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질병관리본부장·청장 재직 당시 남편의 주식 보유와 관련해 최소 두 차례 직무 관련성 심사를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의힘은 "반복된 누락은 단순 실수로 보기 어렵다"며 고의 누락 의혹을 제기했다.
1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정 후보자는 질병관리본부장이던 2017년 10월 남편 서모(65)씨가 보유한 주정(酒精) 회사 '창해 에탄올' 주식에 대해 인사혁신처 주식백지신탁 심사위원회로부터 '직무 관련성 없음' 판정을 받았다. 고위공직자가 이해 관계가 있는 주식을 보유하려면 해당 주식이 직무와 무관하다는 판단을 받아야 한다. 만약 직무 관련성이 있는 경우 매각하거나 백지 신탁해야 한다.
이후 정 후보자의 남편 서씨는 창해 에탄올 주식을 지속해서 매입해 2017년 1300주에서 2021년 5000주까지 보유량을 늘렸다. 창해 에탄올은 코로나19 유행 시기 손 소독제 원료인 알코올을 공급하며 '방역 수혜주'로 떠올랐다. 실제로 2021년 3월 서씨의 보유 주식 평가액은 5000만원(추정치)을 넘기며 정점을 찍었다. 당시 정 후보자는 질병관리청장이었다.
문제는 정 후보자가 직무 관련성 심사를 2017년 이후로는 다시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고위공직자의 직무관련성 판단 기준과 관련한 행위가 발생했을 땐 보유 주식 매각 여부 등을 판단하기 위해 직무 관련성 심사 청구를 해야 한다.
정 후보자가 최초 직무 관련성 심사를 받던 2017년 당시 창해에탄올은 술 원료인 주정을 만드는 회사였다. 그러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소독용 알코올 수요가 급증하자 이 회사는 2020년 3월 의약외품(손 소독제) 사업에 진출했다. 사업 성격이 바뀌면서 방역과 직결되는 회사가 된 것이다. 정부 방역 정책을 이끈 정 후보자의 직무와 이해충돌 여지가 생겨 추가 심사를 받아야 했지만, 정 후보자는 심사를 의뢰하지 않았다.
같은 해 9월에는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면서 정 후보자의 직무 범위가 본부장에서 청장으로 확대됐다. 공직자윤리법은 승진·전보 등으로 직무가 변경될 때도 보유 주식에 대한 재심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정 후보자는 이 때도 창해 에탄올 주식에 대해 직무 관련성 심사를 받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인사혁신처는 정 후보자 사례에 대한 최보윤 의원실 질의에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판정된 주식이라도 관련 업종에 관한 정책 등과 관련된 직무라면 직무 관련성 심사 청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보유 주식 총액이 3000만원을 초과했을 땐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하고 그 사실을 신고해야 하는데, 정 후보자는 이러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씨는 지금도 창해 에탄올 주식 5000주(현재 가격 약 5200만원)를 보유 중이다.
최보윤 의원은 "직무 관련성 심사를 무시했다면 중대한 윤리적 흠결이자 공직자윤리법 위반 사항"이라며 "국민이 약국 앞에 줄을 서던 코로나19 때 방역 수장의 가족은 주가 그래프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에 국민은 깊은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심사를 제대로 받지 않은 정 후보자가 배우자의 투기 행위를 방조 또는 협조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정 후보자 측은 "오는 18일 열릴 인사청문회에서 관련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