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비약적 기술 혁신을 지난 15년간 세 차례에 걸쳐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2010년, 2018년, 그리고 2025년이다. 2010년 중국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아시아 언론사를 초청해 발전상을 소개했다. 당시 중국은 대형 전자 스크린을 선보이며 “우리도 이런 걸 만든다”고 강조했다. “어, 중국이 이런 것도 할 줄 아네”란 정도였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가전제품을 보여준다며 도착한 곳은 메이더(美的) 본사였다. 초고층 빌딩이 방문객을 압도했고, 내부에 진열된 가전제품은 삼성·LG 제품을 쏙 빼닮아 충격적이었다. 그 무렵 한국에선 중국산 짝퉁 조롱이 웃음꽃을 피웠다. 어쩌다 쓸 만한 전자제품이 나오면 ‘대륙의 실수’라면서다.
중국 정부 서번트 리더십 적극적
한국에선 기업 옥죄는 규제 속출
냄비 속 개구리 조속히 벗어나야
광저우 취재단에게 중국 당국이 선물한 플래시는 무겁고 커서 두고 올까 하다가 성의를 생각해 가져왔다. 어느 휴일, 꺼내 들고 버튼을 눌렀더니 희미한 불빛이 잠시 나오다 꺼졌다. 쓴웃음과 함께 “이래서 짝퉁이구나”란 생각에 처분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 중국 기술 굴기의 서막이 열렸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2018년 다시 중국을 찾을 기회가 있었다. 중국이 1978년 시작한 개혁개방 40주년의 성과를 외부에 과시하는 자리였다. 베이징부터 상하이·광저우·선전까지 3000㎞를 둘러보며 충격과 놀라움에 휩싸였다. 바이트댄스 본사를 방문한 날, 로비에 수백 명이 모여 있길래 물었더니 “월요일마다 입사 면접이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청년 일자리 구하기가 바늘구멍인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역동성이었다. 회사 내부에는 책상마다 공학 기호와 산식을 적은 메모가 널려 있었다. 중국이 지식 기반 경제로 전환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후 1년도 안 돼 바이트댄스가 개발한 틱톡이 세계적 성공을 거두었고, 회사 방문 당시 예감은 현실이 됐다.
2018년 미국이 중국 견제에 본격적으로 나섰지만, 이미 중국은 자체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고 질적 도약을 시작했다. 2020년 전후 중국은 드론·전기차·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 비약적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 여파로 BMW는 독일 본사의 공장을 줄였고, 중국에서 현대차의 존재감도 약화하기 시작했다.
짝퉁으로 조롱받던 샤오미는 애플조차 꿈을 접은 고급 전기차를 생산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중국의 기술 굴기는 화웨이를 중심으로 상전벽해의 성장을 이루고 있다. 화웨이는 스마트폰은 물론 전기차·반도체·클라우드·인공지능(AI)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한국에선 중국의 진전을 보고도 위기감이 없다. 중국에선 기술자가 영웅 대접을 받으며 매년 500만 명의 과학기술 인재를 쏟아내고 있어도 한국은 의대로만 인재가 쏠린다. 그 사이 중국은 AI 기술을 실물에 접목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올해 초 중국의 생성형 AI 딥시크가 등장하면서 한국의 우물 안 개구리 처지는 결정적 고비를 맞고 있다. 21세기 기술 패권을 좌우하는 AI 기술에서 한국이 중국을 추격하는 위치에 서게 되면서다.
지난 7월 초 상하이와 항저우에서 그 현장을 목도했다. 한반도평화만들기 재단의 평화 오디세이 일원으로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을 배출한 저장대를 비롯해 여러 혁신기업을 방문했다. 뇌파로 조작하는 브레인코의 바이오닉 핸드·풋은 손발 잃은 중국인에게 자유를 주고 있었다. 딥로보틱스의 4족 로봇은 전력 설비와 방재 현장에서 사람을 대신하고 있었다.
무엇이 중국을 이렇게 바꿔 놓았을까. 비결은 명확하다. 정부의 강력한 경제 개발 의지가 중국인의 기업가정신을 자극한 결과다. 이 모델의 원조는 사실 한국이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이 모델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정치권은 진영 논리에 빠져 반(反)기업·반시장 규제를 끝없이 쏟아낸다. 기업은 규제 울타리에 갇힌 통제 대상이다. 중국은 정부가 철저히 서번트 리더십을 발휘한다. 기술 개발에 장애가 있다면 정부가 앞장서 제거한다. 근로시간도 규정은 있지만,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사실상 자율에 맡긴다.
맥킨지앤컴퍼니는 한국의 20년 저성장이 갈라파고스식 규제와 기업가정신 쇠퇴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암담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약진과 한국의 쇠퇴 추세가 바뀌기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정쟁에 골몰한 한국 정치권의 반기업 규제는 갈수록 심해지고, 중국 당국의 서번트 리더십은 더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희망을 가지려면 정치권은 국익만 보고 힘을 모아 기업가정신 되살리기에 나서야 한다. 움츠러든 기업을 춤추게 해야, 한국 경제에 다시 길이 열리고 끓는 냄비 속 개구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