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에게 사실상 ‘용퇴’를 종용했다. 파월 의장을 향해 공개적으로 “자진 사임하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한편으론 해임 통보 서한을 작성하며 파월 의장을 강제로 끌어내리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트럼프는 16일(현지시간) 보수성향 매체 리얼아메리카스보이스에 “파월 의장이 사임을 원한다면 너무 좋겠다. (사임은) 그에게 달려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만약에 내가 그를 해임하면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며 “그러나 그가 연준에서 하는 일의 ‘사기(fraud)’ 때문에 많은 사람은 그가 경질되어야 한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시장 혼란을 의식해 당장은 파월 의장을 해임하진 않겠지만, 그가 벌인 사기 행위가 밝혀지면 경질할 수도 있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가 말하는 사기는 Fed가 파월 의장 재임 중에 건물 개보수를 하며 옥상 정원과 인공 폭포 등을 설치하는 바람에 공사 비용이 초기 계획보다 7억 달러 늘어난 25억 달러(약 3조5000억원)에 달했다는 의혹이다. 트럼프는 “(개보수를 거친 Fed 건물은)세계에서 가장 비싼 건물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해임 카드도 준비 중이다. 뉴욕타임스(NYT)와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가 지난 15일 백악관에서 공화당 하원의원 12명을 만나 파월 의장 해임 서한 초안을 보여주고 의견을 물었고, 의원 대부분이 (해임에) 지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에 대해 트럼프는 “우리는 어떤 것도 계획하고 있지 않지만,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트럼프는 현재 4.5% 수준인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내리자는 자신의 요구를 듣지 않는 파월 의장에 불만이 크다. 트럼프는 그동안 “1%대 금리가 경제에 로켓 연료를 줄 것”이라고 말하며 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지난 14일엔 “(전 세계에서) 스위스 (기준금리)가 제일 낮은데 0.5% 수준이다. 우리는 더 낮아야 한다”고 말하며 0%대 금리까지 주장했다. 그러나 파월 의장은 현재 미국의 경제 상황이 금리를 낮출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을 굽히지 않고 있다.
트럼프의 금리 인하 요구엔 현재 36조2100억 달러(약 4경 9737조원)에 달하는 미국의 국가부채가 자리하고 있다. 트럼프는 Fed가 기준금리를 낮춰 미국이 내는 막대한 국채 이자 부담을 줄이고 재정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는 “(기준금리) 1%포인트에 3600억 달러(약 498조원)의 비용이 든다”며 “2%포인트면 6000억∼7000억 달러가 들어간다. 우리는 너무 높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금리 인하 시도가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가 주장하는 낮은 금리는 미국 경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필요한 대응 방안인데 미국은 완전 고용(실업률 4.1%)에 가깝고 물가상승률도 Fed 목표치인 2%를 웃돈다”며 “Fed가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 금리를 강제로 인하할 경우 오히려 미 국채 시장에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파월 의장 해임설로 이날 시장은 흔들렸다. 3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한때 5.08%까지 치솟고,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장중 0.7%까지 하락했다.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자 브라이언 모이니한 뱅크오브아메리카 최고경영자(CEO), 골드만삭스 그룹의 데이비드 솔로몬 CEO,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 등 미 주요 대형은행 CEO들은 일제히 “Fed의 독립성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