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혈연과 가족

중앙일보

2025.07.20 08:06 2025.07.20 13:31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기사 공유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올해 3월, 정부 진실화해위원회의 발표로 지난 수십 년간 한국 민간 입양기관의 입양 실태가 드러나며 파문이 일었다. 이에 한국 정부가 국제 헤이그 입양협약을 비준하고 입양 업무를 직접 관리하기로 결정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한국이 여전히 ‘아이 수출국’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2년 기준, 한국은 세계 3위의 입양 발신국이었고, 대만과 함께 상위 10개국 중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는 두 나라 중 하나였다. 이 두 나라의 경제력은 나머지 국가들보다 평균 10배 이상 높다. 한국전쟁 고아와 극빈층이 넘쳐난 시절을 더 이상 핑계로 댈 수는 없다. 혼외 출산과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배척, 혈연만을 가족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의식을 고려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해외 입양되는 한국 아동들. [사진 진실화해위원회]
인류학은 부모와 자식 간의 애착과 유대가 DNA나 혈연과 큰 관련이 없음을 입증해 왔다. 가족의 사랑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관계에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혈연과 DNA는 가족을 통제하고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문화적 장치에 가깝다.

고대 로마의 입양 제도는 혈연관계를 뛰어넘어 가문을 확장하고 재구성하는 전략적인 도구였다.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비롯해 티베리우스,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기까지, 입양은 로마 제국의 권력 승계에서 오히려 일반적이었다. 상류층에서도 후계자 없는 귀족이 친족의 아들을 가문에 편입시키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이런 사실은 한국에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입양 관리를 국가 차원으로 이관하는 결정 이상으로 필요한 것은 가족에 대한 인식 변화다. 실질적이고 포괄적인 사회적 지원과 복지 시스템도 구축돼야 하지만 혈통을 넘어 포용과 관용의 가치가 가족의 정의가 돼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문화도 사해동포의 보편주의적 지평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