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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의 이코노믹스] 스테이블 코인의 화폐 발행 도전…통화주권 약화 우려

중앙일보

2025.07.20 08:18 2025.07.2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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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화폐와 스테이블 코인의 병행통화 시대 도래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한국은행은 1950년 창립 이래 75년 동안 국내에서 화폐를 독점적으로 발행해 왔다. 그러나 최근 국회에서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발의되면서 이러한 독점적 지위가 도전받고 있다. 민간이 발행하는 새로운 디지털 화폐, 즉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법제화가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달러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법제화하는 지니어스 법안이 상원과 하원을 통과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와 민간이 발행하는 스테이블 코인이 병존하는 ‘병행통화(Parallel currency)’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화폐 발행 제도의 변화가 세계 경제는 물론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테이블 코인의 영향과 전망, 그리고 정책 당국의 대응 과제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채 수요 늘려 금리 인상 억제
자본 유출로 외환 위기 우려도

유동성 증가 따른 인플레 야기
코인런으로 금융 위기 위험도

스테이블 코인 수요 급증 규제
국제거래 제도 구축도 나서야

먼저 스테이블 코인의 긍정적인 영향은 디지털 금융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탈중앙화 금융의 핵심 자산으로 블록체인 바탕의 금융 서비스와 디지털 자산 시장을 활성화해 디지털 금융산업을 발전시킨다. 또한 중개은행 없이 국경 간 송금을 저렴하고 용이하게 할 뿐만 아니라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결제 정산 속도가 빨라 결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이 외에도 재정 적자로 인해 정부가 국채를 발행할 경우 스테이블 코인의 담보 자산인 국채 수요를 늘려 단기적으로 금리 인상이나 전통적인 통화량 증가를 억제할 수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그러나 부정적인 영향도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이 통화 주권 약화다. 스테이블 코인은 민간 발행 디지털 화폐로 중앙은행의 통화량 통제를 벗어나 있다. 여기에 국내에서 원화와 달러 스테이블 코인 간의 통화 대체가 늘어날 경우 한국은행의 독립적 통화 정책 시행이 어려워져 통화 주권이 약화하게 된다. 특히 한국 경제는 저성장과 고령화로 구조적으로 확대 통화와 재정 정책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원화가치 하락 기대로 달러 스테이블 코인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통화 대체가 늘어날 것이 우려된다.

해킹 위험은 스테이블 코인의 약점
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익명제인만큼, 자본과 외환 통제를 하는 국가에서는 불법적인 자본 유출이 늘어날 수 있다. 거래소에서 코인을 매입할 때는 실명 확인(KYC)을 하더라도 블록체인의 특성상 하드 월렛에 들어간 뒤에는 가명이나 익명 거래인 만큼 정책 당국이 불법적인 자본 유출을 사전적으로 규제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자본 유입이 기대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자본 유출이 우려돼 외환 통제를 시행하고 있는 중국 등 신흥시장국은 자본 유출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외환 위기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시중 유동성 증가로 인한 인플레이션도 문제다. 스테이블 코인은 가치 안정을 위해 발행 시 동일 금액의 현금이나 국채로의 준비금 예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현금의 경우는 통화량이 늘어나지 않지만 국채의 경우 시중 유동성이 증가한다. 또한 블록체인의 사용으로 화폐의 유통 속도가 빨라질 수 있으며 정부의 재정 지출 증가로 총수요가 늘어나 물가가 높아질 수 있다. 여기에 스테이블 코인은 중앙은행의 통화량 통제 범위 밖에 있어 코인 발행으로 시중 유동성이 증가할 수 있으며 주가나 부동산 버블이 생성될 수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준비자산 예치에 대한 투명성 약화로 금융 부실 확산도 우려된다. 중앙은행 발행 화폐의 경우는 금융 안정과 신뢰도 제고를 위해 다양한 제도가 구축돼 있다. 중앙은행은 최종대부자로서 금융회사의 부실을 막고 금융감독원은 감독으로 투명성과 건전성을 높인다. 여기에 예금보험으로 금융 소비자의 손실 위험도 낮추고 있다.

그러나 민간 발행 스테이블 코인은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 발행회사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질 경우 코인런(대규모 코인 인출 사태)이 발생하면서 금융 부실이 확산돼 금융위기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그 외에도 해킹 등의 위험에 노출돼 금융 소비자 손실과 금융시장 안정이 위협받을 수 있다.

스테이블 코인, 달러 패권 강화 전략
이러한 부정적 영향에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제도권으로 불러들이려 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중국과의 패권 경쟁 때문이다. 미국은 제조업 경쟁력 약화로 인한 무역적자를 대미 무역 흑자국의 자본 자유화와 통화 가치 평가 절상을 통해 해결해 왔다. 경쟁력 있는 미국 금융산업을 수출해 무역에서의 적자를 만회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한국과 일본에는 이런 전략이 성공했으나 중국은 이를 인지하고 자본 자유화를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미국은 가명제인 비트코인으로 중국의 간접적인 자본 자유화를 시도했으나 중국이 비트코인의 거래와 보유를 금지하고 중앙은행 디지털통화(CBDC)로 대응하면서 실패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금 관세 전쟁과 환율 전쟁에 이어 달러 스테이블 코인으로 세 번째 전쟁인 화폐 전쟁을 시작하고 있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 달러 중심의 국제금융 질서를 공고히 하는 역할도 한다. 저성장과 고물가로 국내 경제가 취약한 국가에서 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통화 대체를 통해 기축통화인 달러 수요를 늘린다. 또한 자국 통화 대신 미국 달러를 법정 통화로 사용하는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을 확산시킬 수 있다.

미국 국채 수요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의 재정 적자로 국채 공급이 증가할 경우 채권 가격 하락으로 금리가 높아지고 경기는 침체된다. 미국 국가 부채는 현재 36조달러에서 2028년에는 44조달러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 공급 규모가 커질 경우 담보 자산인 국채 수요가 늘어나면서 추가 금리 인상이나 시중 유동성 증가 없이 미국은 국채 공급을 늘릴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결국 미국은 달러 스테이블 코인의 이득이 손실보다 크기 때문에 법제화를 서두르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 거래 실명제 필요
스테이블 코인이 미국에는 유리하지만 다른 모든 나라에서 이득이 큰 것은 아니다. 각국은 서로 다른 경제 환경에 놓여 있어 스테이블 코인의 득실 또한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디지털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고 디지털 금융시장에서 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해서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필요할 수 있다. 또한 달러 스테이블 코인에 대응하기 위해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필요성이 강조되기도 한다. 그러나 통화 대체 촉진으로 인한 통화 주권의 약화와 불법적인 외환 유출, 시중 유동성의 증가, 금융 부실의 위험 등을 감안하면 정치권과 정책 당국은 신중한 대응을 해야 한다.

먼저 스테이블 코인 발행도 중요하지만 수요 구조 또한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미국 지니어스 법안에서는 스테이블 코인은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도록 해서 과도한 수요 증가를 규제하고 있다. 높은 이자 지급은 신용 창조 기능이 없는 스테이블 코인의 비중을 과도하게 커지게 해 연방준비제도(Fed)가 통화량 조절에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스테이블 코인은 수수료는 낮지만 신용카드와 같이 후불제가 아니고 체크카드와 같이 선불이나 직불제이며 결제 취소로 환불이 되지 않는 등 불편한 점도 있다. 실명제로 할 경우 익명제인 화폐와 달리 거래와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국내 거래보다는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통한 국제 거래에서 수요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외국과의 금융 거래에서 비싼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고 익명이나 가명 거래로 외환 유출에 대한 사전적인 정부 규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면 정책 당국은 국제 거래에 대한 제도 구축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과의 통화 대체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도 필요하다. 비록 미국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비관세장벽이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국내에서 달러와 원화 스테이블 코인 거래 실명제와 불법적인 자본 유출에 대한 사전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문제는 거래소에서는 실명 거래이나 블록체인에 들어가면 익명이나 가명 거래로 바뀌어 불법적 자본 유출에 있어 사전 규제가 어렵고 사후 규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점진적인 스테이블 코인 제도화 필요
또한 발행회사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잃지 않도록 감독을 철저히 해서 금융부실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을 낮춰야 한다. 이를 위해 초기에는 시중은행 연합 단체에 먼저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 허가를 주고 운용 경과를 봐가면서 점차 민간기업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인 해법은 산업 경쟁력 강화로 저성장의 함정에서 벗어나 통화 대체를 줄이는 것이다.

화폐에서 신뢰성은 매우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민간 발행 화폐는 예전에도 있었다. 1830년대에는 민간은행이 화폐를 발행하는 자유은행제도(Free banking)였다. 그러나 민간은행의 투명성과 신뢰도가 낮아지면서 예금 인출 사태가 발생해 금융 시스템이 불안정해지자 중앙은행이 화폐 발행을 독점하는 지금의 중앙은행 제도로 변경됐다.

역사가 반복되듯 디지털 화폐가 나오면서 화폐 발행 제도는 다시 자유은행제도로 회귀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회사의 신뢰도가 낮아질 경우 중앙은행 제도로 복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CBDC가 재부상할 수 있다. 실명제인 CBDC가 소액 결제는 가명 혹은 익명제를 허용하는 보완된 익명제로 될 경우 통화 수요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테이블 코인 법제화로 화폐 생태계는 급변하고 있다. 지금은 디지털 통화 금융 환경에 올바르게 대응할 수 있는 정책 당국의 신중한 대책 마련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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