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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의 혁신창업의 길] 세상에 없는 내시경 로봇 내놓으니 글로벌 기업이 러브콜

중앙일보

2025.07.17 08:24 2025.07.1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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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84〉 엔도로보틱스 홍대희·김병곤 대표
김병곤 엔도로보틱스 대표(왼쪽)가 서울 연건동 본사에서 스승 홍대희 고려대 기계공학과 교수 겸 공동대표와 함께했다. 권혁재 기자
배를 가르는 수술 없이 암과 같은 중병을 치료할 수는 없을까. 외과적 수술이 필요한 대부분의 질병은 피부를 절개하고 내부 장기에 접근해야 한다. 수술 후 고통이 심하고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과거엔 정말 그랬다. 그래서 나온 게 복강경이고 내시경이다. 복강경 수술은 작은 절개창을 통해 뱃속(복강)에 카메라와 수술 기구를 넣어, 몸 안을 직접 들여다보며 진행하는 수술이다. 배를 크게 열 필요 없이 0.5~1㎝가량의 구멍 몇 개만으로 수술을 진행할 수 있어 통증과 회복 기간이 크게 준다. 그 절정이 다빈치 로봇이다. 내시경은 더 나아가 절개조차 하지 않고, 입이나 항문을 통해 접근해 문제가 되는 부위를 제거하는 방식이라 회복이 더 빠르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환부까지 1~2m 길게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조작이 쉽지 않다. 지금까지는 주로 조기암의 절제나 용종 제거 같은 제한된 치료에 그쳐왔다. 고려대 창업기업 엔도로보틱스는 이런 한계에 도전장을 낸 스타트업이다. 고려대 기계공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김병곤(40) 박사와 지도교수 홍대희(63)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이 회사가 개발한 기술은 내시경 끝에 소형 로봇팔을 장착해, 정교한 수술을 가능하게 했다. 암 조직을 자르면서 동시에 출혈을 막고, 필요한 경우 실로 조직을 꿰매는 일까지 할 수 있다. 내시경 기능으로 세계 최초다. 소화기내과 의사들이 쌍수를 들고 반겼다. 세상에 없던 기술이니 투자유치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2019년 창업 후 4년간 시리즈 B까지 세 차례 총 170억원이 넘는 투자금을 모았다. 지난 4월 시작한 시리즈 C 투자 유치에는 글로벌 톱 의료장비 기업까지 뛰어들었다. 지난달 27일 서울 연건동 대학로 초입에 자리잡은 엔도로보틱스를 찾아 김 대표를 만났다. 마침 홍 교수도 같이 있었다.


박사과정 연구주제로 창업

Q : 언제, 왜 창업을 결심했나.
A : “박사과정 주제가 내시경 수술 관련 연구였다. 지도교수님이 ‘이건 될 것 같다. 도와주겠다’며 평소 여러 차례 창업을 권하셨다. 창업을 최종 결심한 건 2018년 말, 박사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산학장학생이라 학비를 지원받은 기업에 입사해야 했지만, 20~30년 뒤의 내 모습이 너무 쉽게 그려졌다. 대기업 연구원이라는 게 안정적이긴 하지만, 도전도 변화도 없을 것 같았다. 내 가능성을 거기다 묻고 싶지 않았다. 의사들이 힘겹게 손으로 하던 시술을 보면서, 이건 내가 개발한 기술로 바꿀 수 있겠다고 느꼈다. 물론 시장성도 보였다.”

(지도교수인 홍대희 교수의 주 연구는 건설·자동화용 로봇이지만, 30% 정도가 의료용 로봇, 특히 소화기 내과와 협업한 내시경 관련 메디컬 로봇 연구였다. 다행히 고려대 이공대 캠퍼스 바로 옆이 고려대 의대와 병원이라 의사들과 쉽게 협업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Q : 지도교수와 공동창업 형태인데.
A : “공동대표이긴 하지만, 내가 전면에 나서서 경영과 투자유치를 총괄하는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교수님은 기술과 인허가, 병원 네트워크 등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교수님이 창업을 적극 권하기도 하셨지만, 회사를 전면에서 끌어갈 사람은 저라고 명확히 하셨다. 사실 교수 혼자 기업까지 책임지기엔 너무 바쁘고, 학생 혼자 창업하면 경험이 부족하다. 교수님과 나는 서로 보완하는 이상적인 조합이라 평가받는다.”

기존 내시경으론 못하던 수술
김경진 기자

Q : 기존 내시경과 어떻게 다른가.
A : “기존 내시경 수술은 대부분 집게나 올가미로 병변을 뜯어내는 방식이다. 작은 용종은 가능하지만, 넓거나 깊은 병변은 한 번에 제거하기 어렵고 꿰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엔도로보틱스는 내시경 끝에 로봇팔을 부착해 절제뿐 아니라 봉합까지 가능한 수술을 구현했다. 다빈치처럼 정교하진 않아도, 내시경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한다. 기존 내시경 끝에 장비를 탈부착하는 ‘애드온’(add-on) 방식이라 저렴해 신흥국 병원에서도 부담 없이 도입할 수 있다는 점도 차별화 포인트다.”


Q : 기술력의 비결이 뭔가.
A : “엔도로보틱스는 1.5m 이상 길고 유연한 내시경 내부에서 와이어로 로봇팔을 정밀하게 조작할 수 있다. 케이블이 길어질수록 제어가 훨씬 어려워지는데, 그걸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엔도로보틱스의 강점이다. 특히 기존 내시경은 하나의 기구만 움직일 수 있지만, 우리는 얇고 잘 구부러지는 케이블을 여러 개 심어놔서 내시경 끝에서 다양한 조작을 동시에 할 수 있다.”


Q : 복강경과는 다른 건가.
A : “내시경은 식도나 항문을 통해 장기 내부로 들어가고, 복강경은 배를 절개해 장기 바깥을 수술하는 방식이라 수술 대상이 다르다. 물론 지금까지 내시경으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복강경이 장기를 절단해 내부 수술을 하거나 아예 개복 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내시경 로봇이 상용화하면 그럴 필요가 없어진다. 우리가 개발한 로봇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 지점이다. 기존 내시경의 한계를 넘어서야 진짜 치료 수단이 된다.”

“소화기내과 의사들 쌍수 환영”

Q : 실제 의사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A : “의료진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라이브 수술이 진행되는 국제콘퍼런스에 참석한 한국과 인도·유럽의 소화기내과 교수들이 엔도로보틱스 내시경 로봇으로 실제 수술을 하는 걸 지켜봤고, 우리 기술력을 인정했다.”


Q : 상용화하려면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처나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허가가 필요할 텐데.
A : “국내 식약처 허가는 이미 받았다. 제품은 쓸 수 있는 상태다. 다만 보험 등재가 안 돼 아직 병원에서 바로 쓰긴 어렵다.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수가 등재를 위한 데이터를 쌓고 있다. 미국 FDA도 곧 나온다. 현재 임상 마무리 단계고, 늦어도 내년 1분기 안에는 승인이 날 거로 본다. 미국은 승인만 나면 바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어서, 오히려 국내보다 먼저 매출이 날 수도 있다.”


Q : 글로벌 톱 의료장비 기업이 어떻게 관심을 보이고 있나.
A : “우리 기술을 꽤 일찍부터 주시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엔도로보틱스 내시경 로봇으로 시술하는 장면을 직접 보러 왔고, 해외 본사에서도 기술 시연을 요청한 적이 있다. 작년부터 구체적인 공동 프로젝트 제안도 오갔다. 초기에는 단순한 관심 차원이었다면, 지금은 이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다는 걸 인식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분위기다. 그곳 기술진이나 경영진이 우리 기술 수준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느껴진다. 현재 글로벌 총판과 지분 투자를 위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김 대표는 비밀유지조항 때문에 회사명을 알릴 수 없다고 했다. 대신 늦어도 다음달 말이면 투자를 위한 계약이 마무리된다고 밝혔다.)

윤성택 고려대 연구부총장
“엔도로보틱스는 2019년 설립과 동시에 고려대 기술지주에서 초기투자를 단행해, 현재 200배 이상의 성장을 이루어 온 대표적인 교원 창업기업이다. 박사 제자와 지도교수가 역할을 나눠 창업한 것도 이상적이지만, 공대 연구자가 한 캠퍼스 내에 있는 의대 임상의들과 현장에서 수시로 소통하면서 느낀 점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한 것도 고무적이다.”

임준현 패스파인더에이치 투자팀장
“엔도로보틱스는 글로벌 기술력을 갖춘 만큼 해외 병원과 연구진들이 관심을 더 많이 가질 정도로 전도유망한 기업이다. 직접 개발한 수술용 로봇팔들을 위나 대장 내에서 원활히 조종할 수 있도록 하는 동력 전달 및 제어 기술이 탁월하다. 이것을 기존 내시경 장비에 부착할 수 있도록 해 활용도를 높인 것 또한 탁월한 장점이다.”


◆‘혁신창업의 길’에서 소개하는 스타트업은 ‘혁신창업 대한민국(SNK) 포럼’의 추천위원회를 통해 선정합니다. SNK포럼은 중앙일보ㆍ서울대ㆍKAIST를 중심으로, 혁신 딥테크(deep-tech) 창업 생태계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단체입니다. 대한민국이 ‘R&D 패러독스’를 극복하고, 퍼스트 무버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에 기반한 기술사업화(창업 또는 기술 이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최준호 과학전문기자, 논설위원



최준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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