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전 11시 전남 나주시 송월동 한 신축 아파트단지. 아파트 인근 대나무숲 위로 하얀 백로 떼가 날개를 활짝 펴 날아다니고 있었다. 백로 수백 마리가 내는 울음소리는 아파트 단지 전체에 울려 퍼졌다. 백로 떼가 있는 숲으로 다가가자 곳곳에 떨어진 백로의 배설물로 악취가 코끝을 찔렀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백로 떼에 관해 묻자 “골칫덩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리는 시끄러운 울음소리와 배설물 악취가 아파트 단지는 물론, 집 안까지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나무숲에 둥지를 튼 백로 떼는 지난 3월부터 모습을 보이더니 5월 말부터 개체 수가 급격히 불어났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희고 깨끗한 모습의 백로는 청렴한 선비의 상징이라고 들었는데 우리에겐 괴로운 존재”라며 “최근에는 개체 수까지 늘어나 1000마리를 훌쩍 넘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백로는 서식지에서 직선거리로 600m 떨어진 영산강변에서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이곳의 백로떼는 2022년 아파트 사업시행 인가 전부터 대나무 숲에서 서식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올해 초엔 아파트 단지와 150m 이상 떨어진 숲에서 서식했지만, 대나무가 배설물로 괴사하는 등의 이유로 현재는 서식지가 점차 아파트 단지 인근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나주시 관계자는 “야생조류 전문가 등의 자문을 통해 백로 떼가 언제부터 서식했는지, 개체 수가 늘어난 이유, 정확한 개체 수 등을 파악할 예정이다”고 했다.
18개 동(1554가구)이 들어선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특히 숲과 인접한 3개 동(300여 가구)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백로 때문에 큰 피해를 보고 있다. 3개 동과 숲과의 거리는 40~60m에 불과했다. 특히 낮은 층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백로의 깃털과 먼지로도 고통을 받고 있다.
주민 박모(83·여)씨는 “날씨가 선선해지는 저녁엔 창문을 열어두고 싶지만, 악취와 소음 때문에 열 수가 없다”며 “악취 때문에 어지럼증에 시달리고, 심한 날은 에어컨에서도 백로 배설물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입주민들은 “아파트 산책로도 백로떼가 사는 숲 인근을 지나게 돼 있어 고통스럽다”고 호소했다. 김영미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해가 저물면 백로떼로 인한 악취와 소음이 단지 전체에 퍼진다”며 “산책로 곳곳에 백로 배설물이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사체까지 간간이 발견되곤 한다”고 말했다.
나주시에 따르면 지난 5월 말부터 최근까지 백로 관련 민원이 20건 이상 접수됐다. 하지만 백로는 야생생물보호법에 따라 보호를 받게 돼 있어 뾰족한 해결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백로가 떠나기 전까지는 나무를 베는 등 서식지를 없앨 수도 없다.
백로는 따뜻한 남쪽에서 겨울을 나고 번식기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여름 철새다. 주로 3월에 찾아와 서식한 뒤 9월에 남쪽으로 날아간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백로 서식지 이전 등을 촉구하고 있다. 백로가 서식지를 옮긴 후에는 벌목(伐木)이나 나무 가지치기 등을 통해 백로 서식지 이동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 강모(40)씨는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은 알고 있다”며 “다만 주민 피해가 심한 만큼 지자체가 해당 토지주와의 협의 등을 통해 백로 서식지를 옮기는 등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주시는 야생조류 전문가 등과 함께 주민 민원을 해소할 대책을 강구할 예정이다. 나주시 관계자는 “지금 당장 인공 둥지를 만들어도 서식지를 옮긴다는 보장이 없는 데다 타 지자체에서 실패한 사례도 있다”며 “백로가 남쪽으로 날아간 뒤 나무를 베거나, 잔가지를 쳐내는 전정(剪定) 작업을 할지 등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 서구에서도 2012년과 2023년 등 백로떼로 골머리를 앓은 바 있다. 당시 광주천에서 먹이 활동하던 수백 마리의 백로떼는 초등학교 인근 숲과 도심의 가로수 등지에 서식하면서 주민에게 배설물 등 피해를 입혔다. 서구청 관계자는 “백로 관련 민원이 빗발쳐 백로가 오기 전 나뭇가지를 잘라내는 방식으로 서식지 이동을 유도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