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는 매년 프로야구 10개 구단과 여러 야구 관련 단체 임직원의 이름이 담긴 수첩을 제작한다. 올해 키움 히어로즈 마케팅팀 명단에는 '이○○'라는 사원이 포함됐다. 이 씨는 KBO로부터 영구 실격 징계를 받은 이장석(59) 전 히어로즈 대표이사의 딸이다.
이 씨는 키움 구단 정직원이 아니다. 아직 대학생이다. 마케팅팀 다른 직원이 KBO에 보낼 명단을 정리하다 당시 인턴이던 이 씨의 이름을 넣었다. 이 씨는 지난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두 차례 대학생 인턴으로 근무했다. 소셜미디어(SNS) 업무를 담당했고, 선수단 해외 스프링캠프까지 동행했다.
야구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시기. 수많은 취업준비생이 KBO와 각 구단 업무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줄을 선다. 이 씨는 공정한 절차를 거쳐 그 바늘구멍을 뚫었을까. 그렇지 않다. 키움 구단은 별도의 공고를 내지 않고 이 씨를 유일한 인턴으로 특별 채용했다. 키움 관계자는 "직원들은 처음엔 이 전 대표의 딸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일인데, 하필 '이장석의 딸'이라 더 논란이 됐다. 이 전 대표는 지난 2018년 11월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KBO는 "구단 운영에서 불법적 행위로 사적 이익을 취하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리그의 도덕성을 훼손했다"며 영구 실격 제재를 내렸다. 그는 키움 구단의 지분 69.26%를 소유한 대주주지만, 구단 운영에는 어떠한 형태로도 관여할 수 없다.
그러나 그 후에도 키움은 끊임없이 이 전 대표의 '옥중 경영' 의혹에 시달렸다. 2021년 4월 그가 가석방 출소한 뒤에는 "크고 작은 일에 여전히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게 정설로 통했다. 2023년 3월엔 이 전 대표의 법률 대리인이었던 위재민 변호사가 새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수익 창출에 사활을 거는 '자립형 야구 기업' 키움이 느닷없이 변호사를 수장으로 영입하자 그 배경에 물음표가 붙었다.
위 대표는 취임 2주 만에 '음주운전 삼진 아웃'으로 징계 중이던 강정호의 복귀를 추진했다. 강정호는 이 전 대표가 유독 아꼈던 선수다. KBO가 키움의 임의탈퇴 해지 요청을 승인하지 않아 최종 무산됐지만, 위 대표가 추후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위 대표는 이번 인턴 채용 논란과 관련해서도 "이장석 씨는 딸 문제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내가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추천하고, 결정한 일"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 스포츠는 이른바 '국민 정서법'에 큰 영향을 받는다. 선수와 구단에게 갈수록 일반인보다 더 높은 도덕적 잣대가 요구되는 시대다. 세상은 그렇게 달라지고 있는데, 키움 구단만 다시 과거의 그림자 속으로 뒷걸음질 치는 모양새다. 구단의 잘못에 책임을 묻는 모기업이 없으니, 해법은 늘 '회피'와 '거짓 해명'이 전부다. 구단 돈을 사적으로 쓰다 감옥에 갔던 인사가 이번엔 가족을 위해 구단에 없던 일자리를 만들어도 누구도 제지할 수 없다.
다시 고개를 드는 의문. 히어로즈는 과연 1000만 관중 시대에 프로 야구단을 운영할 자격이 있나. 영구 실격 인사의 여전한 횡포를 언제까지 '다 알고도' 모른 척해야 할까. 허구연 KBO 총재에게 중요한 숙제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