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정보가 또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중동사태의 흐름을 주도한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하면서다. 지난 6월 13일 이란 군 수뇌부와 핵 과학자 20여 명을 동시에 제거하고, 이란의 방공망을 무력화시켜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서방언론도 국가가 꼭 필요로 할 때 드러나지 않게 역할을 한 정보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는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좀처럼 공개 입장을 내놓지 않는 모사드(Mossad)도 이례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날”이라며 성공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매번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이스라엘 정보력의 원천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시원한 평가가 없다. 우리 안보환경도 정보의 역할을 많이 필요로 하고 있어 궁금증이 더하다. 다행히 이스라엘 정보의 역사와 철학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은 풀린다. 이번 이스라엘의 이란 핵무기 저지 정보전 과정에서도 일부가 보인다.
그간 이스라엘 정보당국의 이란 핵무기 저지 노력은 집요했다. 2010년 나탄즈 핵시설의 원심분리기 파괴, 2020년 이란 핵 개발의 핵심인물 모세 파크리자데 암살 등 한순간도 쉼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이란 핵무기 개발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정보가 속속 입수되자,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직접 나섰다. 물론 총리의 승인을 받았다.
이란 방공망 무력화 뒤엔 ‘자발적 스파이’
우선 핵 과학자 제거부터 나섰다. 핵무기 개발의 지적 자산 제거는 핵시설 파괴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대체 불가능한 과학자’로 분류한 9명은 반드시 제거하기로 했다. 군 지휘부 10여 명을 포함 20여 명의 제거 리스트가 작성되자 정보팀은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작전명도 판타지 소설(나니아 연대기)에서나 나올 법한 불가능한 임무란 뉘앙스를 담아 ‘나니아(Narnia)’로 정했다. 가능으로 만든다는 반어적 결기다.
현장 정보팀은 적진 이란에 직접 들어갔다. 이들의 거주지, 동선, 생활습관 등을 현장에서 깨알같이 체크해 제거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 놓칠 수 있는 실수를 예방하기 위해 인공지능(AI)의 도움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AI의 도움으로 최종 제거방법을 결정했으나, 마지막 관문이 어려웠다. 20여 명을 동시에 제거하기 위해서는 작전 순간 이들이 움직이지 않고 특정 지점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유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정보팀은 기만정보전을 폈다. 페르시아어 트위터를 개설해 최근 모사드 요원들이 이란에 잠입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제거 대상자들이 외출하지 않고 집에 머물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 기만작전이 잘 작동되고 있음을 확인한 정보팀은 6월 13일 새벽 자택 침실에서 잠자고 있는 이들을 모두 제거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완수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스럽다는 평가가 주류다.
작전명 ‘일어서는 사자(Rising Lion)’로 명명된 이란 방공망 무력화에도 나섰다.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이란 핵시설을 안전하게 공습할 수 있도록 이란 영공 진입로를 활짝 열어주기 위해서다. 그 첫 조치로 정보팀은 이란에 직접 침투해 이란 방공망의 정확한 위치, 구조, 작동 방식까지 상세히 파악했다. 이후 이를 파괴하기 위해 드론부품, 폭발물, 정밀 유도무기를 이란 내부로 밀반입해 표적 가까이에 은밀히 배치했다. 이 과정에서 이란 내부 협조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자택에 드론을 숨겨준 의사, 폭탄제조 용품을 현지에서 구입해 준 대학생, 정밀무기 이동을 도와준 시민 등 모두 이란 정권에 불만을 가진 자발적 스파이들이다.
6월 13일 새벽 작전 개시 신호가 떨어지자, 이스라엘 드론은 이란 미사일 발사대들을 자동 요격하고, 사이버와 전자전 장비는 미사일 배터리를 공격해 방공망을 완전히 파괴했다. 방공망이 무너지자,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마음 놓고 이란의 핵시설 생산공장, 핵무기 연구시설 등을 초토화했다.
이렇게 동시에 이루어진 두 작전은 모두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서방 정보관계자들이 세계 정보사(史)의 전설로 남아 있는 1967년 3차 중동전쟁 당시 정보전(2023년 5월 27일 중앙SUNDAY 17면)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고 평가할 정도다.
그런데 성공의 이면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보 DNA와 예외주의(exceptionalism) 정보문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산이 밑받침되고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000년 이상 세계를 떠돌며 핍박받아 온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정보를 생존수단으로 여기는 독특한 정보DNA가 있다. 모세시대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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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일 중앙SUNDAY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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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오랜 디아스포라를 겪으면서 ‘정보는 곧 생존과 직결된다’는 문화가 정착됐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서 생겨난 정보 DNA가 건국 후 예외주의 정보문화로 발전했다. 주변국과의 고립, 끊임없는 전쟁 등으로 국가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정보활동도 ‘예외적으로’ 인정된다는 자기 정당화의 인식이 생겨났다. 하마스나 헤즈볼라 지도부 제거, 이란 핵 과학자와 군 지도부 암살이 정당화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 위해 일한 요원들 정보실패 문책 안 해 즉, 특수한 국가환경 때문에 이스라엘의 정보활동은 일반적 규범이나 기준을 벗어나더라도 예외가 인정된다는 자기 믿음이 확립됐다. 그 인식의 구조는 법적 정당성(legality)보다 정치적 정당성(legitimacy)을 강조하는 미국의 예외주의 대외정책과 닮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예외주의 문화가 강한 이스라엘 정보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점이다. 무엇보다 요원들이 마음 놓고 정보활동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있다. 정보 실패를 하더라도 예외주의 정보문화로 인해 개인을 크게 문책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생존을 위한 헌신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간주해 국가가 그 책임을 흡수한다.
이스라엘 정보의 강점인 실전, 실용주의 정보문화도 예외주의 정보문화의 연장이다. 예외주의 정보문화의 요체는 이스라엘의 생존과 번영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것인데, 이것이 실전·실용형 정보를 이끈다. 이번에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정보보고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실전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정보문화 때문에 ‘피 냄새도 마다치 않는 가장 위험한 정보기관’이라는 이미지를 얻었지만, 이스라엘은 이마저도 환영한다. 냉혹한 이미지는 적에게 공포를 심어주어 생존전략에는 오히려 득이 된다고 본다.
이처럼 이스라엘 정보력의 이면에는 역사를 통해 형성된 독특한 정보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샤피라(Shapira)도 이를 실증해 주었다. 2024년 ‘이스라엘의 정보문화 : 문제해결, 예외주의, 실용주의(Israeli National Intelligence Culture: Problem-Solving, exceptionalism, and Pragmatism)’ 연구에서, 이스라엘의 이런 정보문화는 추상적 담론이 아니라 조직문화 속에 살아있는 실천적 관행임을 확인해 주었다.
12일간의 전쟁은 끝났다. 전쟁의 서막을 연 이스라엘 정보도 표면상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번 전쟁의 정치·안보적 논란과는 별도로 정보기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 이스라엘의 강한 정보력은 어디서 나오는지는 잘 보여 주었다. 이런 모습들이 모두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신뢰로 쌓여 정보력 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 것도 보여 주었다. 부러움을 감출 수 없다.
고개를 우리 쪽으로 돌려보면 우려반 기대반이다. 나라마다 정세가 달라 이스라엘식 정보가 우리에게 정답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남 일처럼 관조적으로만 바라볼 수도 없다. 우리는 북한 핵 위협을 평생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비핵화 여건은 이란과 다른데도 불구하고 이번 전쟁 계기로 국민들 사이에 정보적 수단을 통한 북핵 해결 기대가 모락모락 피어오를 수도 있다. 이 경우 국민 기대에 정보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스러울 수 있다. 만약 이번 이스라엘 정보전이 실제 이란의 비핵화로 이어지기라도 한다면 그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반면, 이번 이스라엘 정보전은 기대효과도 있다. 문제 해결을 중시하는 이스라엘의 실전·실용 정보문화를 우리 여건에 맞게 잘 발전시키면 우리 정보력을 퀀텀 점프시킬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우려와 기대는 결국 우리 하기 나름이다.
최성규 고려대 연구교수. 국가정보원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국제안보 분야에 종사했다. 퇴직 후 국내 최초로 비밀 정보활동의 법적 규범을 규명한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