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美관세·'日퍼스트' 우익 야당 부상에 참의원 과반유지 실패 확실시
'자민 독주' 끝, 중·참의원 모두 여소야대…'관세협상 구실' 버티기 가능성도
'선거 연패' 이시바, 앞날 풍전등화…정계 급변 속 퇴임 몰리나
고물가·美관세·'日퍼스트' 우익 야당 부상에 참의원 과반유지 실패 확실시
'자민 독주' 끝, 중·참의원 모두 여소야대…'관세협상 구실' 버티기 가능성도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일본 집권 자민당과 연립 여당 공명당이 20일 치러진 참의원(상원) 선거 중간 집계 결과 과반 의석수 유지에 실패할 것이 확실시되면서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취임 1년도 안 돼 벼랑 끝에 몰리게 됐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이시바 총리는 같은 달 치러진 중의원 선거(총선), 올해 6월 도쿄도 의회 선거에 이어 참의원 선거에서도 여당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
이로써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에서 모두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되면서 이시바 총리는 국정 동력과 당내 구심력을 급속히 잃을 것으로 전망된다.
자민당 정권이 중의원과 참의원 양쪽에서 소수 여당으로 전락하는 것은 민주당에 정권을 내준 2009년 이후 16년 만이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를 계기로 2012년 정권 탈환 이후 이어온 독주를 사실상 끝내게 됐고, 일본 정국은 대규모 지각 변동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 저조한 내각 지지율에 '반전 카드' 없었다…고물가·관세협상 등도 영향
애초 이번 선거는 여당에 유리하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30% 안팎으로 저조했고, 표심을 공략할 카드도 마땅치 않은 편이었다.
자민당은 2023년 연말에 불거진 '비자금 스캔들'로 홍역을 치렀으나, 이후 정치자금 제도 개혁에 소극적이었다. 여기에 이시바 총리가 올해 3월 초선 의원 15명에게 상품권을 배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민당을 향한 국민의 실망감은 더욱 커졌다.
내각 지지율이 반등하지 못한 또 다른 주요 요인은 고물가였다.
특히 작년 여름께부터 오르기 시작한 쌀값이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뒤늦게 정부 비축미를 시장에 공급하며 쌀값 잡기에 나섰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시바 총리는 지난 5월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의원을 새 농림수산상에 기용했고, 고이즈미 농림상은 이른바 '반값 비축미' 방출을 통해 쌀값 상승세를 꺾는 데 성공했다.
이에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지난달 초·중순 '반짝 반등'했으나, 이내 하락세로 돌아섰다.
자민당은 고물가 대책으로 '소비세 감세' 카드를 꺼내든 야당들과 달리 재정 악화를 우려해 전 국민 지원금 지급을 공약으로 제시했으나, 여론 반응은 싸늘했다.
여기에 미국과 관세 협상이 합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정체 상태에 빠진 것도 이시바 내각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강화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선거전 막바지에는 '일본인 퍼스트'를 강조하며 보수층 표심을 공략한 우익 군소 야당 참정당의 급부상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며 고전했다.
결국 자민당과 공명당은 유권자 마음을 돌릴 이렇다 할 '반전 카드'도 내놓지 못했고, 이는 '참패'라는 결과에 직면하게 됐다.
◇ 日정국은 오리무중…정권유지·총리퇴진·연정확대·정권교체 등 모두 가능
여당의 이번 선거 참패로 일본 정국은 불투명성이 커지면서 당분간 오리무중 상태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시바 총리 퇴진은 물론 연립 정권 확대, 정권 교체 등이 모두 가능한 시나리오다. 변수가 워낙 많아 예측이 쉽지 않다.
다만 야당이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연합해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고 정계 개편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이시바 총리 거취다.
이번 선거를 '사실상의 정권 선택 선거'로 보고 있는 일본 언론은 여당이 패배하면 자민당 내에서 총리 끌어내리기 움직임이 확산해 이시바 총리가 버티기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한다.
일본에서는 여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직후 총리가 퇴진한 사례가 종종 있었다. 1998년 당시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는 선거 이튿날 퇴진 의사를 표명했고, 2007년 아베 신조 총리도 여당이 대패하자 선거 두 달 뒤 물러났다.
우치야마 유 도쿄대 교수는 지난 16일 온라인 강연에서 "이시바 총리를 끌어내리려는 움직임이 (자민당 내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이시바 총리가 부득이하게 사임할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시바 총리가 미국과 관세 협상을 명분 삼아 퇴진을 거부할 수도 있다. 일본 정치권이 '국난'으로 규정한 관세 문제를 마무리하지 않고 물러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논리를 강조할 공산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그는 20일 출구 조사 결과 발표 후 "어려운 정세를 겸손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서도 "국가에 대한 책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정권을 내놓고 야당이 되거나 하야하는 것도 선택지에 있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없다"고 명확히 말했다.
이시바 총리는 자민당 지지율이 높지 않다는 점을 내세워 일단 자민당·공명당 정권을 유지하며 자신이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당내 유일한 파벌인 '아소파'의 움직임이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여당 의석수가 목표로 제시했던 50석보다 아주 약간 못 미칠 경우 이시바 총리가 자민당과 정책 방향이 비슷한 무소속 의원을 영입해 돌파구를 마련하려 할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만일 이시바 총리가 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 자민당은 새 총재를 뽑아야 한다.
차기 자민당 총재 후보로는 보수파인 다카이치 사나에 의원, 대중적 인기가 높은 고이즈미 농림상, 행정 경험이 풍부한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가 재등판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자민당이 안고 있는 문제는 새 총재를 뽑아도 중·참의원 여소야대 구도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총리 지명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소수 여당은 예산안과 법안 통과를 위해 야당의 협력을 구해야 한다는 것도 한계다.
총리 지명선거에서도 여러 변수가 존재한다.
야당이 한데 뭉쳐 특정 야당 대표를 지지하면 정권이 교체되지만, 야당의 의견이 갈리면 제1당인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선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자민당은 선거 직후 일부 야당을 끌어들여 연정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정권 교체에 의욕을 나타냈던 제1야당 입헌민주당은 이에 대응해 야당 간 결집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민당이 연정을 확대한다면 대상은 제3야당 국민민주당이 유력시된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국민민주당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에게 총리 자리를 제안하면서 '자민당·국민민주당·공명당' 정권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인다.
제반 상황을 고려하면 일본 정국은 당분간 대규모 정계 개편과 합종연횡 가능성을 열어둔 채 불안정하게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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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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