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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2조 손실 용인경전철, 지자체장이 배상"…묻지마 사업 철퇴

중앙일보

2025.07.15 23:42 2025.07.16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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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수요 예측과 최소 수입 보장 약정으로 30년간 세금 약 2조원 손실을 초래한 용인경전철 사업에 대해 당시 용인시장 등이 배상해야 한다고 대법원이 16일 판결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사업 실패로 예산상 손해가 발생했을 때 선출직 단체장에게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첫 확정판결이다. 12년 소송 끝에 승소한 용인시 주민들은 “대한민국 지방자치사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이정표”라고 환영했다.
용인경전철. 연합뉴스



대법 “지자체에 예산 손실, 주민소송으로 책임 추궁 가능”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이날 ‘용인경전철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주민소송단’이 2013년 10월 용인시장을 상대로 “용인경전철 사업 책임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라”며 낸 주민소송 재상고심에서 이정문 전 용인시장(2002~2006년)과 한국교통연구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대부분 확정했다.

앞서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지난해 2월 현 용인시장이 이 전 시장과 한국교통연구원 담당 연구원 3명에게 214억원을, 이 중 42억원은 한국교통연구원에게 청구하라고 판결했는데 대법원은 이 전 시장과 교통연구원 측의 배상 책임을 확정했다.

연구원 3명에게 함께 책임을 물으라는 부분은 파기하고 다시 심리하라고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한국교통연구원의 수요 예측 용역 수행과 관련해 연구원들 개인의 행위가 용인시에 대한 독자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하려면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위법한 행위임이 인정돼야 한다”며 “원심은 이를 개별적·구체적으로 심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신재민 기자


용인시, 잘못된 교통연구원 예측으로 사업 추진

2004년 용인시는 캐나다 봄바디어 컨소시엄과 경전철 사업 협약을 체결하면서 30년간 운임 수입이 수요 예측치의 90%에 미달하면 차액을 용인시가 재정으로 메꿔준다는 ‘최소 수입 보장’(MRG) 규정을 포함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수요분석을 의뢰해 1일 이용객이 13만9000명이라는 예측 결과를 받아 1조원을 들여 경전철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2013년 경전철이 개통한 첫해 하루 평균 탑승 인원이 9000명으로 예측치에 턱없이 못 미치면서 막대한 적자가 났다. 이 과정에서 MRG 등을 놓고 봄바디어와의 법적 분쟁으로 개통이 3년 가까이 지연되고, 국제중재재판에서 패소해 7786억원(이자 포함 8500억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여기에 2043년까지 1조원 이상 추가 부담이 예상되자, 용인시 주민들은 경전철 사업에 관여한 전직 용인시장들과 과도한 수요 예측을 한 교통연구원 등에 세금 낭비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며 주민소송을 냈다. 주민소송은 지방자치법 22조에 따라 지자체에 재정 손해가 발생할 때 주민이 단체장을 상대로 “책임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라”고 요구하는 소송이다.

1·2심은 모두 주민소송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부적법하다고 보거나, 배상책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사실상 주민 패소를 판결했다. 1심은 김학규 전 시장(2010~2014년)과 그의 정책보좌관 박모씨에 대해서만 책임을 인정해 5억5000만원의 손해배상액을 정했고, 2심은 박씨의 책임만 인정해 10억2500만원의 손해배상액을 산정했다.

하지만 2020년 7월 대법원이 이를 뒤집었다. “과도한 수요예측에 근거해 사업이 시행됐다면 주민들이 손해배상 청구를 요청할 수 있다”며 파기환송한 것이다. 지난해 2월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 전 시장은 최소 수입 보장 협약에서 중대한 과실을 저질렀고, 교통연구원과 소속 연구원들은 비(非)합리적 방법으로 수요를 예측하는 과실을 저질렀다”고 했다.

이정문 전 용인시장. 중앙포토


주민들 “주민 손으로 눈먼 돈 견제”, 용인시 “손해배상 진행”

12년간 법정 다툼 끝에 승소한 용인시 주민소송단은 “이번 소송은 국내 최초로 대형 민간투자사업에서 주민 측이 승소 취지의 판결을 최종적으로 끌어낸 최초의 사례이자 용인시민의 위대한 승리”라며 “‘눈먼 돈’이라는 오명을 썼던 혈세 낭비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주민의 손으로도 가능함을 보여준 역사적 판결”이라고 환영했다.

이어 “지자체장이 선심성 공약이나 무분별한 사업 추진으로 인한 혈세 낭비에 대해 더 이상 면책되지 않고, 개인적인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강력하고도 명확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며 “‘임기 중 벌려 놓고 퇴임하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관행에 종지부를 찍고, 지방 행정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용인시 역시 대법원 판결 직후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며, 앞으로 이 전 시장 등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등 법이 정한 절차를 차질 없이 성실히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전 시장은 방음시설 공사업체 대표로부터 국회의원 청탁 명목으로 억대 뒷돈을 수수한 혐의로 지난 2일 구속돼 현재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앞서 용인경전철 사업 공사권을 자신의 동생이 운영하는 회사에 수주하도록 한 뒤 그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부정처사 후 수뢰)로 징역1년을 확정받은 바 있다.



김준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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