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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선풍기·라디오 되살렸다, 요즘 기업들 ‘유산 마케팅’

중앙일보

2025.07.20 08:01 2025.07.2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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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전자의 탁상용 레트로 선풍기. 1970~80년대 제품을 토대로 제작됐다. [사진 신일전자]
“오, 진짜 그 느낌이다.”

회전 다이얼을 돌리면 특유의 ‘딸칵, 딸칵’하는 기계음이 났다. 20일 경기 고양 스타필드 일렉트로마트 매장에서 신일전자의 ‘탁상용 레트로 선풍기’를 본 이모(35)씨는 “옛날 할머니 집에서 보던 그 느낌 그대로”라고 말했다. 신일전자가 2022년부터 출시한 이 제품은 1970~80년대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선풍기의 외형을 본떠 제작됐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수십 년 전 상징적인 제품을 선보이거나 창업주의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헤리티지(heritage·유산) 경영’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단순한 복각을 넘어 브랜드 정체성과 팬덤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LG전자는 금성사 시절 제작된 최초의 국산 라디오인 라디오 ‘A-501’과 최초의 국산 선풍기 ‘D-301’을 현대적으로 복각한 ‘굿즈’를 각각 지난 3월과 5월 잇따라 내놨다. 등록 문화재이기도 한 라디오는 블루투스 스피커 겸 라디오로 재출시됐고, 선풍기는 오리지널 대비 4분의 1 크기로 축소된 탁상형 선풍기로 재탄생했다. 이들 굿즈는 현재 임직원 행사나 LG전자 팬 커뮤니티 등을 통해서만 배포되고 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정식 판매를 기대한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헤리티지 마케팅의 또 다른 축은 ‘기록’이다. 현대차는 오는 2027년 창립 60주년을 앞두고 사사(社史) 편찬에 착수했다. 현대차·기아 총괄 조직으로 십여 명 규모의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고(故) 정주영 선대회장으로부터 이어져 온 인간 중심 철학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포부다.

헤리티지는 ‘공간’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SK는 그룹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선경 시절의 역사를 정리한 ‘선경실록’을 편찬한 데 이어, 지난해부터는 창업회장과 선대회장의 생가인 SK고택을 복원해 그룹의 정체성을 체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두산그룹도 1896년 종로4가에서 출발한 ‘박승직상점’의 127년 역사를 담은 전시공간 ‘두산 헤리티지 1896’을 경기 분당 두산타워에 조성했다. 신세계는 지난 4월 90년 된 옛 제일은행 본점을 ‘더 헤리티지’로 복원해 백화점 본점으로 재개관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헤리티지 마케팅은 제품 제조 강국으로 올라선 한국 산업사의 뿌리를 확인하고 브랜드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주는 도구”라며 “맨손으로 도전해 산업을 일으킨 창업세대의 정신은 내부 구성원에게도 정체성과 자긍심을 심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김수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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