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국회, 고용노동부, 한국노총 등 정·관·노동계 인사들을 잇달아 영입하고 있다. 거대 여당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쿠팡이 규제 환경 변화에 대응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이상진 전 한국노총 조직확대본부장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상무로 취업했다. 쿠팡CLS는 쿠팡의 물류 자회사로 배송기사(퀵플렉서)들이 소속돼있다. 한국노총은 그간 연대노조 택배산업본부와 함께 쿠팡 분류작업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 활동을 해왔다. 노동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인사가 쿠팡 계열사로 직행한 데 대해 노동계에서도 화제가 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A씨도 최근 쿠팡 임원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취업 심사를 받고 있다. A씨는 안 의원 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여러 의원실을 거친 경력이 있다. 특히 안 의원이 소속된 환노위는 일터의 안전이나 노동 조건 등의 이슈를 관할하는 상임위로 쿠팡 역시 택배노동자 과로사와 분류작업 외주화 문제 등을 환노위에서 지적받기도 했다.
고용노동부 출신 인사들의 쿠팡 이직도 잇따랐다. 올해 들어 고용노동부 6급 공무원 출신이 쿠팡CLS 부장으로 취업한 것을 비롯해, 물류센터가 밀집하거나 특별근로감독을 주관한 지방고용노동청 소속 공무원 7명 이상이 최근 쿠팡CLS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상당수는 노사관계, 근로감독, 산업안전 등의 업무를 직접 다뤄온 실무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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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쿠팡으로?…‘노조법·산재 대응’ 포석
업계에선 쿠팡의 인사 전략이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달라질 노동 지형에 대비한 조치로 보고 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안전한 일터’를 국정 기조로 내세운 만큼 달라질 노사 관련 제도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는 관측이다.
특히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시행되면 쿠팡이 그간 내세워온 ‘간접고용 구조이므로 교섭 의무가 없다’는 논리는 힘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쿠팡 배송기사 다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신분으로, 현행 근로기준법상 단체교섭권이 없다. 그러나 사용자의 범위가 넓어지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쿠팡 물류노조의 교섭 요구가 법적 근거를 갖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쿠팡이 노동계 사정에 밝은 인사를 내부에 잇달아 쿠팡CLS에 배치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지난해 제주에서 쿠팡 로켓배송 기사가 과로로 숨진 뒤로 노동계에서 ‘쿠팡 과로사 대책 이행점검단’을 꾸리는 등 곳곳에 노무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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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규제 강화 바람에 공직자 잇단 쿠팡行
공직자 영입도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추세다. 2021년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쿠팡에 이직한 전직 공무원은 27명이다. 2021년 5명, 2022년에는 취업 심사를 받은 7명 중 5명, 2023년 6명, 2024년에는 5명 중 4명, 2025년에는 상반기에만 7명이 쿠팡으로 적을 옮겼다. 이들 중에는 공정거래위원회, 대통령비서실,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핵심 부처 출신 인사도 포함돼 있다. 이에 더해 쿠팡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강화를 위해 사회공헌위원회도 최근 신설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플랫폼에 비판적인 여론과 규제 환경에 대비한 포석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쿠팡은 빠르게 사세가 확장되는 추세에 따라 다양한 영역의 인재를 채용하고 있는 것일 뿐 특정한 목적을 가진 영입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쿠팡의 지난해 매출은 41조2901억원(302억6800만 달러)으로 국내 유통기업 중 최초로 연 매출 40조원을 돌파하며 기록을 새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