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우가 17일 디 오픈 연습라운드 후 대기 순번으로 디 오픈 출전한 얘기를 하다가 “사정이 그렇게 됐으니까요. 그래도 잘 된 거죠”라고 했다.
출전하게 됐으니 잘 됐지만 김시우가 메이저대회에 대기 순번으로 기다리다 막차 타고 나갈 ‘짬밥’은 아니다. 김시우는 17일 현재 올 시즌 PGA 투어 페덱스 랭킹은 40위, 세계 랭킹은 63위다. 세계 랭킹 100위권 내 선수들도 많이 출전하는 메이저대회에 그가 빠지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는 제5의 메이저대회인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비롯, PGA 투어 4승을 한 경륜도 있다. 올해 메이저대회 성적도 나쁘지 않다. PGA 챔피언십에서 공동 8위를 했고, US오픈에서는 1라운드 공동 3위였다.
운은 나빴다. 지난해 페덱스 30위 이내에 김시우는 들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2차전 마지막 라운드에서 하위권에 있던 키건 브래들리 등이 치고 올라가면서 순위가 뒤집혀 32위로 밀렸다. 페덱스 30위는 이듬해 메이저대회에 모두 나갈 수 있는데 그 기회를 놓쳤다. 세계 랭킹 50위 이내에 지난해 들었지만, 연말에 빠지는 바람에 올해 마스터스에 못 나갔다.
그게 김시우의 올해 가장 큰 아픔이다. 이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디 오픈을 앞두고는 고삐를 조였다. 5개 대회 연속 출전하면서 세계 랭킹을 올리려 했다. 김시우가 못 한 건 아니다. 그러나 어중간했다. 5위 이내에 들어야 세계 랭킹 순위가 확 오르는데 김시우는 11위, 34위 등 어중간한 성적이 나왔다.
지난주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을 앞두고 두 가지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디 오픈 출전권이 없는 선수 중 3위 안에 들어 자력으로 티켓을 따는 것이 하나다. 다른 하나는 대기 순위 1번으로 기다리는 것이었다. 김시우는 자력 출전을 원했다.
제네시스 1라운드 10번 홀까지 4언더파 선두였다. 그러나 후반 점수를 잃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5타를 줄이며 무난히 출전권을 받는 듯했다. 그러나 마지막 4개 홀에서 보기 3개를 했다. 김시우는 “보기 하나 하고 나서 뭔가에 홀린 듯 보기가 계속 나왔다”고 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어니 엘스가 포기하면서 김시우는 디 오픈에 나왔다. 김시우는 “날이 무더운데 5경기 연속 경기하느라 진이 빠졌는데 이곳에 오니 시원해서 몸이 나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시우는 메이저대회와는 인연이 많지 않았다. 지난해까지 메이저대회에 31번 출전해 톱 10이 한 번도 없었다. PGA 투어 선수들이 인정하는 뛰어난 볼 스트라이커인 것을 감안하면 아쉬운 기록이다. 김시우는 “잘 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마지막 라운드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올해 PGA 챔피언십 공동 8위로 첫 톱10의 문을 열었다. 디 오픈은 사력을 다해 나온 대회다.
김시우는 “메이저대회 중 마스터스와 디 오픈이 나에게 맞는다. 낮게 치는 걸 잘하는 편이라 바람 불 때 상대적으로 좋고 그린과 페어웨이의 경사를 이용하는 쇼트게임도 잘 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의 플레이는 디 오픈과 궁합이 맞는다.
올해 대회장인 로열 포트러시는 그린이 느리다. 링크스치고는 그린 경사가 심한데 바닷가라 바람이 심하게 불 수도 있어 그린을 빠르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드라이버, 아이언, 웨지가 뛰어나고 퍼트가 약간 아쉬운 김시우에겐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만약 김시우가 우승한다면 1991년 PGA 챔피언십에서 대기 명단 9번으로 기다리다 닉 프라이스가 부인 출산 때문에 갑자기 기권해 출전해 행운의 트로피를 든 존 댈리에 이어 대기 선수 메이저 우승자로 기록될 것이다. 서류상으로는 그렇겠지만, 김시우는 대기로 기다리다 막차 타고 나가 우승을 한 행운의 선수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