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시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던 박모씨는 지난 4월 17년간 운영했던 가게를 접었다. 예전부터 동네에선 찌개와 계란말이가 맛있기로 유명했지만 갈수록 재료비 부담이 커져서다. 박씨는 “백반집 특성상 단골이 많은데 재료비가 올랐다고 매번 밥값을 따라 올리기가 미안했다”며 “많이 남는 장사도 아닌데 계속 나이는 들고 점차 의욕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가업승계도 고민했지만 젊은 딸이 원치 않았다고 한다.
국내에서 백반집 등 한식 전문 식당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불경기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잘 열지 않는 데다,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하는 한식의 특성상 식재료비 상승의 타격도 컸던 영향으로 풀이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배달 외식이 증가했는데, 포장이 번거로운 백반집 등은 여기에서도 소외된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외식업 중 한식당 비중은 2018년 45.6%에서 매년 줄어 지난해 41.8%까지 낮아졌다. 농식품부가 지난해 8~11월 전국 17개 시도의 3196개 외식업체를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한 결과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외식 사업체 수도 2020년 80만4173개로 고점을 찍은 이후 감소하는 추세로, 2022년 기준 79만5024개다. 한식당 수는 더 크게 줄고 있다는 의미다.
한식이 빠진 자리는 중식, 일식, 양식과 함께 치킨집, 피자ㆍ햄버거ㆍ샌드위치 가게, 제과점 등이 채우고 있다. 전체 외식업체에서 중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3.5%에서 지난해 3.9%로 늘었다. 같은 기간 일식과 서양식은 각각 1.5%에서 2.6%, 1.7%에서 2.4%로 커졌다. 치킨전문점은 4.9%에서 5.2%로, 피자ㆍ햄버거ㆍ샌드위치 및 유사 음식점은 2.4%에서 3.5%로, 제과점은 2.7%에서 3.4%로 확대됐다.
한식 사업자 수 역시 급격히 줄고 있는데, 이는 사업주의 고령화 추세와도 관련이 있다. 국세청 국세통계포털의 ‘100대 생활업종 사업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5월 전국 한식당 사업자 수는 41만429명으로 지난해 5월(41만2662명) 대비 2233명 줄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한식업의 사업주 평균 연령은 지난해 기준 56.2세로 전체 평균(52.9세)보다 높다. 이어 중식 53.9세, 일식 49.9세, 서양식 46.7세, 기타 외국식 46.3세 순이었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젊은 세대일수록 조리 시간이 길고 노동 강도도 센 한식보다는 다른 요식업 창업을 선호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최근 급등한 식자재값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는 곳도 반찬 가짓수가 많고, 밥값은 비교적 저렴한 백반집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쌀 20㎏ 가격은 5만9641원으로 1년 전보다 13.4% 올랐다. 최근에는 더위에 약한 잎채소류 가격도 크게 상승했다. 배추 1포기는 5240원, 깻잎(100g)은 2701원으로 전월 대비 각각 44.71%, 10.97% 증가했다. 시금치(100g) 가격은 1969원으로 전월(898원)의 2배 이상 뛰었다.
농식품부 외식업체 경영실태 조사에 따르면 한식당의 매출 대비 식재료 및 인건비 비율은 71.1%로 평균(69.8%)을 웃돌았다. 최근 농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발간한 ‘2024 한식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한식 음식점업과 주점업의 영업비용 절반은 식재료비인 것으로 나타났다. 월평균 영업비용이 1556만8000원이었는데 이 중 식재료비가 845만2000원으로 54.2%를 차지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배달 외식이 늘고 있지만 족발, 찌개류외 정통 한식은 외면받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외식업체 경영실태 조사 결과 10곳 중 3곳(31.7%)이 배달 앱을 이용하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한식당은 21.6%로 일반음식점 평균(25.6%)에도 못 미쳤다. 중식(47.7%), 일식(40.4%), 서양식(38%)보다 훨씬 낮다. 한편 일반음식점이 아닌 피자ㆍ햄버거ㆍ샌드위치 가게 등 유사 음식점업의 배달 앱 이용률은 85.1%에 달한다. 배달 앱이 아닌 배달대행 업체를 이용하는 경우를 포함해도 마찬가지다. 한식당은 ‘1일 평균 배달 수’가 아예 없다는 응답이 74.7%로 일반음식점 중 가장 높았다.
경쟁에서 밀린 영세 한식당이 사라지는 대신 한식의 프랜차이즈화는 빨라지고 있다. 농식품부 조사에서 한식 프랜차이즈 비중은 2018년 22.7% 수준에서 지난해 26.2%로 불어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4월 발표한 ‘2024년도 가맹산업 현황 통계’에서도 지난해 전체 외식업종의 프랜차이즈 브랜드 수는 9873개로 전년(9934개) 대비 0.6% 감소했지만, 한식업종 브랜드 수는 전년(3556개) 대비 4.1% 증가한 3701개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그간 한식당에 대한 진입장벽이 지나치게 낮았던 만큼, 어느 정도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ㆍ푸드비즈니스랩 소장은 “특별한 요리 관련 지식이나 기술 없이 백반집을 쉽게 창업하면 그만큼 망하기도 쉬운 것”이라며 “특히 식재료를 비교적 저가에 공급받을 수 있는 프랜차이즈 한식점보다 가격ㆍ품질 등 여러 면에서 뒤처지기 쉽다”고 말했다. 최민지 농식품부 외식산업정책과장은 “단순히 백반집 등 한식 음식점업 비중을 늘리는 게 한식의 경쟁력 강화와 비례하는 건 아니라고 보고 있다”라며 “한식의 저변을 넓히고 한식 문화를 알리기 위해 관련 외식업체나 프랜차이즈 업체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한편, 영세한 한식당 업주들을 위해선 별도의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