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전직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시험지를 빼돌리려고 하다가 경찰에 붙잡힌 사건으로 안동 지역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범행을 저지른 전직 교사와 학부모가 구속되고 학생은 퇴학 처리까지 예고됐지만 지역 학부모들의 공분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사건은 지난 4일 오전 1시 20분쯤 경북 안동시 한 여고에서 일어났다. 이 학교에서 지난해 2월까지 근무했던 전직 기간제 교사 A씨(31)가 현관 출입기에 지문을 찍고 들어갔고, 이 학교에 다니는 고3 학생의 어머니인 B씨(48)가 동행했다.
━
지문찍고 들어가…비상벨 울려 발각
야심한 새벽 이들이 찾아간 곳은 기말고사 시험지가 보관돼 있던 3층 교무실이었다. A씨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교무실 문을 열었고 교무실에서 시험지를 빼돌리려던 순간 경비 시스템이 울렸다. 놀란 이들은 황급히 달아났지만 다음 날 결국 경찰에 체포됐다.
A씨가 지문을 통해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교내 경비 시스템에 지문 정보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현재 경기도 한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학교 사정을 잘 아는 A씨는 교무실까지 손쉽게 들어가 여분으로 인쇄해둔 시험지를 빼돌리려고 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비밀번호까지 정상적으로 입력하고 교무실로 들어갔는데도 경비 시스템이 울린 것은 시스템 오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시스템이 오작동해 비상벨이 울리지 않았다면 A씨와 B씨는 기말고사 시험지를 챙겨 아무도 모르게 학교를 빠져나갔을 수도 있었던 셈이다. 경북교육청은 이들이 3학년 교무실에 들어가 2~3분 정도 있다가 나오는 장면이 복도 폐쇄회로TV(CCTV)에 찍혔다고 설명했다.
또 학교 측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2월 퇴사한 이후에도 최소 7번 학교를 드나든 것으로 파악됐다. 대부분 시험 기간 밤이었던 것으로 미뤄 A씨의 범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
수 차례 드나들어…상습 범행 가능성
경찰은 A씨가 B씨에게 시험지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거액을 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B씨는 A씨에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기간마다 200만원씩, 2년여 간 약 2000만원의 돈을 입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와 B씨는 2020년 교사와 학부모로 처음 만났다. 2023년 B씨의 딸이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는 A씨가 1학년 담임을 맡기도 했다. A씨가 B씨 딸의 개인과외를 해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법상 이는 불법이기 때문에 경찰은 이 점도 조사 중이다.
학교 측은 지난 14일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열고 B씨의 딸에 대해 퇴학 결정을 내렸다. 지금까지 치른 시험 성적도 모두 0점 처리하기로 했다. B씨의 딸은 주로 전교 1등을 하는 등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해 왔다고 한다. 같은 날 대구지법 안동지원은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데 이어 15일에는 B씨도 구속했다. 경찰은 B씨 딸도 업무 방해 혐의로 입건해 조사할 예정이다.
━
학부모들 항의 이어져…“철저히 조사”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자 안동 지역 수험생 학부모들 사이에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중학생 자녀가 있는 김수정(39)씨는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일어났다니 충격적”이라며 “B씨가 딸을 의대에 보내려고 이런 짓을 벌였다는 소문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파다하다”고 전했다. 해당 학교에는 학부모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경찰은 이들에게 특수 건조물 침입과 업무방행 등 혐의를 적용해 수사하고 있다. 현재 시험지가 유출된 정확한 횟수와 시기, 금전 거래 여부 등을 전방위로 파악 중이다. 또 이들의 침입을 묵인한 혐의로 학교 시설 관리자 30대 C씨도 구속해 수사하고 있다. C씨는 이들의 침입을 묵인하고 이후 학교 CCTV 저장 기간을 단축시키거나 영상을 삭제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북교육청은 현재 해당 학교가 성적 관리 전반에 문제가 없었는지 살펴보고 있다. 또 경찰 수사가 마무리 되면 교육청 차원에서 정식 감사를 시행하고 사립학교재단에 관련 교직원에 대한 징계를 권고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