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원자력발전과 재생에너지 간의 균형을 맞추는 무게를 둘 전망이다. 최근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장관 후보자들은 나란히 원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안정적 전력 확보가 국가의 핵심 경쟁력이라는 판단에서다.
20일 주요 경제부처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의거해서 신규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 건설을 변함없이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김 장관은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같이 가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15일 인사청문회에서 김성환 환경부 장관 후보자도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적절한 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해서는 “원전을 추가로 짓는 것은 지난 정부 때 11차 전기본을 통해 확정했다”며 “국민 공감이 필요하겠지만, (신규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올해 초 확정한 11차 전기본에는 지난해 기준 10.5%에 불과한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8년 32.9%까지 높이고, 신규 대형원전 2기와 SMR 1기를 지어 원전 비중을 35.2%(지난해 31.7%)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후보자들의 발언에 대해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원전의 중요성을 재평가한 점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김성환 후보자의 이번 발언은 의외라는 평이 많다. 탈원전을 지지했던 김 후보자가 ‘원전 확대’로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김성환 후보자는 과거 서울 노원구청장 시절 “탈원전 정책 기조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 시절에는 “원전 위주 정책은 세계적 추세에도 맞지 않고, 대한민국 산업과 경제를 망치는 길”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는 “문재인 정부 때는 후쿠시마 사고의 충격으로 원전 중단이 타당하다 봤지만, 현재는 기후위기가 심각해 석탄 화력발전 퇴출이 더 급선무”라며 입장 변화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환경단체들은 “원전확대 옹호는 환경부 장관 자격에 어긋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긍정정인 발언은 AI·전기차 등이 확산하며 전력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현실 인식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정부는 AI를 국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간주하고,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AI 확대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2050년 전 세계 전력 수요가 현재의 2.5배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탄소중립 목표(넷 제로) 달성을 위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커지면서, 탈탄소 전원인 원전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석탄과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기반 전원을 급격히 줄여야 하는데, 무탄소이면서도 대규모로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한 원전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IEA도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량 역시 현재 대비 최소 2배 이상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탈원전'→‘확(擴)원전’ 기조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정부 등이 신규 원전 도입 의사를 밝힌(proposed) 규모는 307기다. 계획을 세우고, 인허가 등을 진행 중인(planned) 109기를 포함하면 400기가 넘는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원전 용량을 2050년까지 현재의 4배 수준(400GW·기가와트)으로 확대하기로 하면서 향후 계획된 원전 규모는 최대 700기에 달할 전망이다. 현재 가동 중(439기)이거나 건설 중인 원전(67기)을 고려하면 향후 원전 규모는 현재의 2.5배 수준까지 확대된다.
‘탈원전’을 시도했던 유럽의 국가들도 속속 원전 확대로 돌아서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겪으면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커진 영향이다. ‘탈원전’에 나섰던 독일·핀란드·벨기에 등은 원전 정책을 전환했고, 기존에 원전을 운용해온 프랑스·영국은 원전 신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현지언론에 따르면 일본에서도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처음으로 원전 신설이 추진된다.
다만 정부의 원전 정책 방향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기후에너지부 신설 등 부처 통합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신설 조직의 형태에 따라 원전 정책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어서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산업부·환경부 등에 분산돼 있던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정책 기능을 하나로 통합한 컨트롤타워 신설을 약속했다.
김성환 후보자는 기후에너지부 신설에 대해 “장관이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 하나”라며 “환경부와 산업부의 에너지 파트를 결합해 가칭 ‘기후환경에너지부’를 (만드는) 안이 하나 있고, 환경부의 기후정책과 산업부의 에너지를 떼어서 신설하는 두 가지 방안이 있다”고 했다. 환경부 내부에서는 에너지 분야도 쪼개 재생에너지 등 일부 기능만 환경부로 이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산업과 에너지는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된 불가분의 관계”라며 산업부 일부 기능이 다른 부처로 편입되는 방안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