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 늪에서 허우적대는 보수, “세대 교체 등 인적 쇄신해야” “예산처 등 경제 관료 출신 “李 정부, 소비쿠폰 후과(後果) 우려돼”
국민의힘이 대선에서 패배하고 이틀이 지난 6월 5일 오후 4시경, 박수민(57·서울 강남 을)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 본관 앞에 모인 취재진을 향했다.
“국민께 드리는 반성문을 준비했다”고 입을 연 그는 “12·3 비상계엄 이후 혼란스러웠던 지난 6개월간 충분한 반성과 사과를 전하지 못했다”며 큰절을 올렸다. 초선의 결기는 작은 파동을 만들었다. 재선 최형두(경남 창원 마산합포), 초선 최수진(비례대표) 의원이 사과 대열에 합류했다. 자성 없는 국민의힘 분위기에서 처음 나온 책임 있는 자세였다.
국민의힘이 최근 부침을 겪는 이유는 중도 성향의 수도권 민심과 친윤계 등 당 주류 사이에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대구·경북(TK) 자민련’ 얘기는 여의도에서 너무 자주 나와 이제는 식상할 정도다. 지금 상태로는 내년 지방선거도 패배할 것이 불 보듯 뻔 한 상황.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 의원을 만나 수도권 민심 회복 방안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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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불란한 팀워크 필요한 때”
Q : 대선 패배 후 한 달이 지났다.
A : “참담하고 걱정도 많이 된다. 저도 이런데 국민 마음은 오죽하겠나.”
Q : 3년 만에 정권을 넘겨준 원인, 뭐라고 보나?
A : “내치 면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고, 야당 대표에 대한 사정 정국을 너무 길게 가져갔다. 개인적으로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협력 강화 등 외교 방향성은 잘 잡았다고 생각하지만, 경제·사회 분야에서 시대적으로 필요한 개혁을 수행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 대한 수사로 시간을 허비하다가 총선에서 패배한 뒤 급속히 무너졌다.”
Q : 지역 유권자들은 어떤 점에 가장 실망했다고 하던가.
A : “야당으로서 당을 다시 추슬러 전진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네 탓’ 공방을 벌이며 분열하는 작금의 모습이다. 우리 당에 권력 공백기가 생겨 서로서로 낙인찍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의뢰로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3명에게 지난 10일부터 11일까지 조사하고 14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전주보다 2.4%p 상승한 56.2%를 기록해 6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보다 4.5%p 하락한 24.3%에 머물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 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Q : 수도권 민심 복원을 위해 국민의힘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A : “달리 방법이 있겠나? 정공법으로 쇄신하는 수밖에 없다. 수도권 민심은 중도적이며 빠른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그에 반해 우리 당은 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우경화됐고, 민심에 대한 반응이 느리다. 보수의 가치 체계를 바로 세우면서 중도화에 힘쓰고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안철수 의원에 이어 혁신 바통을 이어받은 윤희숙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인적 쇄신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계엄과 대선 패배, 대선후보 교체 등 당을 궁지로 몰아넣은 사건과 관련 있는 인사들의 개별 사과를 요구하고 나선 것. 이어 윤 위원장은 “그것(사과)마저 안 하시는 이들로 (인적 쇄신 대상을) 좁혀나가겠다”고 경고했다.
Q : 친윤계 2선 퇴진 등 당내 인적 쇄신에 대한 요구가 상당하다.
A : “인적 쇄신 필요성에 이견은 없을 거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세대교체 등 방식이 뭐가 됐던 인적 변화는 필요하다. 국민들께서 우리 당 혁신이 더디다고 답답해하실 수 있겠지만, 변화를 위한 과정이 진행 중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다.”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8월 중하순에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열릴 전망이다. 현재 출마 의사를 밝힌 당권 주자는 조경태·안철수 의원과 양향자·장성민 전 의원 등이다. 이외에도 김문수 전 대선후보, 나경원 의원, 한동훈 전 대표 등이 잠재적 후보군으로 꼽힌다.
Q : 내년 지방선거에 임하는 리더십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A : “자유민주주의·자유시장경제를 축으로 가치 체계를 강화하고 일사불란한 팀워크로 당을 전진시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분명 어렵고 험난한 길이지만, 극적으로 해낸다면 지방선거에서 승산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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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쿠폰 효과 신기루처럼 금세 사라질 것”
박 의원은 경제 관료 출신이다. 1967년 12월 서울 은평에서 태어난 그는 숭문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1992년 제36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기획예산처·재정경제부 등을 거쳤으며, 이명박 정부 대통령실에서 근무할 당시 K-원전 중동 수출 일등공신으로 활약했다. 지난해 국민의힘 경제 분야 총선 인재로 영입돼 강남 을에서 당선했다.
Q : 이재명 정부의 확장재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A : “상당히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혁신과 자본시장의 발전을 전제로 배분을 강화하는 식으로 가야 하는데, 이재명 대통령은 (민생회복) 소비쿠폰부터 꺼내 들었다. 신기루처럼 사라질 일에 나랏빚 20조원가량을 투입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취약계층을 돕기 위해 20조 원을 쓴다면 공동체가 단합되는 효과라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전 국민에게 뿌리는 건 회사에서 이벤트성으로 돈 쓸 때나 하는 일이지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Q : 정부·여당은 소비쿠폰이 자영업자·소상공인 매출 증대에 기여할 거라고 한다.
A :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소비쿠폰을 받은 사람이 경제적으로 힘든 점포를 골라서 찾아갈까? 심리적으로 그동안 가격이 비싸서 사 먹기에 부담스러웠던 점포에서 사용하려고 하지 힘든 곳을 일부러 찾아가지 않을 거다. 소비쿠폰은 취약한 자영업자·소상 공인을 돕는 방식이 아니다.”
Q : 그렇다면 왜 소비쿠폰을 고집하는 걸까?
A : “표를 노린 포퓰리즘(Populism)이라고 본다. 나랏 빚이 쌓이는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 후과(後果)가 돌아올 텐데, 그때 (이재명 정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거다.”
Q : 문재인 정부 때 전 국민 재난지원금 등 기시감이 든다.
A : “소득주도성장, 28차례의 부동산 규제, 탈원전 등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어느 정도 극복해낼지는 지켜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절대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때 만들어진 예외 없는 주 52시간 근무는 연구·개발(R&D) 비중이 높은 혁신기업에 직격탄이 됐다. 정부·여당에서 고집하는 중대재해처벌법, 노란봉투법 등도 기업하기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이렇듯 기업을 옥죄는 것들을 과감하게 풀어준다면, 문재인 정부와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Q : 이 대통령이 임기 내 ‘코스피지수 5000’을 달성하겠다고 했다.
A : “그러려면 박스피(박스권에 갇힌 코스피)를 뚫고 나갈 구조적 추진력이 필요하다. 상법 개정안 후속 조치로 우리 당이 추진하는 배임죄·상속세·배당세 개혁 등을 받아들여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동력이 될 거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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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단계 도약 위한 경제·사회 구조 개혁이 의정 목표”
Q : 의정 활동에 있어 철칙이 있나?
A : “공직자로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여의도 입성 후 정치적 진로에 대한 질문을 자주 듣는데,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기본 원칙에서 벗어난 진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Q : 올해 목표는 무엇인지.
A : “경제·사회 구조 개혁이다.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 1987년 민주화 체제, 경제적으로 1998년 외환위기 극복 이후에 형성해 놓은 산업 구조에 얹혀가고 있는데, 인구와 기술이 변했기 때문에 기존 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대한민국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구조 개혁이 필수적이다.”
Q : 의원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구조 개혁이란?
A : “자본주의 시장경제, 민주주의, 국제 질서가 조화를 이뤄 순항하는 것이다. 성장이 우선이냐, 분배가 우선이냐를 놓고 다툴 것이 아니라 성장하면 분배하고, 분배가 성장을 방해하지 않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조화를 이뤄낸다면 생활과 노후가 안정돼 출산이 늘어날 것이다. 이제는 속도보다 방향성이다. 빠르지 않더라도 후퇴가 없어야 한다.”
Q : 어떤 국회의원으로 기억되고 싶나?
A : “‘목표와 운명에 충실했던 국회의원’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야당 의원으로서 최선을 다해 구조 개혁에 매진할 텐데, 만약 구조 개혁이 저의 운명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후배들에게 과업을 넘길 것이다. 그런 정치인이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