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들썩거렸고, 입술은 달싹거렸다. 자세를 곧추세우고 등받이에 등을 대는 여느 배석자의 몸가짐이 아니었다. 조금의 빈틈만 보여도 치고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좀처럼 기회는 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마다 제지당했고, 꾸지람을 들었다. 그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한 끝에 드디어 발언권을 얻은 건 국정감사가 절반이 흐른 이후였다. 그는 우회하지 않았다. 곧바로 찔러 들어갔다.
" 개원 역사상 75년 만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75년 만에 조은석 위원 같은 분이 처음 들어와서 그렇습니다. "
그,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현 감사원 감사위원)의 타깃은 같은 직장에 감사위원(차관급)으로 재직하던 조은석(현 내란 특검)이었다(이하 경칭 생략). 유병호의 입은 매서웠다. 그리고 때로는 공개 석상에서 한 발언이라 생각지 못할 정도로 거칠었다.
조은석 vs ‘윤석열의 감사원’, 일합을 겨루다
유병호가 열변을 토하던 2023년 10월 그와 조은석은 ‘내전’을 벌이고 있었다. 아니 조은석의 적이 유병호 한 명뿐이었던 건 아니다. 그는 사실상 감사원 조직 전체와 싸우고 있었다.
조은석의 내부 고발로 감사원은 공수처에 압수수색 당하는 수모를 겪으며 수사를 받고 있었고, 조은석 역시 감사원의 ‘수사 요청’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처지였다. 내전의 발단은 앞서 2회에서 잠시 언급했던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당시 관전자들은 유병호를 비롯한 감사원 주류 세력의 뒤에 ‘윤석열 대통령’이 있었다고 봤다. 그건 전현희가 ‘윤석열의 권익위원장’이 아니었던 것처럼 조은석 역시 ‘윤석열의 감사위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모두 문재인 정권 때 해당 직위에 임명됐고, 정권이 바뀐 뒤에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그렇게 잠복해 있으면서 서서히 커졌던 긴장이 전현희 감사를 계기로 폭발했다. 조은석은 감사원의 전현희 감사가 ‘깜’이 안 되는 것이며, 감사보고서 확정 및 발표 과정에서 자신이 ‘패싱’당했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감사원은 조은석이 노골적으로 전현희를 비호하면서 정당한 감사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무협지광 유병호, ‘ㅇㅈㅁ ㅈㄹㅂㄱ’?
2022년 5월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자 감사원은 삽시간에 ‘윤석열의 사람들’로 채워졌다. ‘윤석열의 감사원’을 상징하던 인물이 유병호였다.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으로 발탁되더니 사실상의 감사원 2인자인 사무총장으로 임명됐다.
유병호가 총괄 지휘하던 감사원의 핵심 감사 인력들은 이른바 ‘타이거 사단’이라 불렸다. 그의 이름 중 ‘호’자에서 유래된 별칭이다. 그는 그 이름에 어울릴 정도로 저돌적인 돌격대장이었다. 전형적인 ‘인파이터’로 감사 대상 기관을 강하게 몰아붙여 끝내 항복을 받아내는 스타일이었다.
무협지에 등장하는 일당백의 협객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실제 유병호는 무협지광이다. 스스로 ‘사마달’ 풍이라고 표현한 무협지 세 권을 썼을 정도다. 감사원 직원 훈련용 실전 매뉴얼로 그가 만든 ‘주요 공감 및 논의 사항’(이하 공감 노트)에도 무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이 대거 등장한다.
‘최후의 무공초식으로서 환영마검, 폭풍참마검, 혈우마검, 단천마검 사용법’
무협영화의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한다.
‘신용문객잔의 주방장이 칼 쓰듯이 조사하소. 다다다다다’
그는 때로 저돌성의 정도가 지나치다는 평가를 받곤 했다. ‘공감 노트’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표현들은 국정감사 등 과정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과 지적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