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프로야구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순위 싸움이 한창이다.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가 1위 자리를 놓고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고,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가 호시탐탐 선두권을 노리는 중이다. 5강 막차 다툼은 더욱 치열하다. 전반기를 기준으로 5위 KT 위즈와 6위 SSG 랜더스, 7위 NC 다이노스가 1경기 격차로 맞닿아 있다. 한 번 미끄러지면 금세 순위가 내려가고, 반대로 연승 바람을 타면 곧장 상위권으로 올라서는 형국이다.
이처럼 전문가들조차 쉽사리 예측하지 못하는 순위 다툼의 치열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전장(戰場)이 있다. 바로 구원왕 싸움터다. 올해 마무리 경쟁은 역대 가장 치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환점을 도는 동안 독보적으로 치고 나가는 선수 없이 KBO리그 대표 클로저들이 자존심 다툼을 벌이고 있다. 공교롭게도 도전자 모두 상위권 구단의 마무리들이라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일단 전반기 구원왕은 KT 박영현(22)의 차지였다. 43경기에서 26세이브를 거둬 이 부문 1위를 달렸다. 2022년 입단해 필승조로 뛰던 박영현은 지난해부터 주전 클로저로 승진해 25세이브를 기록했다. 올 시즌에는 페이스를 더욱 끌어올리며 생애 처음으로 구원왕 타이틀을 바라보게 됐다.
의미 있는 기록도 눈앞이다. 역대 KBO리그에서 홀드왕과 구원왕을 모두 차지한 선수는 조웅천(55)과 정재훈(45), 정우람(40)뿐이다. 만약 박영현이 올해 가장 많은 세이브를 거둔다면 통산 4번째 홀드왕-구원왕 타이틀 홀더가 된다.
박영현 다음으로 많은 24세이브를 기록한 김원중(32)은 롯데 구단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2023년 프랜차이즈 선수 최초로 100세이브의 주인공이 됐고, 지난달 18일 사직 한화전에선 150세이브 고지를 밟았다. 이 역시 구단 최초다.
2012년 입단 후 선발투수로서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김원중은 2020년 마무리 전환을 통해 꽃을 피웠다. 직구와 포크볼을 앞세워 올해까지 6년 연속 두 자릿수 세이브를 올렸다. 그러나 김원중에겐 아직 구원왕 타이틀이 따라오지 않았다. 올 시즌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이유다.
전반기까지 23세이브를 기록한 정해영(24)은 KIA 반전 드라마의 숨은 공신이다. 6월 13경기에서 6세이브를 챙겼고, 이달 등판한 4경기에선 3세이브를 추가했다. 정해영이 뒷문을 지킨 KIA는 7위에서 4위로 점프하며 가을야구 진출 희망을 키웠다.
지난해 31세이브로 생애 처음 구원왕을 차지한 정해영은 한동안 명맥이 끊긴 2년 연속 구원왕도 바라본다. 2014년과 2015년 넥센 히어로즈에서 뛰던 손승락(43)이 구원왕 2연패를 이룬 뒤 누구도 이 길을 따르지 못했다.
박영현과 김원중, 정해영은 적게는 2년, 많게는 6년의 마무리 경험을 지닌다. 이와 달리 전반기 22세이브를 수확한 한화 김서현(21)은 올해 처음으로 뒷문을 지키는 신출내기다. 그러나 김서현의 경기를 보면 초보 마무리라는 점을 쉽게 느낄 수 없을 정도다. 담대하게 자기 공을 던지면서 한화의 불펜진 걱정을 덜어냈다.
막내 김서현의 최대 장기는 역시 빠른 공이다. 직구 평균시속이 151㎞나 될 정도로 공의 위력이 상당하다. 5월 4일 광주 KIA전에선 160.5㎞의 강속구를 던져 모두를 놀라게 했다. 사실 김서현은 셋업맨으로 올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나 기존 마무리 주현상(33)이 난조를 보이면서 뒷문을 책임지게 됐고, 남들보다 늦은 출발에도 빠르게 20세이브를 돌파했다. 한화의 고공행진이 계속될수록 김서현의 세이브 기회도 늘어날 전망이라 향후 구원왕 경쟁의 키를 쥐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