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가능성이 희박했던 한국 여자축구가 반전 드라마를 쓰고 20년 만에 동아시아 챔피언에 올랐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1위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은 1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여자부 최종 3차전 경기에서 대만(42)을 2-0으로 꺾었다. 베테랑 공격수 지소연(34·시애틀 레인)이 후반 25분 페널티킥 결승골을, 후반 40분 장슬기(31·경주한수원)가 쐐기골을 터뜨렸다. 앞서 중국과 1차전(2-2), 일본과 2차전(1-1)에서 비긴 한국은 승점 5(1승2무)를 기록하며 대회를 마쳤다. 이날 앞선 경기에서 득점 없이 비긴 중국과 일본을 승점 동률 팀 간 경기의 다득점(한국 3골, 중국 2골, 일본 1골)에서 앞서며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한국은 여자부 대회가 처음 열렸던 2005년 우승한 이후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한국은 우승 상금 7만 달러(약 9700만원)를 가져갔다.
동아시안컵은 승점이 같은 팀끼리 경기에서 ▲상대 전적 ▲골 득실 ▲다득점 순으로 순위를 가린다. 한국과 일본, 중국은 서로 맞붙은 3경기에서 모두 승부를 가리지 못해 상대 전적과 골득실에서는 순위가 갈리지 않는다. 서로 맞붙은 3경기의 다득점에서 한국은 3골로 중국(2골), 일본(1골)에 앞서서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지난해 10월 여자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신상우(49) 감독은 부임하고서 1년도 채 안 돼 우승을 지휘했다.
사실 한국의 우승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초 한국은 2무로 3위에 머물러 있어서 우승 가능성이 희박했다. 2차전까지 나란히 1승1무를 기록한 아시아 최강 일본(7위) 또는 중국(17위)의 우승 중 한 팀의 유력했다. 그런데 이날 폭우가 쏟아지는 변수가 생기면서 기적이 일어났다. 한국-대만전에 앞서 같은 장소에서 열린 일본-중국전이 0-0으로 끝났다. 선수들은 폭우 속에 볼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었다. 공격력이 무뎌져 결국 득점하지 못했다. 양 팀은 끊임없이 서로의 골문을 두드렸으나 굵은 빗줄기 때문인지 슈팅이 정확하지 않아 득점에 실패하기만을 반복했다. 후반 추가시간에는 일본 다카하시 하나가 빈 골문을 앞에 두고 찬 슈팅이 오른쪽으로 허무하게 빗나가는 웃지 못할 장면도 연출됐다.
2006년부터 태극마크를 단 레전드 지소연은 커리어 처음으로 국제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감격을 맛 봤다. 지소연은 앞선 2022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준우승, 아시안게임(2010, 14, 18년) 동메달을 따냈지만, 우승은 없었다. 이날 그가 터뜨린 골은 A매치 74호 골이었다. 지소연은 "우승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20년 만에 우승해서 너무 기쁘다. 홈에서 우승하려고 지금까지 기다린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은 대만과 상대 전적에서 15승 2무 4패로 격차를 벌렸다. 2001년부터 이어진 맞대결 연승 행진을 15경기로 연장했다. 이번 대회 2골을 넣은 장슬기가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김민정은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됐다. 일본의 이시카와 리온은 최우수 수비수로 뽑혔고, 득점상은 3골을 터뜨린 중국의 사오쯔친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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