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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군인 실수 한번에…"역사상 가장 비싼 이메일" 안보 유출 전말

중앙일보

2025.07.16 08:30 2025.07.1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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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국방부(MoD) 전경. 국방부는 유출된 명단에 포함된 아프가니스탄 군인 600명과 그 가족 1800명이 아직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재장악 이후 영국 이주를 희망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의 개인정보가 영국 국방부 관리의 실수로 유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15일(현지시간) 영국 텔레그래프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전날 법원의 공표 금지 해제 결정으로 공개된 이 사건은 2022년 2월 한 해병대원이 아프간인 2만5000명의 정보가 담긴 스프레드시트 파일을 이메일로 잘못 전송하면서 발생했다.

이 파일에는 미군과 영국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고 탈레반이 아프간을 재장악한 이후 탈레반의 보복을 우려해 영국에 이주를 신청한 아프간인 약 1만9000명과 그 가족 6000명의 정보가 포함돼 있었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이 군인은 아프간 주둔 영국 특수부대를 이끈 그윈 젱킨스 장군의 지휘를 받는 런던 본부에서 망명 신청자의 신원 확인 업무를 맡고 있었으며 실제 영국군과 협력했던 사람을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었다.

이 군인은 일부 명단이 아닌 전체 신청자 정보가 든 파일을 이메일을 통해 외부로 전송했다. 수신자는 아프간인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올해 초 이 혼란을 수습하는 데 드는 비용이 70억 파운드(1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최근 55억∼60억 파운드(10조2000억∼11조2000억원)로 추산치가 낮아지긴 했다. 텔레그래프는 잘못 보낸 이 이메일이 “역사상 가장 비싼 이메일”이라고 꼬집었다.

국방부는 유출 시점으로부터 18개월이 지난 2023년 8월 한 주민이 지역구 하원의원과 국방부 부장관에게 이 스프레드시트 파일이 온라인에 돌고 있다고 경고하는 이메일을 보냈을 때 비로소 유출 사실을 인지했다.

정부가 뒤늦게 진상을 파악하고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언론 취재가 이어지자 안보 우려를 이유로 법원에 공표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후 법원은 2023년 9월 1일 이보다 더 강력한 수준의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사건의 존재 자체는 물론 관련 일체의 사실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15일 영국 고등법원이 비밀 유지가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공표 금지 결정을 해제했다. 이에 따라 이번 유출 사건의 전말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영국 정부는 주요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비공개 이주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며 현재까지 6900명이 영국으로 이주했거나 곧 입국할 예정이다. 다른 경로로 정착한 인원까지 포함하면 총 1만8500명에 달한다.

유출 명단에 포함된 아프간인 최소 665명이 영국 국방부를 상대로 각각 5만 파운드(9300만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준비하고 있으며 수천명이 소송에 동참해 영국 정부에 막대한 청구서를 보낼 수 있다고 FT는 전했다.

이메일을 잘못 보낸 군인에 대한 징계나 처분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한영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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