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20일)을 사흘 앞둔 지난 17일 점심 무렵 서울시 중구의 한 보신탕집.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박모(58)씨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가게 한쪽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리자 삼계탕과 흑염소탕이 적힌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박씨는 “근처에 왔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삼계탕이라도 한술 뜨고 가려고 들른 것”이라며 “요즘은 보신탕이라면 모두들 백안시하는 분위기라 나도 모르게 주변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고 멋쩍게 웃었다. 가게 주인 진모(74)씨는 “예전엔 시장 안에 개 도축장도 있었고 보신탕집도 많았는데 지금은 다 옛날얘기”라며 “이미 보신탕 말고 다른 요리를 찾는 손님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가게 안에는 흑염소탕이나 삼계탕을 주문한 손님들만 눈에 띄었다. 지난해 8월 ‘개의 식용 목적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개식용종식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바뀐 보신탕집 거리 풍경이다. 개식용종식법은 개를 식용 목적으로 도살하거나 사육·증식·유통할 경우 최대 3년의 징역형에 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27년 2월까지 실제 처벌은 유예하기로 했지만 법이 통과됐다는 소식이 이미 널리 알려지면서 복날마다 ‘이열치열’을 외치며 보신탕집을 찾던 식객들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서울시내 다른 보신탕 골목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때 보신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스무 곳 넘게 몰려 있던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도 보신탕집은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업주들은 정부가 지원하는 철거비와 재취업수당 등을 받고 일찌감치 폐업했거나 염소탕·삼계탕 등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단골이 아니라면 일부러 찾아와 보신탕을 주문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보신탕을 즐겨 찾았던 손님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경동시장의 한 염소탕집을 찾은 배중원(78)씨는 “이제 염소 키우는 사람이 늘면 염소탕도 금지하고 병아리 키우는 사람이 많아지면 삼계탕도 못 먹게 할 거냐”고 목소리를 높이더니 “법이 그렇게 바뀌었다고 하고, 오래 드나든 이 가게마저도 안 판다고 하니 다른 걸 먹어야지 방도가 있겠느냐”며 고개를 돌렸다.
보신탕을 찾는 사람들이 줄면서 개 사육농장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개식용종식법이 시행된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623곳의 개 사육농장이 폐업을 결정했다. 전국의 개 사육농장 1537곳 중 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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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반년 만에 문을 닫은 셈이다. 정부는 개식용종식법 시행 이후 폐업 이행 촉진금을 줄이는 방식으로 조속한 폐업을 유도하고 있는 만큼 올해 안으로 315곳이 추가로 폐업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도축장도 자취를 감추긴 마찬가지다. 2019년 경동시장과 서울중앙시장의 개 도축장이 문을 닫으면서 서울시내에서 영업 중인 공식 도축장은 모두 사라졌지만 일부 지역에선 무허가 도축장이 몰래 운영돼 왔던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수요가 뚝 끊기면서 이런 도축장도 조만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게 상인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경동시장에서 축산물을 판매하는 김모(68)씨는 “개 도축장이 사라지고 찾는 손님도 드물어 이제 개고기는 취급하지 않는다”며 “어쩌다 개고기를 찾는 손님이 오면 대림동 등 다른 곳에나 가보라고 알려주고 있다”고 전했다.
보신탕 수요가 줄면서 삼계탕과 오리백숙·장어탕 등 다양한 여름 보양식으로 시선이 옮겨가는 가운데 특히 염소탕이 대체 음식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맛과 조리법이 보신탕과 가장 유사한 음식으로 꼽히는 덕분에 염소고기 수입량은 연일 우상향 중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염소고기 수입량은 지난해 8349t으로 전년(6180t) 대비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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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늘었다. 올해도 지난 5월까지 이미 3857t이 국내로 들어와 지난해 수입량을 넘어서고 있다.
개 식용 금지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일각에선 반발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월엔 존스홉킨스대 재학생 정필립씨와 정민규 변호사가 개식용종식법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대한육견협회도 지난해 3월 “국민의 먹을 자유와 관련업 종사자의 직업 선택 자유가 침해돼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헌법소원 결과와 관계없이 보신탕 거리가 다시 살아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게 관련업 종사자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이미 개 사육농장과 도축장도 대부분 폐업한 상태인 데다 고령층을 제외하면 보신탕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에서다. 여기에 최근 강아지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급속히 늘어난 사회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사업국장은 “개식용종식법의 시행은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