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과의 관세협상에서 ‘온플법(온라인플랫폼법)’ 도입에 강한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확인됐다. 앞으로 한미 협상 테이블에서 핵심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17일 정부 고위관계자는 중앙일보와 만나 “협상에서 미국이 가장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게 바로 ‘온플법’이다.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보다 압박 강도가 세다”며 “이번 협상의 최대 난제로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미국이 자국 빅테크 규제에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캐나다의 경우 최근 디지털세를 부과하기로 했다가 목전에 두고 백지화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이 문제를 반드시 해소해야할 한국의 비관세 장벽으로 규정하고, 법 제정 추진 중단 등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온플법은 대형 플랫폼 기업을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규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준비 중인 온플법은 크게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규제법과 거래공정화법을 포괄한다. 독과점규제법은 대규모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를 사전에 지정해 끼워팔기 등의 불공정행위를 규제하는 내용이고, 거래공정화법은 수수료 상한제와 영세 업체 우대 수수료율 도입 등이 핵심이다.
문제는 규제 범위에 한국에서 서비스 중인 구글·애플 등 미국 빅테크가 대부분 포함된다는 점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빅테크의 미국 의회와 행정부에 대한 로비가 엄청난 것 같다”며 “워싱턴 관가에서는 한국 관련해서 온플법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달 초 한국의 통상 협상단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공화당 의원 43명이 미국 정부 서한을 보내 “온플법은 강화된 규제 요건으로 미국 디지털 기업들을 과도하게 겨냥한다”면서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등 중국 디지털 기업은 제외돼 중국 공산당의 이익을 진전시킬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한국 이외에도 캐나다·EU 등의 디지털 규제에도 보복을 예고하는 등 강경하다. 캐나다 연방정부는 지난달 30일부터 시행하기로 한 디지털 서비스세 도입 계획을 철회하기로 했다.
이에 한국 통상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일단 통상당국은 최근 민주당에 관련 입법을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통상당국 고위관계자는 “국회, 관계부처 등과 긴밀히 협의해 맨데이트(위임)을 받아 협상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공정위도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이미 사회적 이슈가 된 배달앱의 수수료 상한제 문제는 구글과 애플 앱마켓 수수료와도 관계가 있으니 '외식산업진흥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이날 민주당과 당정협의에 제시했다. 이에 민주당은“한·미 통상 이슈에 저촉될 수 있는 앱마켓 시장은 빼더라도, 배달·숙박·패션앱 등을 포함해 온플법에 해당 내용을 담아야 한다”며 반대했다.
다만 이 자리 참석한 한 의원은 "일부 이견이 있었지만, 통상 이슈를 감안한 방향으로 점점 좁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과점규제법은 속도조절을 하더라도 거래공정화법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데다, 자영업자 보호를 위해 추진해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기본 입장이다. 하지만 통상당국은 이 역시 구글·쿠팡 등 미국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통상당국이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기 보다는 관세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줄 건 주고, 요구할 건 요구하는 식의 협상이 필요하는 것이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최근 “우리가 지켜야할 부분이 있지만 제도 개선, 경쟁력 강화,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 유연하게 볼 부분이 있다”며 “균형있는 패키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관세 협상이 진행 중인데 온플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미국을 괜히 자극할까 우려스럽다”며 “‘온플법’ 시행에 따른 사회적 후생 증가와 관세 인하에 따른 영향 등을 비교 분석해서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지금 미국과 협상은 방위비, 투자, 농축산물 개방, 디지털 규제 등을 아우르고 있어 통상교섭본부 차원에서 벗어났다”며 “대통령실과 국무조정실 등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이견을 조율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