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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관세협상 전략은 '올코트 프레싱'…구윤철·여한구 '2+2' 출격

중앙일보

2025.07.22 00:30 2025.07.22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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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7.22/뉴스1

다음 달 1일로 예정된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를 앞두고, 한국 정부가 ‘올코트 프레싱’ 전략으로 대미(對美) 협상에 나선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오는 2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미국과 ‘2+2 통상협의’에 나선다. 정부는 2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새 정부 첫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이같이 확정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23일, 조현 외교부 장관은 조만간 미국을 찾아 카운트파트와 협상 테이블을 차릴 예정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한미의원연맹 방문단은 이미 미국에 머물고 있다.

한국 정부는 무역적자 해소를 원하는 미국의 여러 요구를 종합해 ‘패키지딜’을 준비했다. 농구에서 경기장 전 구역에서 수비를 펼치는 ‘올코트 프레싱’ 전략처럼 미국의 압박을 방어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협상 범위에 ▶조선·반도체 등 산업 협력 ▶자동차 수입 규제 완화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등 투자 확대 ▶농산물·플랫폼 규제 등 비관세장벽 해소 ▶방위비·국방비 증액 ▶환율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이날 구윤철 부총리는 “저와 통상교섭본부장이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2+2’로 25일 회의를 하는 것으로 확정됐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대신 그리어 대표를 내세우면서, 한국도 산업부 장관 대신 통상 실무를 총괄하는 통상교섭본부장이 테이블에 앉는다.

이는 좀 더 세부적인 합의를 하겠다는 미국의 포석으로 풀이된다. 한국 정부도 이미 두 차례 미국을 찾아 협상을 진행한 여 본부장이 참석하는 것이 연속성 확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이후 러트닉 상무장관을 만나 산업 협력 등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날 오전 미국으로 출국한 여한구 본부장은 “시한에 얽매여 국익을 희생하지 않는 선에서 다음 달 1일 전까지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워싱턴 D.C 미국무역대표부(USTR)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다만 합의 도출까지는 난관이 예상된다. 미국이 비관세 장벽 가운데 한국에 민감한 소고기·쌀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온라인 플랫폼 규제 철폐 등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데, 국내 반발 심해 확실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해서다.

특히 미국은 한국 국회가 입법을 추진 중인 ‘온라인 플랫폼법(온플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법안에는 구글·애플 등 미국의 빅테크를 규제하는 내용이 담겨서다.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정부와 국회, 야당과 여당간 입장 차가 남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망 사용료 부과, 구글의 정밀지도 반출 문제 등의 해소도 원하지만, 정부는 국내 기업 보호와 상충하는 문제라 고심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은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 쌀 수입 쿼터 확대, 사과 등 과일 검역 완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농민단체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농축산물 시장 개방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크다. 미국은 제조업 ‘투자 펀드’ 조성, 알래스카 LNG 개발 프로젝트 참여 등도 원하지만, 이 역시 조율이 쉽지 않은 문제다.

국방비 지출 등 안보 관련 요구도 한국으로선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미국은 2035년까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까지 늘린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한국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올해 국방비 예산(61조2469억원)의 GDP 비중은 2.32% 정도다. 빠듯한 재정 여력을 고려할 때 5% 수준으로의 증액은 당장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측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자신들이 유리한 입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베센트 재무장관은 21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협상국들과의 대화는 진행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무역 합의의 질이지 합의의 타이밍이 아니"라고 말했다. 특히 베트남·인도네시아와 합의 이후 미국의 협상 자세가 한층 느긋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시장을 두고 한국과 경쟁하고 있는 일본과 유럽연합(EU), 대만 등도 급한 건 마찬가지다. 일본은 지난 20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여당이 의석 수를 대폭 잃어 과반 유지에 실패하면서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입지가 불안해졌다. 이는 미국과 협상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협상에 난항을 겪는 EU는 통상위협대응조치(ACI) 활용 등 강경한 대응책을 찾고 있다. ACI는 서비스, 외국인 직접 투자·금융시장·지식재산권 등에 제한을 가할 수 있는 조치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과 미국이 미리 준비한 양보 리스트를 주고받는 형태로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 정부가 관세 피해 최소화를 위해 이번 기회에 협상 타결을 원한다면 그 형태는 큰 틀의 ‘프레임워크’에 합의하고, 후속 협상을 벌이는 ‘영국식’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미국에 ‘명분’을 주고, 한국은 ‘실리’를 얻는 그림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김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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