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한국시간) 영국 북아일랜드 로열 포트러시 골프클럽에서 진행된 디 오픈 연습라운드가 끝난 뒤 김시우(30)는 대기 순번으로 대회에 출전하게 된 데 대해 “사정이 그렇게 됐다. 그래도 잘 된 것”이라고 했다. 사실 그는 대기하다 ‘막차’를 타고 메이저대회에 나갈 ‘짬밥’이 아니다. 올 시즌 그의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페덱스 랭킹은 40위, 세계 랭킹은 63위다. 디 오픈에는 세계 100위 내 선수도 많으니 그가 빠지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는 ‘제5의 메이저대회’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등 PGA 투어 4승의 경륜도 있다. 올해 메이저대회 성적도 나쁘지 않다.
운이 나빴다. 지난해 김시우는 이듬해 메이저대회에 모두 나갈 수 있는 페덱스 30위 이내에 들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2차전 마지막 라운드에서 키건 브래들리 등이 치고 올라와 32위로 밀렸다. 지난해 세계 50위 이내에도 들었지만, 연말에 빠지는 바람에 올해 마스터스에 못 나갔다. 올해 가장 큰 아픔이다. 이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디 오픈을 앞두고 고삐를 조였다. 5개 대회에 연속 출전하며 세계 랭킹을 끌어 올리려 했다. 대회마다 5위 이내에 들어야 확 오르는데 11, 34위 등 어중간한 성적이 나왔다.
지난주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을 앞두고 두 가지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디 오픈 출전권이 없는 선수 중 3위 안에 들어 자력으로 출전권을 따는 것과 대기 순위 1번으로 기다리는 것, 이렇게 두 가지다. 김시우는 자력 출전을 원했다. 1라운드 10번 홀까지 4언더파 선두였으나 후반에 점수를 잃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5타를 줄여 무난히 출전권을 받는 듯했다. 그런데 마지막 네 홀에서 보기 3개를 했다. 그는 “보기를 하나 한 뒤 뭔가에 홀린 듯 보기가 계속 나왔다”고 했다. 어니 엘스가 출전을 포기해 디 오픈에 나올 수 있었다.
김시우는 메이저대회와 인연이 많지 않았다. 지난해까지 메이저대회에 31번 출전했는데, 톱10이 없었다. PGA 투어 선수들이 인정하는 볼 스트라이커인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기록이다. 그는 “잘 친 적이 몇 번 있는데 마지막 라운드가 좋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올해 PGA 챔피언십에서 공동 8위로 톱10의 문을 처음 열었다. 그는 “메이저대회 중 마스터스와 디 오픈이 내게 맞는다. 낮게 치는 걸 잘하는 편이라 바람 불 때 상대적으로 좋고 그린과 페어웨이의 경사를 이용하는 쇼트 게임도 잘하는 편”이라고 했다.
올해 대회장인 로열 포트러시는 그린이 느리다. 링크스치고는 그린 경사가 심하다. 바닷가라 바람이 심할 수도 있어 그린을 빠르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드라이버·아이언, 웨지가 뛰어나고 퍼트가 약간 아쉬운 김시우에겐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우승한다면 1991년 PGA 챔피언십에서 대기 순번 9번이었는데 닉 프라이스의 기권으로 출전했다가 우승 트로피를 든 존 댈리에 이어 두 번째 대기 선수 메이저 우승자로 기록될 것이다. 서류상 그렇다는 거지, 그가 대기하다 막차를 타고 나가 우승하는 행운의 선수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