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외교부 장관이 21일 취임하면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유엔 등 주요국 주재 대사 인선이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6월 말 일괄 이임 지시로 이른바 '5강 대사'가 모두 공석인 가운데 빠른 인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주미 임성남·조병제…주중 이광재 거론
주미 대사로는 직업 외교관 출신인 임성남 전 외교부 1차관과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임 전 차관은 외교부 북미국 과장과 주미 대사관 참사관을 지내는 등 대미 외교에 정통하다. 또 북핵외교기획단장과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북핵 문제를 다룬 경험도 있는 전략통으로 꼽힌다.
조 전 원장은 주샌프란시스코 부총영사와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을 지낸 미국통이다.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정부 대표를 맡은 경력도 있어 국방비 증액이 맞물린 대미 협상에서도 강점을 발휘할 수 있을 거란 평가가 나온다.
당초 주미 대사 후보군에는 대미 특사단의 단장을 맡게 된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 등도 물망에 올랐으나, 본인이 고사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예상 밖의 인물을 주미 대사로 깜짝 발탁할 가능성도 있다. 한·미 양국이 다음 달 1일을 시한으로 관세와 안보를 연계한 패키지 협상을 진행 중인 만큼 주미 대사는 임명과 동시에 실전에 투입되는 중책을 맡아야 한다.
주중 대사로는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거론된다. 이 전 지사는 3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역임했으며, 2011년 중국 칭화대에서 방문 교수로 재직한 경험이 있다.
대선 기간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던 노규덕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주중 대사 혹은 주유엔 대사 후보로 꼽힌다. 노 전 본부장은 주중 대사관 서기관, 외교통상부 중국몽골과장 등을 지냈으며, 국가안보실 안보전략비서관·평화기획비서관, 외교부 대변인과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역시 선대위에서 활동했던 김승호 전 주상하이 총영사도 후보로 거론된다. 신임 주중 대사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도록 견인하고, 지난 정부에서 소원해진 한·중 관계를 되살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
주일 이혁 유력…관계 안정화 과제
주일 대사로는 이혁 전 주베트남 대사가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이 전 대사는 한반도평화만들기(이사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산하 한반도포럼과 한·일 비전포럼에서 수년간 활동하며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을 위해 힘썼다. 중앙일보 기명 칼럼을 통해서도 '국익을 위한 초당적 실용 외교'를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일 정책의 연속성을 강조하며 협력에 방점을 찍은 만큼 신임 주일 대사는 한·일 관계 강화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이어가는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주러 대사 후보군으로는 문재인 정부에서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을 지냈고 이번 대선 기간 선대위에서 활동했던 박종수 전 주러 공사 등이 언급된다. 이재명 정부 첫 주러 대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속도를 내는 우크라이나 휴전 논의와 맞물려 한·러 관계 복원, 북·러 군사협력 심화 견제 등 임무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
"적절한 시기 美와 협의 중"
한편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처음 출근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방미 시기와 관련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관세) 협상에 직접 관여해 온 부처의 장관들이 (미국에) 간다는 얘기가 있어서 종합적으로 가장 적절한 시기를 미국 측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장관이 이르면 이번 주 미국을 찾을 경우 카운터파트인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과 첫 회담이 이뤄질 전망이다.
조 장관은 통상과 안보를 연계한 '패키지 딜' 협상과 관련한 외교부의 역할에 대해선 "외교부가 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모든 패키지 딜을 살피고 의견을 제시하고 미국 측과 '윈윈'(Win-win)의 방안을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세 협상을 흔히 '제로섬'(Zero Sum)으로 생각한다"며 "그러나 협상을 해온 경험에 비춰보고 잘 살펴보면 항상 '윈윈'이 나온다. 그런 걸 할 수 있는 게 외교부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조 장관은 한·일 관계에 대해선 "왜 일본 사회가 오늘날에 이르렀는가를 이해한다면 과거사 문제는 우리가 소망하거나 압박하는 것만으로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다"며 "긴 호흡과 끈기, 인내심을 갖고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바이든 날리면' 소송 사과
조 장관은 이날 취임식에서 지난 정부에서 외교부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고 쇄신을 약속했다. 조 장관은 "외교 사안이 국내 정치에 이용됐고, 실용과 국익이 주도해야 할 외교 영역에 이분법적 접근도 많았다"고 돌아봤다.
또 이른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바이든 날리면' 발언 관련 소송에 대해 "우리가 MBC를 제소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외교부를 대표해 MBC에 사과드린다"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2022년 12월 MBC를 상대로 제기한 해당 소송을 취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 장관은 또 12·3 비상계엄을 겨냥해 "급기야는 (한국이)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주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직 대통령이 민주주의 전복을 시도하기까지 이런 모든 과정에서 그간 외교부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데 대해 외교부를 대표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교훈을 찾되 앞으로 지난 정부 탓은 하지 않겠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조직 문화와 업무 관행을 확실히 바꿔 나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