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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빛나는 가치 '연대'에 집중했다...속편도 만들고 싶어"

중앙일보

2025.07.1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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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의 주인공 김독자(안효섭, 가운데)는 어느 날 눈앞에 펼쳐진 소설 속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료들과 힘을 합친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10년 넘게 연재된 웹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의 연재가 끝나는 날, 소설의 유일한 독자이자 평범한 직장인 김독자(안효섭)는 주인공 유중혁(이민호)이 홀로 살아남는 결말에 실망해 작가에게 항의 메시지를 남긴다.

퇴근 길 동호대교 위 지하철 안에서 '그러면 당신이 직접 이야기를 써보라'는 작가의 답장을 받은 김독자의 눈 앞에 소설 도입부와 똑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도깨비가 나타나 승객들에게 정해진 시간 내에 생명체를 죽이라는 미션을 내리고, 거대 괴수가 지하철을 뒤집는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 거대 괴수의 습격으로 파괴된 동호대교 위에서 김독자(안효섭)와 유중혁(이민호)이 만나는 장면.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의 주인공 김독자(안효섭, 왼쪽)의 목표는 소설 속 주인공 유중혁(이민호, 오른쪽) 등 동료들과 힘을 합쳐, 소설의 결말을 바꾸는 것이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소설의 결말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김독자는 주인공 유중혁, 회사 동료 유상아(채수빈), 군인 이현성(신승호) 등 동료들과 함께 소설의 결말을 새로 쓰기 위한 모험에 나선다.

23일 개봉하는 판타지 대작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의 줄거리다. 글로벌 누적 조회수 3억뷰를 기록한 싱숑 작가의 동명 웹소설이 원작이다.

3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는 미션 수행 게임을 보는 듯 빠르게 전개된다. 생존 본능과 인간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간 군상 또한 '오징어 게임'처럼 실감나게 그려낸다.

스펙터클한 CG(컴퓨터그래픽)에 힘입어 멸망 이후 세계관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겨온 김병우(45) 감독은 이 작품을 '참여형 영화'로 규정했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을 연출한 김병우 감독.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17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 "주인공 김독자에 빙의된 것처럼 독자들을 몰입시키는 게 원작의 큰 매력"이라며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도 게임처럼 몰입해 관람케 하는 게 영화의 가장 큰 목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구 밖에서 인간들의 사투를 지켜보는 신 같은 존재인 '성좌', 특정 인물을 후원하는 성좌인 '배후성' 등 원작의 개념과 두 시간 짜리 롤플레잉 게임 같은 설정은 원작과 게임 문법에 익숙치 않은 관객에겐 부담으로 다가갈 수 있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주인공 김독자(안효섭) 일행이 주어진 미션을 하나씩 수행해가는 롤플레잉 게임을 보는 듯한 구성이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김 감독은 이를 감안해, 핵심 메시지를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고 말했다.
"원작에 재미있는 요소들이 너무 많아 처음엔 많이 헤맸어요. 그러다 원작의 여러 빛나는 가치 중에서 구심점이 될 키워드인 '연대'를 끄집어냈습니다. 김독자는 자신의 지식을 자기 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해 사용합니다. 그걸 중심으로 한 덩어리의 이야기를 만들었죠."

예고편이 공개되자, 원작 팬을 중심으로 독자들을 매료시켰던 이순신 성좌 등 다양한 배후성이 부각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이 제기됐다.

김 감독은 "영화는 550여 편에 달하는 방대한 원작의 초반부만 다루는데, 배후성은 원작에서 중반부 이후에 존재감을 드러낸다"며 "원작을 안 본 관객도 쉽고 재미있게 보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정보가 범람하지 않도록 교통 정리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속편을 만든다면 충분히 고민하고 접근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의 이지혜(지수)는 원작의 칼 대신 총을 사용해 괴수들과 맞선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원작에서 이순신을 배후성으로 두고 있는 이지혜(지수)의 무기가 칼에서 총으로 바뀐 것에 대해선 "비슷한 액션 장면이 나오는 걸 지양하고, 무기를 통해 캐릭터들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내면의 아픔, 트라우마와 싸워가며 성장해가는 김독자 캐릭터가 영화에서 너무 선하게만 그려졌다는 지적과 관련해서도 김 감독은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불우한 성장 환경에서 비롯된 김독자의 트라우마가 초고에는 있었어요. 하지만, 영화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연대라는 구심점과 상관 없는 장면들은 배제할 수 밖에 없었죠. 김독자를 이타적 행동을 하는 평범한 청년으로 그려야 생면부지의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한다는 이야기가 빛날 거라 생각했습니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 김독자(안효섭) 일행 중 가장 어린 이길영(권은성)은 곤충과 소통하는 능력을 활용해 동료들을 돕는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 주인공 김독자(안효섭, 가운데)는 지하철 3호선을 배경으로 동료들과 함께 처절한 생존 게임을 벌인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는 김독자 일행 중 가장 나이 어린 이길영(권은성)에 대해 "짐 같은 존재지만, 결정적 순간 자신을 희생해 김독자를 돕는다"며 "연대라는 메시지가 빛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거대한 사건에 휘말린다는 점에서 김 감독의 전작 '더 테러 라이브', 'PMC: 더 벙커'와 맥이 닿아 있다. 그의 차기작인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 또한 재난물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주인공에게 창밖에서 벌어지는 특수한 상황이 다가오면서 고난을 겪게 되는 영화를 주로 해왔습니다. 잘 만들어 놓은 세트가 촬영 끝날 때는 다 부서져 있죠.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시사회 후 원작자로부터 '아주 재미있게 봤다'는 문자를 받았다는 김 감독은 "속편을 만들고 싶고 어느 정도 구상이 돼 있다"며 "'이걸 왜 뺐냐'며 원작 팬들이 아쉬워하는 부분들을 재미있게 담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바람이 이뤄지려면 영화가 손익분기점(600만 관객)을 넘어서는 흥행을 해야 한다. 게임에 익숙치 않은 관객,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까지 극장에 불러들여야 도달 가능한 목표다.

그 '미션'에 영화의 사활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이 한국형 판타지의 새 지평을 열게 될 지, 아니면 원작 훼손 논란 속에 '전지적 감독 시점'이라 낙인 찍힐 지 여부를 결정할 키는 관객이 쥐고 있다.



정현목([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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