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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쾅 소리 뒤 산 무너져” 가평 캠핑 일가족 덮쳤다

중앙일보

2025.07.20 08:58 2025.07.20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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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경기도 가평군의 한 캠핑장에서 불어난 강물에 고립됐던 시민이 소방 로프를 타고 탈출하고 있다. [뉴스1]
20일 오전 시간당 76㎜ 집중호우가 내린 경기도 가평군 일대는 산사태와 계곡물이 함께 덮쳐 도로·전기·수도·통신 등이 끊기며 고립된 섬이 됐다. 조종면 마일리 글램핑장에선 40대 부부와 고교생·중학생 10대 아들 등 일가족 4명이 이날 오전 토사에 휩쓸려 실종된 뒤 40대 아버지 A씨 시신만 하류에서 발견됐다. 고교생 아들은 캠핑장 현장에서 부상을 입은 채로 구조돼 헬기로 이송됐다. 구조된 A씨의 아들은 사고 충격 등으로 조사를 할만한 상태가 아니라고 한다.

각종 펜션·캠핑장이 밀집한 마일리에선 이날 오후 5시에도 차량을 버리고 수㎞를 걸어서 대피하는 캠핑장 투숙객과 주민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도로에서 캠핑장 지역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토사로 범람한 연인산 계곡물에 끊겼기 때문이다. 소방당국 역시 포클레인 등 구조 차량도 진입하지 못해 일가족 실종자 수색에 어려움을 겪었다. 소방당국은 밧줄을 이용해 캠핑객 구조를 진행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흙탕물에 젖은 사람들은 서너 명씩 손을 맞잡고 산사태 흙더미를 넘어 내려오고 있었다. 주말을 맞아 가족과 캠핑을 하러 왔다는 조경대(52)씨는 “상류 지역에서 두 시간째 내려오고 있다”며 “새벽 3시 반부터 대피해 있다가 내일 회사와 아이 학교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차를 버려두고 이동한 것”이라고 했다.

20일 오후 5시 30분경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마일리에 위치한 캠핑장 투숙객과 마을 주민이 토사에 뒤덮여 뻘밭으로 변한 도로를 걸어서 대피하고 있다. 가평=전율 기자
일가족 실종자가 발생한 H캠핑장 직원 장모(54)씨는 “새벽 4~5시께에 ‘쾅’ 하는 소리를 들었다”며 “이후 강물이 급작스레 불어났다”고 했다. 이날 오후까지도 캠핑장으로 진입하는 수변 도로는 아예 사라졌고, 캠핑장 건물 및 텐트 등 시설 잔해가 물살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길가 나무는 뿌리째 뽑혀 쓰러져 있고, 넘어진 전봇대와 이어진 전깃줄도 바닥 곳곳에 널려 있었다. 곳곳에선 휴대전화 신호도 먹통이었다.

이날 새벽부터 내린 호우 피해로 현재까지 2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된 상태다. 가평군에는 조종면 등 지역에 오전 3시30분을 전후해 시간당 76㎜의 비가 쏟아졌으며, 일 누적 강수량은 오전 9시30분까지 197.5㎜를 기록했다.

일가족 매몰사고는 호우가 집중된 새벽 시간 토사가 흘러내리며 발생했다. 매몰된 글램핑 시설 안에 있던 일가족 중 발견된 40대 아버지 외에 40대 어머니와 10대 자녀는 아직 실종 상태다. 소방당국은 이날 오전 일가족 중 아버지 시신을 캠핑장으로부터 약 5~6㎞ 떨어진 하류의 대보교 아래에서 발견했다.

20일 산사태로 매몰 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캠핑장 입구에 토사와 불어난 계곡물에 무너진 건물 잔해와 나무 더미가 쌓여있다. 가평=전율 기자
캠핑장 매점 직원은 “새벽에 큰 소리를 듣고 나가 보니 산이 무너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캠핑장 앞 진입로가 유실되자 산을 넘어 이웃마을에서 신고했다고 한다.

피해 지역 주민 김국신(67)씨도 “새벽에 전봇대가 무너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며 “전화도 안 터지고 전기, 물도 끊겼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씨는 “집에서부터 5㎞를 두 시간 걸어서 내려왔다”며 “소방관 구조대가 와서 밧줄을 붙잡고 겨우 물을 건넜다”고 말했다.

김석우 강원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산사태 피해는 상류 가까이 갈수록 큰데, 새벽 시간대라 피난 전파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또 “비가 많이 오는 상황에선 산지 어느 위치에 있든 항상 산사태 위험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날 가평군 조종면 신상리에서도 펜션 건물이 무너져 4명이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해 70대 여성 1명이 사망했다.





전율.임성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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