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협조한 아프간인 망명신청자 명단 파일 유출
"혼란 수습비용 13조원 추산…피해자들 9천만원씩 손배 준비중"
"사상 가장 비싼 이메일"…英군인 전송실수에 역대급 안보사고
영국에 협조한 아프간인 망명신청자 명단 파일 유출
"혼란 수습비용 13조원 추산…피해자들 9천만원씩 손배 준비중"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탈레반 재집권 이전 영국 정부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정보가 대규모로 유출된 사건은 영국 군인 한 명의 이메일 전송 실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1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전날 법원의 공표 금지 해제 결정으로 공개된 이 사건은 2022년 2월 한 해병대원이 아프간인 2만5천명의 정보가 담긴 스프레드시트 파일이 포함된 이메일을 잘못 보내면서 시작됐다.
이 파일에는 서방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탈레반에게 보복당할 것을 두려워해 영국 이주를 신청한 아프간인 약 1만9천명과 그 가족 6천명의 정보가 포함돼 있었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이 군인은 아프간 주둔 영국 특수부대를 이끈 그윈 젱킨스 장군의 지휘를 받는 런던 본부에서 망명 신청자의 신원 확인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 군인은 신청자 중에 진짜로 영국군의 편에서 싸운 부대에 소속된 사람을 신뢰할 만한 아프간 현지인들을 통해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 군인은 일부 명단이 아닌 전체 신청자 정보가 든 파일을 이메일로 보냈다. 그가 명단을 잘못 보낸 대상이 누구인지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아프간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정부는 이 혼란을 수습하는 데 드는 비용이 70억 파운드(1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최근 55억∼60억 파운드(10조2천억∼11조2천억원)로 추산치가 낮아지긴 했다. 텔레그래프는 잘못 보낸 이 이메일이 "역사상 가장 비싼 이메일"이라고 꼬집었다.
국방부는 유출 시점으로부터 18개월이 지난 2023년 8월, 한 주민이 지역구 하원의원과 국방부 부장관에게 이 스프레드시트 파일이 온라인에 돌고 있다고 경고하는 이메일을 보냈을 때 비로소 유출 사실을 파악했다.
그로부터 4일 후에는 "이걸 공개하고 싶다"는 글과 함께 파일 일부가 페이스북에도 게시됐다. 게시자는 아프간인이었는데 이후 망명 신청이 거부됐다고 한다.
정부가 뒤늦게 진상을 파악하고 사태를 수습하려 했을 때 일부 언론이 취재를 시작하자 정부는 안보 위험을 이유로 법원에 공표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은 같은 해 9월 1일 정부 신청보다도 더 높은 수준의 공표 금지 결정을 내렸다. 유출은 물론이고 법원의 결정까지 관련된 모든 상황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15일 영국 고등법원이 비밀 유지가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해제하라고 결정하면서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영국 정부는 주요 피해자를 영국으로 이주시키기 위한 새 비밀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제까지 6천900명이 이주했거나 곧 이주한다. 국방부는 이 프로그램 외에 다른 경로로 영국에 정착한 아프간인을 포함하면 총 1만8천500명이라고 밝혔다.
유출 명단에 포함된 아프간인 최소 665명이 영국 국방부를 상대로 각각 5만 파운드(9천300만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준비하고 있으며, 수천명이 소송에 동참해 영국 정부에 막대한 청구서를 보낼 수 있다고 FT는 전했다.
이메일을 보냈던 군인이 어떤 징계나 처분을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email protected]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김지연
저작권자(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