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다시 기회가 온다면 좀 더 용기 있게 나서겠다.”
최재천(71·사진)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진화론의 대중화에 앞장서 온 사회생물학자다. 2003년 말 호주제 위헌 여부를 가리는 마지막 공개 변론에서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렸다. 그는 재판정에서 “부계 혈통주의는 자연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생물의 계통을 밝히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비교 분석하면 암컷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간다. 호주제는 인류 집단 어디에서도 유래를 찾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Q : 과학자의 호주제 발언이 의외였다.
A : “그것도 법정에 나가 진술한 사례는 외국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듬해 미국에서 열린 동물행동학 국제회의에서 예정에 없던 즉석 강연을 요청받기도 했다.”
Q : 헌재 법정까지 나간 계기라면….
A : “2000년 EBS에서 ‘여성의 세계가 밝았다’를 주제로 특강한 적이 있다. 생물계의 주체는 암컷이라는 요지였다. 그때 호주제 위헌 소송을 이끈 이석태 변호사(당시 민변 회장, 전 헌법재판관)가 도움을 요청해 함께하게 됐다.”
Q : 봉변도 많이 당했다고 들었다.
A :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들었다. 주로 남성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방송이 나간 뒤 1년 동안 전화 코드를 뽑아놓을 정도였다.”
Q : 남성을 위한 운동이라고 했다.
A : “헌재 의견서에서도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호주제 폐지를 환영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가부장 계급장을 떼어내면 남성들도 편해진다. 외국보다 높은 한국 40~50대 남성의 사망률도 낮아진다. 지금도 그 생각엔 흔들림이 없다.”
Q : 그동안 세상이 변한 것 같은가.
A : “예전과 여러모로 달라졌다. 요즘엔 젊은 남성들이 되레 여성에 불만을 터뜨리는 ‘여혐’ 현상이 심각하지 않은가. 과학자로서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