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핵심 재료를 공급하는 국내 주요 소재 업체 간 특허 분쟁이 격화하고 있다. 소재를 납품받는 대기업 패널 업체까지 소송전에 휘말리며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의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OLED가 LCD(액정표시장치)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유기물을 이용해 스스로 빛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백라이트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특허 분쟁은 이런 ‘자체 발광’을 가능케 하는 핵심 소재인 ‘블루도판트’ 기술을 둘러싸고 시작됐다.
블루도판트는 OLED 기판 내부에 들어가는 삼원색(적·녹·청) 중 청색 빛을 내는 데 필수적인 유기화합물의 일종이다. 적색이나 녹색에 비해 수명이 짧고 발광 효율이 낮아 OLED 소재 중 가장 개발하기 까다롭다. 시간이 지날수록 휘도(밝기)가 떨어지고 ‘번인(burn-in, 화면 번짐) 현상’이 발생하기 쉽기 때문에, 수명이 긴 블루도판트를 개발하는 것이 OLED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 분야 기술력을 선도하고 있는 국내 업체인 SK머티리얼즈제이엔씨(SKMJ)와 SFC가 오랜 기간 특허 분쟁을 이어오고 있는 점이다. 앞서 SKMJ는 2014년 2월 붕소 기반의 블루도판트 원천 특허를 출원해 2019년 등록했고, SFC는 붕소를 이용한 블루도판트에 다른 유기화합물을 붙여 2018년 11월 특허를 출원해 2020년 3월 등록을 마쳤다. 현재 SKMJ와 SFC는 각각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의 핵심 납품업체다.
양사 간 특허 분쟁이 본격화된 건 2019년부터다. 선공을 날린 건 SFC였다. SFC는 SKMJ의 블루도판트 관련 특허가 무효라며 한국과 일본에서 잇따라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패소했다. 이후 SKMJ가 반격에 나섰다. 한국에서 SFC의 특허에 대해 무효 소송을 제기했고, 특허심판원(1심)에선 승소했지만 특허법원(2심)에서 패소하면서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SFC는 지난 2월 독일 뮌헨지방법원에 SKMJ와 LG디스플레이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새롭게 제기하며 전선을 유럽으로까지 확장했다. 소송 대상에 LG디스플레이까지 끌고 들어간 만큼, 단순한 소재 업체 간 분쟁을 넘어 패널 공급업체에까지 파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소재사간 특허 분쟁은 비일비재했는데 패널 공급업체까지 끌고 들어간 건 매우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SFC가 LG디스플레이를 걸고 들어갔기 때문에 조만간 SKMJ도 삼성디스플레이를 물고 들어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각에선 장기적으로 한국 OLED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소송에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데다가 블루도판트 기술을 한국 업체가 선도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 기업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할 경우 기술 경쟁력이 다소 낮아질 수 있다.
LG디스플레이 측은 “소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아니고, 우린 소재 구매 업체라 직접적 관련이 없어 당장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대규 순천향대 디스플레이신소재공학과 교수는 “OLED 시장 주도권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소재 업체 간 소송전이 격화된 것으로 보인다”라며 “통상적으론 소송이 극한으로 치닫기 전 합의하는 게 수순”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