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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2035] 집값, 마음과 승부하지 않기

중앙일보

2025.07.20 08:02 2025.07.2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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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원 정책사회부 기자
정부가 명품 브랜드를 현금으로만 살 수 있게 했다고 상상해보자. 신용카드 할부나 대출은 금지다. 수요를 줄이고 가격을 내려서 누구나 명품을 한 번쯤 살 수 있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여권에선 “능력도 안 되는데 할부나 빚으로 명품을 사는 건 원래 바람직하지 않았다”며 힘을 싣는다. 자 그럼 소비자들이 ‘내일부터 에코백을 들어야지’라면서 명품 가방값이 우하향할까.

아닐 것 같다. 진입 장벽이 생기면 명품은 더 힙해진다. SNS 인증이 늘어나고 평소 관망하던 소비자들의 선망이 커지면서 ‘잠재 수요’가 부풀어 오른다. 어차피 현금 구매력이 있는 소비자도 많은 데다 명품 가치는 외려 올라가므로 브랜드사는 수요가 다소 줄어도 가격을 유지한다. 결국 명품은 더욱 희소하게 변한다.

김주원 기자
이런 상상을 해본 건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접하면서다. 2025년도 대한민국에서 필수재이면서 가장 명품 같은 게 서울 아파트다. 아니나다를까 서울 아파트는 사치재의 특성을 상당히 갖췄다. 가격이 오르면 ‘역시 지금이 가장 쌀 때’라는 패닉 바잉이 생기며 수요가 늘어난다. 과시욕 때문이 아니라는 점만 다를 뿐, 가격이 오를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특성은 명품과 비슷하다. 서울 유주택자의 지위가 명품 소유와 비슷하게 인식될 만큼 힙한 것이 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6·27 대책은 적어도 무주택자들에겐 서울 아파트를 더 명품처럼 느껴지게 만든 대책으로 체감된다. 생애최초 주택구입 목적 대출 한도가 6억원(LTV 80→70%)으로 줄었고 디딤돌·버팀목 대출 등 신혼부부·다자녀 가구를 위한 정책금융 공급도 축소됐다. 신용대출 한도도 연 소득 100% 이내로 쪼그라들었다.

전용 59㎡ 기준 서울 아파트의 중위 가격이 9억~10억원인 상황에서 무주택 실수요자의 대출을 제한한 건 중하급지 아파트 매매가 더 어려워진단 걸 뜻한다. 중위 가격대 아파트가 명품처럼 인식되기 시작하면 9억 아파트가 11억원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당장 돈이 없는 예비 수요자라도 매매 욕구는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상급지의 15억원 아파트가 13억원으로 내려봤자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설상가상 대통령은 “수요 억제책은 이거 말고도 많다”며 수요자의 마음을 기세로 억누르겠단 태세다. 다름 아닌 잠재 수요 유발성 발언이다. 이런 발언은 ‘수요는 실제 지불 능력이 아닌 지불할 마음’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 하는 데서 출발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실물 경제가 소위 나락을 갔을 때도 회복을 확신하는 마음의 힘으로 글로벌 증시는 폭등했었다. 집을 소유하겠다는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허들을 만들어 마음을 꺾겠다고 들면 더욱 집을 소유하고자 하게 된다. 이런 마음은 불변에 가깝다. 집값을 잡기 위해 뭘 하든 기억해야 할 건 마음의 힘이다. 마음은 국가가 승부할 대상이 아니다.





허정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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