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하나. 다음 시의 작성 연도는. “나는 생각한다. 사이버네틱 초원을. 동물과 컴퓨터들이 서로 도우며 함께 살고. 조화롭게 프로그래밍하는 곳. / 나는 생각한다. 사이버네틱 숲을. 소나무와 전자 제품들이 빽빽하고. 사슴이 평화롭게 컴퓨터 사이를 거니는 곳. / 나는 생각한다 사이버네틱 생태계를. 우리가 노동에서 해방돼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우리의 포유류 형제자매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곳. 어여쁘고 고귀한 기계들이 멀찍이서 지켜봐 주는 곳.” ① 2007 ② 1997 ③ 1987 ④ 1967.
민간 전문가 발탁, 기대감 높여
그러나 번성할 ‘생태계’가 관건
주 52시간 규제 유연하게 풀고
관료 간섭 대신 ‘자유’의 지원을
정답은 58년 전인 1967년. 샌프란시스코의 히피 축제에서 당시 기성세대 문화에 저항한 비트 세대 작가(리처드 브라우티건)가 발표한 시다(이케다 준이치, 『왜 모두 미국에서 탄생했을까』). IBM의 PC가 출시된 게 1981년이니 이 시의 창의·예측은 혀를 내두를 일이다. 기계를 생태계에 포함시켜 인간이 컴퓨터·동물과 경계를 허물며 조화로이 살아갈 이상을 꿈꿨다. 비트~히피 세대를 거쳐 자유·평등·개방·공존·투명성을 꿈꾼 자유의 열망은 결국 스티브 잡스로 이어졌다. “경계없는 세계”란 표현을 가장 좋아했다는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든 에너지 역시 자유로이 연결된 세상에 대한 상상과 창의였다. 이 모든 혁신의 양분은 한마디로 ‘자유’였다. 모든 기술혁신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곤 어느덧 세상 모든 패러다임을 싹 바꿀 AI 시대다.
이재명 정부 첫 인사의 요체는 하정우(네이버 Future AI센터장) AI 미래기획수석, 배경훈(LG AI연구원장) 과기정통부 장관, 한성숙(네이버 대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그리고 최휘영(NHN·놀유니버스 대표) 문화관광체육부 장관 등의 발탁이다. 청와대-과학기술-중소벤처의 삼각 포스트에 민간 전문가들을 기용하며 기대를 낳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자유로이 일할 AI의 생태계다. 이들의 수용·변화를 지원해야 할 정치권, 관료사회는 가장 걱정이다. 우리에겐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로 발탁됐다 야권 공세에 결국 사퇴한 김종훈 전 미국 벨연구소장의 인터뷰였다. “2주간 한국 사회의 한복판에 있어 보니 ‘한쪽이 피를 봐야 끝나는 정치(blood sport politics)’와 뿌리깊은 관료주의는 나 같은 아웃사이더가 일하게 놔두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조국을 위해 한번 일해 보려 했던 내가 너무 순진했었다.”
지난해 한국의 AI 인재 순유출은 인구 1만 명당 0.36명으로 OECD 38개국 중 네 번째로 유출이 많다. 키워 놓은 인재조차 밖으로 나간다. 삼성의 인사 총괄 출신으로 2014년 공직 개혁을 위해 발탁됐던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도 우리의 ‘생태계’를 정조준한다. “AI는 비옥한 토양의 생태계가 조성돼야 성장한다. 무엇보다 주 52시간 근무제란 규제를 가장 유연하게 풀어야 한다. 하루 8시간 상한 속에 두뇌들의 밤샘 경쟁인 AI에 무슨 성과가 나오겠는가. 주 40시간제인 대만 TSMC는 노사합의·보상을 전제로 하루 24시간, 주 7일도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용산·내각에 전문가 몇명 앉혀놓은들 무슨 수로 이런 생태계의 힘을 이기겠는가.” 비디오게임 회사에서 자진해 야근을 밥 먹듯 했던 청년 잡스, 소문난 야행성 천재 저커버그가 한국이라면 모두 ‘주 52시간’ 저촉 처벌뿐이다. 이 전 처장은 아예 “모든 현존 법률보다 상위인 AI특례법을 만들어 걸림돌 규제를 모두 제거하는 사생결단”을 새 정부에 주문한다.
관료 조직의 문화는 거대한 암초다. 민간에 한참 뒤처진 일머리는 고사하고, 직권남용의 ‘적폐’가 두려워진 시대이니 정권의 역점 사업엔 참여를 주저한다. 엘리트들의 출세 코스라던 대통령실조차 이미 기피하는 분위기다.
미국 실리콘 밸리의 성공은 “워싱턴 관료·의원들과의 거리가 멀어서”라는 얘기가 있다. 정답이다. 서부 개척부터 미 서부는 독립, 자유주의적 성향이 이어졌다. 그 전통이 “전자(電子)라는 영역은 경계가 무한해 영원한 개척지이자 프런티어 상태며, 그 누구도 좌우하지 못할 세계”라는 ‘사이버 스페이스 독립선언’(1996년)을 낳았다. 역시 히피 출신인 존 페리 발로의 이 선언은 ‘자유와 공유’란 인터넷의 정신, ‘평등과 개방’의 오픈 소스 방식을 확립시켰다. 규제가 본능인 관료들의 보고용 기획서와 자유가 속성인 AI는 가까이 있게 하면 안 될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이다.
대통령·총리의 과제는 명료하다. AI 규제 철폐를 위한 의회와의 협력 등 총력 지원뿐이다. 관료들의 “이건 이래서 안 된다” 대신 “이렇게 하면 된다”는 분위기를 만들라. AI 부서 요직엔 장관이 호흡을 맞출 민간·해외 전문가를 최대 30%까지 개방, 영입해 줘야 한다. 생태계 구축을 진두지휘할 ‘AI 부총리’는 왜 안 되겠는가. AI 생태계가 실패하면 우린 남의 AI에 돈만 내고 데이터 정보·인재는 몽땅 바칠 식민지 속국 신세다. ‘AI 대통령’의 치적을 꿈꾼다면 이 대통령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올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