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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도 총성 가득, 275발 사격 체험…국산 총기 명가를 가다[이철재의 밀담]

중앙일보

2025.07.19 15:15 2025.07.19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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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발. 지난달 18일 사격한 총탄의 개수다. 이날 가장 많이 총 쏴봤다. 나중에 꿈속에서도 총성이 가득했다.

기자가 P10C 권총을 쏘고 있다. 멋진 폼과 달리 성적은 안 좋았다. 화면 캡처

기자는 92 군번이다. 예비군도 한참 전에 뗐다. 국방부를 출입하면서, 예전에 경찰을 취재하면서 가끔 사격해 본 적 있다. 부대나 시설을 견학할 때 주최 측에서 ‘체험이나 해라’고 마련한 행사에서였다.

문득 사격이 고팠다. 총기 관련 기사를 쓸 때 ‘쏴보지도 못한 총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아닌가’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은 대한민국 ‘총기 명가’ SNT모티브. 현재 한국군의 제식 총기는 거의 대부분 여기서 만들었다.

본사와 공장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에 있다. 주소가 ‘부산’이라고 속지 말자. 도시와는 거리가 멀다.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숨겨졌다. SNT모티브의 전신은 조병창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물색한 자리에 1973년 11월 29일 조병창이 세워졌다. 유사시 북한군 포격에도 안심할 만한 곳이란다.

SNT모티브는 현재 매출의 대부분이 모터·오일펌프·현가장치 등 자동차 부품에서 거둔다. 그래도 기업의 뿌리가 총기라는 사실과 총기 명가의 자부심은 늘 잊지 않는다고 SNT모티브 측이 강조했다.

넓은 부지 한편엔 사격장이 자리 잡았다. 정문을 지나 산길을 한참 달려야 사격장이 나왔다. 가끔 고라니가 지난다고 한다. 이날 취재엔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와 군사 전문 저널리스트 겸 전술교관인 태상호씨가 함께 했다.


사격장에 도착. 안전 교육을 받은 뒤 헬멧·방탄조끼·이어플러그·장갑 등 안전장구를 착용했다. 사격장을 관리하는 정기용 책임은 “총은 잘못이 없다”며 “총이 안 맞는 것은 사수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전사 명사수 출신이다. 처음엔 허투루 들었지만, 뼈를 때리는 명언이라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물론 예외는 있다.

최현호씨가 K4 고속유탄기관총을 쏘고 있다.  화면 캡처

가장 먼저 K4 고속유탄기관총을 쐈다. 손으로 던지는 수류탄과 같은 살상력의 40㎜ 유탄을 빠른 속도로 쏘는 화기다. 이날 사격 코스는 전채(hors-d'oeuvre)부터 강렬했다. 24발들이 탄통을 소진했다. 물론 실탄이 아닌 연습탄이었다.

K4 고속유탄기관총은 급탄식 기관총처럼 유탄을 장전한다. 화면에 보이는 유탄은 연습탄이다. 화면 캡처

엄지로 방아쇠판을 눌렀다. “퉁~퉁~퉁~퉁”. 묵직한 소음을 타고 반동이 몸으로 전해졌다. 삼각대에 두 발을 올린 뒤 밀어내는 사격 자세가 나올 수밖에 없다. 1분에 최대 360발의 유탄을 기관총처럼 쏘는데, 제법 잘 맞았다. 전쟁터에서 적으로 만난다면 저절로 ‘인생 끝’이라 생각 들 수 있을 정도다. 야전에선 K4에 주·야간 조준경을 단다. 위력에 정밀도까지 갖추니 가히 ‘천하무적’이다.

나뭇대기가 K4 고속유탄기관총에서 나간 연습탄에 맞아 날아가고 있다. 실탄의 살상 반경은 5m다. 화면 캡처

K4는 본체 무게만 34.4㎏이다. 상당히 무겁다. 그래서 더 가볍고 유효 사거리와 명중률을 더 높인 40㎜ 고속유탄기관총-Ⅱ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다음은 K15 경기관총K16 기관총. 모두 한국군에서 제식화한 기관총이다. 100발씩 모두 200발을 사격했다.

최현호씨가 K15 경기관총을 사격하고 있다. 기동 중 사격하는 데 잡을 수 있는 권총손잡이가 보인다. 화면 캡처

K15 경기관총의 탄 구경은 5.56㎜다. 분대 지원화기로 K3를 대체하고 있다. K16 기관총은 7.62㎜ 탄을 쏜다. M60을 대신해 차량이나 헬기에 올려놔 사격한다. 소대 지원화기로도 보급 중이다.

기관총은 첫 사격이다. “드르륵~.” 짧게 끊어 쐈다. “드르르르르르륵~.” 길게도 쐈다.

확실히 소총보다 반동이 셌다. 최현호씨는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은 M60이나 K3에 대한 추억이 많을 것”이라며 “오늘 사격 경험으로 감히 말하건대 (K15·K16과 K3·M60은) 천양지차(天壤之差)”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안정적으로 집탄이 된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K16 기관총을 쏘고 있다. 왼쪽에 탄피가 날아가는 장면이 찍혔다. 화면 캡처

촬영하러 온 영상팀 김자명 PD를 사대로 불렀다. 김 PD는 군 시절 M60 사수였단다. M60과 K16을 비교할 수 있겠다고 싶었다. 그런데…. 표적 여기저기에 총탄이 흩어졌다. “기관총을 많이 사격한 경험이 있다”던 김 PD였다. 김 PD는 “K16이 M60보다 반동이 더 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태상호씨는 “발사 속도가 빠르면 반동이 세다고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K16도 탈착한 뒤 기동하면서 사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K15엔 아예 권총손잡이가 달렸다. 태상호씨는 “우크라이나나 중동에서의 전쟁을 살펴보면 화력을 쏟아낼 수 있는 급탄식 기관총이 아직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SNT모티브의 9㎜ 삼형제 P10C 권총, 저위험 권총, STSM21 기관단총을 들었다. 모두 9㎜ 탄을 쏜다. 아직 제식화 중이거나 제식화를 준비 중인 총기들이다.

조서영 PD가 P10C 권총을 사격하고 있다. 화면 캡처

P10C 권총은 SNT모티브가 CZ(체코 조병창)와 기술 제휴를 맺은 뒤 개발한 권총이다. 공이가 직접 뇌관을 때리는 스트라이커 방식의 권총이다. 권총의 베스트 셀러인 글록이 스트라이커 방식이다. 그래서 P10C의 별명은 ‘가성비 글록’이다. CZ의 P10C는 지난 8일 독일 연방군의 제식권총으로 선정됐다.

P10C는 10발을 쐈다. 듣던 대로 그립이 촥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명중하면 넘어지는 표적 10개가 10m도 안 되는 거리에 놓였다. 기자는 사격 솜씨가 없는데, 권총은 더 형편없다. 표적 몇 개를 넘어뜨렸지 밝히기 부끄러울 정도의 성적이었다.

김자명 PD와 함께 촬영 중인 조서영 PD를 불러 사대에 세웠다. “탕~.” 첫발에 표적이 쓰러졌다. 다들 놀라 “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명중탄 4발. 역시 총은 총기가 아니라 사수가 좌우하는 법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격했다”는 조서영 PD는 한껏 자신감에 찼는지 “ 국가가 부른다면 입대하겠다”고 선언했다. 나중에 잊지 말도록 기사에 조서영 PD의 소신 발언을 박제해본다.

기자가 저위험 권총을 쏘고 있다. 화면 캡처

이어 저위험 권총 6발을 쐈다. 저위험 권총은 서부 영화에서 보는 리볼버다. 그리고 탄두가 플라스틱이다. 범죄 현장에서 용의자를 제압하려고 기존 38구경 권총보다 위력을 10분의1로 줄였다. 허벅지에 쏠 경우 총탄이 관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위험’이다. 경찰은 내년부터 서울·부산부터 저위험 권총을 지급한 뒤 2027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범죄는 날로 흉포해지는데, 총기 사용은 엄격한 한국의 치안 상황에서 고심 끝에 나온 게 저위험 권총이다. 테이저건만으로 범죄를 막고 경찰관의 안전을 보장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태상호씨는 “새로운 개념의 권총이기 때문에 관련 규정을 잘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보급을 준비 중인 저위험 권총. 이처럼 실린더가 돌아가 연발사격하는 리볼버다. 화면 캡처

사설이 길었다. “딱~ 딱~ 딱~.” 어렸을 때 갖고 놀았던 화약총을 쏘는 기분이었다. 반동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위력이 작으니. 다만 리볼버 방아쇠를 당기는 게 힘들었다. 촬영 동영상을 나중에 보니 권총이 흔들거릴 정도였다.

최현호씨가 STSM21 기관단총을 사격하고 있다. 화면 캡처

STSM21 기관단총은 30발을 사격했다. STSM21엔 모듈화 구조, 좌우수 호환, 피카티니 레일, M-LOK, 프리플로팅 배럴 등 최신 기술을 적용했다. 탄창도 가볍고 내구성이 강한 폴리머 탄창이다.

“탕~ 타타앙~.” 단발, 연발 모두 부드러웠다. 반동도 적었다. 표적 중앙을 빗겨나갔지만, 탄착점이 예쁘게 모였다. 예전에 경찰특공대에서 MP5 기관단총을 사격한 적 있다. 당시 사격에서 1등을 차지했다. 그래서 기관단총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개인적으론 STSM21이 MP5보다 더 잘 맞았다. MP5가 기관단총의 GOAT라지만, 1964년 개발이 끝났으니 이젠 노장이다. 최현호씨는 “가늠쇠와 가늠자를 바꿀 수 있고, 피카티니 레일에 다양한 액세서리를 달 수 있다”고 말했다.

태상호씨가 STSR23 반자동 저격총을 사격하고 있다. 화면 캡처

대미는 STSR23 반자동 저격총이 장식했다. 모두 5발을 사격했다.

STSR23은 7.62㎜ 탄을 장전하며, 지정사수(DMR)에게 나눠 줄 저격총이다. 지정사수는 소총수가 상대하기 힘든 중거리 이상의 적 저격수나 기관총 사수를 무력화한다. 보통 분대와 함께 다닌다. 저격수는 지정사수와 달리 별도로 다닌다. 북한군은 분대당 지정사수 1명을 두고 있다.

기자가 STSR23 반자동 저격총을 쏘고 있다. 화면 캡처

300~600m 떨어진 표적을 쏘는 총인데, 사격장에 그만한 거리가 안 나왔다. 그런데도 쏘기가 힘들었다. 조준부터 난관이었다. 조준경으로 표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조준경이 워낙 고배율이라 시야가 확 좁아진다. 눈에다 빨대를 대고 그 구멍으로 물건을 찾는 기분이었다.

이래서 저격수 옆엔 반드시 관측수가 있는가 싶었다. 스나이퍼 1명이 홀로 맹활약하는 할리우드 영화는 과장이라는 걸 알게 됐다. 태상호씨는“표적을 단발에 맞히기 힘들다. 실패할 경우 표적이 살려고 움직이니 관측수가 빠른 재탄 명중을 돕는다”고 말했다.

한국군도 최근 저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저격에 투자하고 있다. 태상호씨는 “저격에선 총기뿐만 아니라 탄도 중요하다. 탄에 대한 인식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호씨는 “총과 탄뿐만 아니라 광학장비에도 신경 써야 하며, 사수의 훈련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손주현 SNT모티브 특수사업본부 이사는 “SNT모티브는 우리 군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K 시리즈 소총을 공급하는 방산업체”라며 “최신 트렌드·내구성·신뢰성을 바탕으로 우리 군이 최고의 전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취재한 지난달 18일도 무척 더웠다. 모두 일정을 마친 뒤 상의가 젖을 정도였다. 무더위 속에서 땀 흘리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국군 장병과 경찰관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이만 총총(悤悤).



이철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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