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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모델 3인 "은퇴 대신 런웨이로…화양연화를 다시 잡아야지" [월간중앙]

중앙일보

2025.07.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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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인플루언서(8) | 시니어모델 3인 김칠두·박윤섭·장세진

‘영원한 젊음’ 추구하는 모델 업계서 뼈 깎는 관리로 존재감 두각
“청년 대상 소구력 갖춰야 하나 스스로 나이 듦에 당당해야 돼”

‘멋지게 늙는다’는 건 뭘까. 나이 든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멋은 그렇지 않다. 그건 끝까지 쟁취해야 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그런데 영원한 젊음을 추구하는 모델 업계에서 나이 육십에 데뷔해 살아남은 이들이 있다. 달리 말하면 환갑이고, 일반 기업에선 퇴직 정년인 나이다. 육체적으로도 웬만한 지병(持病) 몇 개쯤은 달고 사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들은 전성기를 구가하는 한창의 모델들과 어깨를 견주고 있다. 단순히 나이 든 모델이라는 희소성 덕에 주목받은 것도 아니고, 노년층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 발탁된 고령화사회의 수혜자도 아니다.

말 그대로 경쟁력 때문이다. 시니어 모델이라는 말에 후한 기준은 없다. 조각 같은 몸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중에 각인될 만한 존재감도 갖춰야 한다.

월간중앙은 7월 초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니어 모델 3인을 만났다. 저마다 가치관도, 인생사도 달랐다. 김칠두(69) 씨는 세월의 풍파 속에서 여러 일을 전전했다. 젊은 시절 안 해본 일이 없다. 박윤섭(65) 씨는 사내정치가 만연하다는 1군 건설사 상무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장세진(64) 씨는 배우로 활동했지만 2012년 이후 사업 실패로 오래도록 브라운관에서 두문불출했다. 그러나 멋지게 늙는다는 말에 대해 이들의 의견은 같았다. “젊은 세대가 인정해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왼쪽부터) 김칠두·박윤섭·장세진 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니어 모델이다. 그들이 결성한 실버웨이는 최근 ‘건강하고 아름다운 나를 발견하다’는 글로벌 프로젝트에 발탁돼 참여했다. 최영재 기자


타고난 외모, 뼈를 깎는 노력


Q : 아무리 모델이라고 해도 60대 아닙니까. 어떻게 관리하는 겁니까?
A : 김칠두(이하 ‘김’)_ “타고나는 거지. 체중은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어도 타고난 골격을 어떻게 할 수는 없어. 키, 어깨 너비, 두상 크기, 이런 것들은 타고나야 돼.”
A : 박윤섭(이하 ‘박’)_ “칠두 형님이 앞뒤 다 잘라서 답변한 거고. 어느 정도 노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건 맞아. 나도 식스팩 만들려고 매일 헬스장에서 땀 빼고 있거든. 하지만 모델 업계는 체형과 존재감 말고는 승부할 수 있는 요소가 없어. 뭐가 더 쉽다, 어렵다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 연기를 보자고. 외모도 중요하지만 연기력이란 게 또 필수잖아. 그리고 그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어느 정도 성장시킬 수 있는 영역이고. 외모가 부족하다면 연기력으로 개성파라든가 인상파라는 칭호도 얻을 수 있지. 하지만 모델은 눈에 보이는 게 다야.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봐도 모델이 연기자가 되는 경우는 있어도 연기자가 모델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잖아.”

김칠두 씨는 20대 시절부터 모델을 꿈꿨으나 현실적인 이유로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60세가 넘어서 모델로 정식 데뷔했다. 그의 꿈은 업계 톱 모델이자 세계적인 모델이 되는 것. 최영재 기자

Q : 장세진 씨는 배우에서 모델로 변신한 당사자인데요?
A : 장세진(이하 ‘장’)_ “나는 배우로서 부적합한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야. 애초에 연출에 뜻이 있어서 대학에 간 건데, 어쩌다 연기할 기회가 주어져서 여기까지 온 거거든. 사람 운명이 마음대로 정해지는 게 아니니까.”

장세진 씨는 2002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문영철 역할로 분하며 인기를 얻었으나 2012년부터 모습을 감췄다. “영화사도 했고 다른 사업도 했는데 다 망했어. 야인시대의 야인이 아니라 현실에서 야인 생활을 한 거야. 만나는 사람들이 죄다 변호사니 무슨 위원회니 그랬으니까.” 그의 설명이다.

그러다 2020년 종편 방송국 MBN의 시니어 모 델을 선발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오래살고 볼일〉에 출연해 최종 7인에 올랐다. 그때 함께 출연한 박윤섭 씨와 친분을 맺으며 이날까지 인연을 이어온 것이다.

A : 박_ “그때 난 세진이가 그렇게까지 잘해낼 줄 몰랐어. 왜냐면 출연 첫날 스튜디오에 웬 거인이 나타났는데 누가 봐도 모델을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거든. 키는 191㎝에 체중도 110㎏인가 나갔을 거야. 매주 촬영하는데 그걸 어떻게 교정하겠어. 그때 진행자인 한혜진(모델) 씨가 출연자들더러 누가 가장 먼저 탈락할 거 같냐고 물었을 때 나는 자신 있게 세진이라고 말했지. 그날 처음 봤는데도. 그래도 목숨 걸고 참여해서 결국 20㎏을 넘게 빼더라고.”
A : 장_ “삶의 가치 기준이 달라졌거든. 잘나갈 때는 내 이름은 몰라도 야인시대 문영철은 다 알았어. 어딜가든 모두가 나를 좋아해 주고 집에 데려가서 선물주고 사진만 함께 찍어줘도 기뻐하고… 과분한 사랑을 받았지. 하지만 인터뷰 기회가 열 번 있으면 한 번 할까 말까였어. 연기도 그렇고 모든 게 내게 안 맞는다는 기분이었거든.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한 거지. 그래서 고마운 분들께도 안일하게 대했던 것 같고. 그런데 인생의 굴곡을 세게 겪고 나니까 뭘 하더라도 원없이 해보자고 마음이 바뀌었어. 모델 서바이벌도 그래. 과거의 사고방식으론 나가려야 나갈 수 없었을 거야.”

장세진 씨는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문영철 역할로 분하며 전국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여러 사업 실패로 모습을 감췄으나 모델로 다시 브라운관에 등장했다. 최영재 기자


환갑 넘어 데뷔한 그들


Q : 그럼 김칠두 씨와 박윤섭 씨는 어쩌다 60대에 모델이 된 겁니까? 보통 그 나이대는 사회에서 은퇴할 나이라고들 하는데.
A : 김_ “원래 관심이 많았어. 근데 20대부터 혼자 세파를 견디려니까 여건이 안 됐지. 이것저것 웬만한 일은 다 하다가 결혼까지 한 거야. 생계를 위해 사업도 해보고, 음식점도 해보고. 마지막으로 개업했던 순댓국집도 잘 안 됐어. 가족들과 앉아서 이제 뭘 해야 하나 상의하는 와중에 딸이 추천하더라고. 웬 아카데미에서 시니어 모델을 선발한다더라, 응모해보자고. 나이 먹고 다른 일은 힘에 부치고 해서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아카데미에 가서 한 며칠 워킹을 배웠나, 바로 런웨이에 올랐지.”


Q : 그게 몇 번 걸어본다고 불쑥 되는 겁니까?
A : 김_ “어려서부터 모델에 관심이 많았으니까. 20대엔 모델 선발대회에서 입상도 했었고. 현실적인 사정 때문에 모델은 못 해도 내심 집착했던 거야. 모델 워킹을 따라 해보고 일상에도 접목하고 살았거든. 그래서 실전에서 통했나 봐.”


Q : 박윤섭 씨는 모델에 뛰어든 계기가 뭐예요?
A : 박_ “나는 뭐 드라마틱한 전환기가 있었던 건 아냐. 인생에서 모델을 하리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어. 연대 건축과 나와서 쌍용그룹 상무 하다가 퇴직하고 설계사무실을 했어. 할 줄 아는 게 건축뿐이니까. 잘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 일평생 나혼자 잘났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쌍용이란 백그라운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야. 엘리트 의식에도 빠져 있었고. 그때 후배가 찾아와서 칠두 형님 사진을 보여주며 모델에 도전해보라고 권유했어. 키도 186㎝겠다, 대학 때도 말쑥하니 괜찮지 않았냐면서. 그래서 칠두 형님이 있던 아카데미를 찾아갔는데 운명의 장난인가, 복도에서 딱 형님과 마주친 거야.”

박윤섭 씨는 쌍용그룹의 임원이었으나 퇴직 후 모델 업계에 뛰어들었다. 최영재 기자

Q : 그러니까 세 분이 알게 된 건 박윤섭 씨가 중심에 있었던 거네요. 아카데미에서 김칠두 씨와 알게 됐고, 프로그램에서 장세진 씨를 만났으니까.
A : 박_ “그렇지. 칠두 형님과는 첫날부터 친해졌어.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얘기한 적도 없고. 그게 형님 스타일이야. 나도 옆에서 보고 배우면서 시작한 거지. 시니어 모델 붐이 유행한 건 칠두 선생님 몫이 컸어.”


Q : 세 분이 이렇게 모이는 게 그리 드문 일은 아니군요?
A : 장_ “4년 전에 시니어 모델들로 구성된 ‘실버웨이’란 모임이 결성됐어. 다 그 멤버야. 최근엔 차세대 시니어 모델을 키운다는 의미로 인플루언서 신사마(본명 신재윤)도 영입했어.”

실버웨이는 지난 3월 나라아트가 주최한 ‘건강하고 아름다운 나를 발견하다’는 글로벌 프로젝트에 발탁돼 참여한 바 있다. 한·중·일 시니어 셀럽과 기업인들이 모인 국제 행사에서 대표 모델로 무대에 올라 시니어 산업의 가능성과 가치를 드러내는 상징적 역할을 맡았다.


Q : 어떻습니까. 모델이 되고 나서 인생의 변화도 크게 찾아왔을 듯한데요.
A : 김_ “그동안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이 그거야. 당신 인생 역전했지? 그래서 돈도 많이 벌었지? 맞아. 시니어 모델 붐이 일어난 2018년부터 여기저기서 인터뷰나 CF 촬영 제안이 많이 들어왔거든. 나야 태동기부터 활동했으니 말마따나 인생 역전이지. 근데 모델은 배고픈 직업이야.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나서 바로 나락으로 떨어졌어. 고생 아닌 고생을 또 했지.”


Q : 부업으로 다른 일을 또 하셨나요?
A : 김_ “아니, 난 모델만 했어. 그러기로 작정했으니까.”



시니어도 젊음 증명해야


Q : 패션 업계는 좀 어떻습니까. 시니어 모델에 대한 선호 현상이 확실한가요?
A : 박_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시니어 모델이 뜬 것처럼 얘기들을 한단 말이야. 연령층이 높아진 소비자를 공략하려면 같은 세대를 모델로 기용해야 한다는 논리야. 말은 그럴듯하지. 하지만 냉정히 말해서 아름다움은 영원히 젊어야 하는 거거든. 10조원 이상의 패션 왕국을 건설한 랄프로렌의 컬렉션을 보면 시니어 모델은 드물어. 왜일까. 팔리는 이미지가 아니니까. 시장은 젊은 얼굴을 원해. 대학생부터 노인들까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더 어려 보이길 원하잖아. 말하자면 시니어 모델이 주류로 편입됐다기보다 몇몇 예외가 주목을 받은 거지.”


Q : 그래도 그런 욕망은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습니까? ‘나도 멋있게 늙고 싶다’라든가.
A : 박_ “멋있게 늙어간다는 말, 결국 본질은 자기관리야. 그것도 젊어 보이기 위한 거. 시니어 모델이 멋있어 보이려면 젊은 세대에 어필해야 돼. 시니어 모델이라고 업계 기준이 다르지도 않아. 흔히들 잘못 아는 게 모델이 옷을 입는다고 하거든. 사실은 모델이 옷에 자신을 맞추는 거야. 키는 188~190㎝, 체중은 70~75kg으로. 그거 유지하려면 당연히 식단, 운동 다 병행해야지.”
A : 김_ “시니어 모델이라고 다를 거 없어. 젊은 세대가 닮고 싶어 하는 이상이어야 돼. 그들이 볼 때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거나 저런 풍모를 갖고 싶다거나. 패션은 욕망의 산업이라고 하잖아. 그리고 그 욕망의 중심엔 청년이 있고. 나를 7년 동안 모델로 쓰는 브랜드가 있는데 왜 날 택했느냐 물으니 그 사주가 그러더라고. 내가 젊은 애들 옷을 입고 소화하는 걸 젊은 애들이 좋아한다고.”


Q : 그렇다면 20·30세대가 어르신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중후한 매력이란 대답을 예상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연륜과 권위에서 나오는 아우라는 서열 문화가 강한 남성들 사이에서 최우선으로 선호되는 매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청년층이 시니어 모델의 멋을 추구하는 이유도 설명되지 않을까 내심 생각했으나 다소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A : 김_ “농담처럼 들릴진 몰라도 수염이지. 우리나라엔 털이 나는 사람이 별로 없어. 그런데 요즘엔 이걸 선호하더라고. 아마 할리우드 영화를 접하게 되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 남성미를 갖춘 배우들이 수염도 멋있게 나잖아. 그게 지금 젊은 세대의 욕망이자 로망이 아닌가….”
A : 박_ “일리 있어. 나도 보면 수염이 많거든.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6만 명쯤 되는데 통계를 보면 20·30세대에 몰려 있더라고.”

(뒷줄 왼쪽부터)신재윤·장세진·박윤섭 씨. (앞줄)김칠두 씨. 실버웨이는 외연 확장을 위해 최근 인플루언서 신재윤 씨를 영입했다. 최영재 기자


꿈에는 연령제한이 없다


Q : 수염은 그렇다 치더라도 결국 시니어 모델도 프로의 세계라는 걸로 이해됩니다. 업계 동료들보다 늦게 진출했을 뿐 단순히 희소성만으로 살아남는 영역이 아니라는 거죠.
A : 박_ “시장의 룰은 같아. 우리더러 ‘선생님 멋있어요’라고 하는데, 그런 말들을 숫자로 환산해서 이해할 수 있어야 돼. 프로야구를 봐. 누구는 연봉 1억, 누구는 10억, 누구는 100억이야. 간단한 거야. 남들보다 10배, 100배를 잘하니까 그만큼 보상받는 거지. 광고주도 마찬가지야. 누구보다 사람을 예리하게 평가하고 결과에 용서 없는 부류지. 왜 안 그러겠어? 자기 주머니에서 생돈이 나가는데. 시니어 모델이라고 더 대우받고 차별받는 거 없어. 남들보다 경쟁력을 갖춰야 기용되는 거야.”
A : 김_ “동네 놀이터가 아냐. 동호인도 아니고. 그리고 젊은 세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들의 취향이나 생각을 억지로 이해하려 들진 않아. 내가 이러면 젊은 애들이 좋아할까? 그런 생각에 빠지면 결국 나에 대한 게 없어져. 나이 듦에 당당해야 돼.”


Q : 그러면 앞으로 어떤 일을 더 하고 싶으신가요?
A : 김_ “특별하게 해보고 싶은 것보다는 나는 모델이니까, 내가 몇 년을 더 모델 생활할지는 몰라도 업계 톱이 되고 싶지. 세계적인 모델이 되는 게 꿈이야.”
A : 박_ “세계적인 설계사가 되고자 하는 목표는 여전히 있어. 모델로서도 성공하고 싶고. 그냥 커피 마시고 밥 먹고 그렇게 시간 보내는 게 싫어. 인생을 얼마나 살았든 구체적인 목표는 언제나 있어야 돼.”
A : 장_ “세 살 먹은 우리 두 딸 잘 키워서 시집 잘 보내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그래도 예전처럼 돈만 좇지는 않아. 사람들과 어울려서 일을 기획하고 진행해서 결과를 내는 과정 자체가 즐거워. 그 일을 계기로 나중에 얼마나 큰 활화산이 터질지도 모르는 거고. 내 인생의 화양연화를 다시 잡아야지.”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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