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을 재개한 지 하루 만인 15일(현지시간) 러시아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무기 제공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자극해 자칫 전쟁을 격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이를 피하려는 움직임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펜실베이니아주 방문길에 기자들과 만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겨냥해선 안 된다”며 러시아 본토 깊숙한 지역을 타격할 수 있는 무기 제공 여부에 대해서도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이 장거리 무기를 제공한다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공격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가능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통한 공격 무기 지원과 50일 내 종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러시아 및 러시아 교역국에 최대 100%의 ‘2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강경 대응 기조를 밝힌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통해 전장의 균형을 맞추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자극해 전쟁을 더 격화하는 상황은 피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반면 러시아는 표면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상하이협력기구(SCO) 외무장관회의 기자회견에서 “‘50일’ 발언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이해하고 싶다”며 “예전에는 ‘24시간’과 ‘100일’이라는 시한도 있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에 달성 목표 시한을 자주 바꿨다고 지적한 것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X(옛 트위터에 “트럼프는 크렘린에 극적인 최후 통첩을 했다. 세계는 그 결과를 예상하며 몸서리쳤다. 호전적인 유럽은 실망했다”며 “러시아는 신경 쓰지 않았다”고 적었다.
다만 러시아 금융권 관계자 사이에선 경제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미 적용된 서방의 대러 제재와 푸틴 대통령의 전시 지출 과다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 러시아 경제가 악화한 상황에서 2차 관세를 감당하기엔 힘들다는 주장이 나온다고 한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무기 공급 비용을 유럽에 전가한 데 대해 유럽연합(EU)은 공개 반발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공하겠다던 17기의 패트리엇만 해도 최대 170억달러(23조 5841억원·1기당 1조3790억원)에 달하며, 이를 단기간에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외교장관회의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미국도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며 “우리가 (미국산) 무기 구매대금을 내면 그건 유럽의 우크라이나 지원”이라고 말했다. 독일·덴마크·스웨덴 등은 패트리엇 비용 분담에 동참했지만, 체코는 “다른 우크라이나 프로젝트에 집중하겠다”며 거부한 상태다.
EU는 슬로바키아 반대로 18차 대러 제재안도 채택하지 못해 오는 16일 합의를 재시도할 예정이다. 지난달 발표된 제재안에는 러시아산 가스 수출관인 노르트스트림을 통한 거래 금지, 러시아 금융 부문 추가 제재, 원유가격 상한선 인하 등의 조처가 담겼다. 시행되려면 27개국 만장일치 찬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