 김한별 기자

1주일간 총 67개 팀이 릴레이 공연에 참여했고, 온라인 관람료와 후원·기부금으로 당초 목표(500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돈을 모았다.

그 후 3년 뒤인 지난해 7월, 윤 변호사는 자신의 환갑 모임에서 약속을 하나 했다. 우무지 수익금 잔액과 어머니께서 ‘환갑잔치하라’고 주신 돈, 당일 모임 참석자들의 기부금을 모아 “오프라인 공연장을 열겠다”고.

그리고 정확히 1년 뒤인 지난달 말. 우무지 공연장이 정식 오픈했다. 일반 음식점으로 등록된 여느 홍대 앞 라이브 클럽들과 달리, 공연법을 준수하는 ‘정식 공연장’이다. 이날 밴드 데뷔 14주년 기념 공연을 한 이성수는 “같이 만든 공연장에서 (밴드 데뷔를) 기념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공연장을 운영하는 코드의 대표, 윤 변호사를 공연 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공연장이 남다르다.
“보통 클럽 공연 땐 스피커 2개를 한 방향으로 놓는다. 그래서 ‘윙윙’ 거리고 소리가 잘 안 들린다. 우리는 스피커 5개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천장에 매달아서, 어느 곳에서나 소리가 균질하게 들린다. 나도 이성수도 소리에 진심이다.”

가로로 긴 무대 한쪽에는 공연 장비 외에 대형 TV, 턴테이블 등 AV 장비도 있었다.

-공연만 하는 곳이 아닌 것 같다
“공연 없을 땐 뮤지션들이 아지트처럼 이용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인터뷰·방송을 하거나, 파티·세미나도 열 수 있다. 그래서 편안한 거실처럼 꾸몄다. 우무지가 뮤지션들끼리 서로 교류하고 네트워킹하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

실제로 이날도 해리빅버튼의 공연에 앞서 밴드의 1집 CD를 복각한 LP 음감회가 얼렸다. 관객들은 밴드의 음반과 라이브를 한자리에서 경험하는 독특한 경험을 했다.

-공연장 운영은 처음이다. 어렵진 않나.
“어렵다. 공연장을 자생적으로 운영하려면‘진짜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보통 소규모 공연장은 장소만 빌려주는 대관 공연을 한다. 그렇게 하면 돈을 낼 수 있는 팀만 공연할 수 있다. 우리는 직접 공연을 기획해 다양한 뮤지션들을 무대에 올린다. 그러려니 계속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고, 포스터 만들고 홍보도 해야 한다. 손이 많이 간다.”

-뮤지션들 반응은
“다들 너무 좋아한다. 기획 공연이란 게 결국 아티스트와 협력해 이 판을 키워 나가는 거다. 우리 무대에 섰던 뮤지션들은 우리 공연장을 다른 곳과 다르게 생각한다. 어제 무대에 섰던 팀은 우리 기획에 다 참여하겠다며 ‘불러만 달라’고 하더라.”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나
“시장이 작고 사정이 열악한 공연장이 많다 보니, 계약서를 안 쓰고 공연 정산을 제대로 안 해주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왜 안 해주는지 설명도 안 해주고. 우리는 다 계약서를 쓰고, 사전에 약속한 비율대로 정확히 수익을 나눈다.”

공연을 보러온 또 다른 ‘우무지의 주역’ 백명현 스테이지랩스 대표는 이를 ‘문화적 차이’로 설명했다. 윤 변호사는 법조계, 백 대표는 IT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일하는 방식이나 소통 방식이 공연업계의 관행과는 달랐다는 얘기다.

-기존 코드의 활동과 공연장은 어떤 관련이 있나.
“코드와 코드의 전신인 CCK(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코리아) 활동의 핵심은 ‘오픈 플랫폼에서 사람들이 같이 뭔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었다. 저작권을 풀어 시민들 스스로 새로운 콘텐트를 만들고(오픈 컬쳐), 데이터 장벽을 허물어 시민들 스스로 혁신을 만들어 내고자 했다(오픈 데이터). 뮤지션과 팬의 플랫폼을 지향하는 공연장 우무지의 목표와 같다.”

코드의 이사이기도 한 백명현 대표가 부연 설명을 했다. “ 코드(C.O.D.E)란 이름 자체가 공유(Commons)ㆍ개방(Open)ㆍ다양성(Diversity)ㆍ참여(Engagement)의 약자다. 그 안에 모든 게 담겨 있다”고 했다.

2024년 7월 자신의 환갑 모임 '환장 파티'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윤종수 변호사. 변호사 밴드 '크레이지 코드'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김한별 기자

20년간 코드를 이끌어 온 윤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판사 출신(1993년 임관) 변호사다. IT와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지식재산권, 개인정보보호 등이 전문 분야다. 개인적으로는 록 마니아이자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 처음 기타를 잡았고, 지금도 후배들과 변호사 밴드 활동을 하고 있다. 밴드 이름은 코드에서 따온 ‘크레이지 코드’다.



김한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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