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프로야구 순위 싸움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렵다.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선두 전쟁부터,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의 선두권 진입 다툼, 5강 마지막 한 자리를 놓고 겨루는 5위 KT 위즈와 6위 SSG 랜더스, 7위 NC 다이노스의 경쟁이 다 뜨겁다. 몇 경기 무너지면 금세 순위가 곤두박질치고, 반대로 연승 바람을 타면 수직 상승하는 형세다.
전문가조차 예측을 불허하는 순위 싸움의 치열함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전쟁터가 있는데, 바로 구원왕 경쟁이다. 역대 가장 치열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다. 올 시즌 반환점을 돌았는데도 압도적으로 치고 나가는 선수 없이 KBO리그 대표 클로저들의 자존심 다툼이 한창이다. 특히 이들의 성적이 팀 순위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보는 재미를 더한다.
전반기 구원왕은 KT 박영현(22)이다. 43경기에서 26세이브를 올렸다. 2023년 홀드왕 출신인 박영현은 지난해부터 주전 클로저로 승진했다. 올해에는 페이스를 끌어올려 생애 첫 구원왕 타이틀을 바라본다. 의미 있는 기록도 눈앞에 뒀다. 앞서 KBO리그에서 홀드왕과 구원왕을 모두 차지한 선수로는 조웅천(55)과 정재훈(45), 정우람(40)이 있다. 지금의 순위를 시즌 끝까지 지켜낸다면 통산 네 번째 홀드왕-구원왕 타이틀 홀더가 된다.
박영현의 뒤를 따르는 24세이브의 롯데 김원중(32)은 구단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2023년 롯데 프랜차이즈 선수 최초로 100세이브의 주인공이 됐고, 지난달 18일 사직 한화전에서는 150세이브 고지도 밟았다. 2020년 마무리로 전환한 그는 직구와 포크볼을 앞세워 올해까지 6년 연속 두 자릿수 세이브를 올렸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구원왕 타이틀이 따라오지 않았다. 올 시즌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이유다.
전반기 23세이브를 기록한 정해영(24)은 KIA 반전 드라마의 숨은 공신이다. 지난달에만 13경기에서 6세이브를 챙겼고, 이달 들어서도 4경기에 등판해 3세이브를 추가했다. 그가 뒷문을 잘 지킨 덕분에 KIA는 7위에서 4위로 올라서며 가을야구의 희망을 키웠다. 지난해 31세이브로 생애 처음으로 구원왕이 된 그는 한동안 명맥이 끊긴 2년 연속 구원왕도 바라본다. 넥센 히어로즈에서 뛰었던 손승락(43)이 2014, 2015년 구원왕 2연패를 한 뒤로 아무도 그 길을 따르지 못했다.
박영현과 김원중, 정해영은 짧게는 2년, 길게는 6년간 마무리로 뛰었다. 반면 전반기 22세이브를 거둔 한화 김서현(21)은 올해 처음으로 뒷문을 지키는 새내기다. 하지만 막상 그의 경기를 보면 ‘초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다. 담대하게 자신만의 공을 던지면서 자신에게 쏠렸던 우려를 씻어버렸다. 최대 무기는 빠른 공이다. 평균속도 시속 151㎞의 직구는 위력이 상당하다. 지난 5월 4일 광주 KIA전에선 시속 160.5㎞를 찍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사실 김서현은 올 시즌을 셋업맨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기존 마무리 주현상(33)이 난조를 보여 뒷문을 책임지게 됐다. 남보다 출발이 늦었는데도 20세이브를 돌파했다. 게다가 한화의 고공행진은 계속될 전망이어서 그의 세이브 기회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구원왕 경쟁의 키를 김서현이 쥐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