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어 그저 감사합니다."
지난 2년간 폐지와 재활용품을 수집해 번 1000만원을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한 이형진(87)씨는 22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이같이 말하며 웃었다.
이씨는 전날(21일) 대전 사랑의열매에 기부금을 전달하고 '나눔리더 골드 회원'으로 위촉됐다. 1000만원 이상 고액 기부자에게 주어지는 이 자격을 대전 지역에서 처음으로 받은 '1호' 주인공이다.
국가유공자인 이씨는 월남전 통역관과 교직원 등으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뒤 생계를 위해 8년 전부터 폐지·캔 등을 줍기 시작했다.
이씨가 본격적으로 기부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2023년께 한 지역에서 발생한 세 모녀 자살 사건이었다. 비슷한 사건은 그가 사는 대전에서도 뒤이어 벌어졌다. 이씨는 "폐지 수집이 너무 힘들어 그만두려던 참이었는데, 어린 자녀와 함께 생을 마감한 가족의 사연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이씨는 당시 가지고 있던 300만원에 한 푼 두 푼을 더해가기 시작했다. "위기 가정 단 한 곳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는 하루 1000여가구를 돌며 폐지 등을 수집한다고 한다. 하루 수입은 5000원에서 많아야 1만~2만원 남짓. 그가 1년에 수거하는 폐기물은 6~7톤(t)에 달한다. 이씨는 "남의 집 앞에 버려진 쓰레기를 수거하는데 하루 2만 보 이상을 걸었고, 그렇게 해서 1년에 300만~400만원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씨의 기부금은 40대 엄마와 7세 아들이 함께 사는 지역 한부모 가정에 전달됐다. 임대주택 보증금, 주거비, 수술비 등에 사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씨는 수혜 가정에 "사정이 많이 안 좋다고 들었다. 사는 게 힘들 때도 있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인내력으로 버텨 달라"며 "정말 어려울 때 기부금을 값어치 있게 써 달라"는 바람을 남겼다. 또 "희망은 곧 삶의 원동력. 멈추었을 때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문장이 담긴 자필 기도문도 건넸다.
고령인 이씨는 다음 달부터 폐지 수거를 그만둘 계획이다. 그러나 나눔은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 "기부는 거창하거나 특별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이씨 생각이다. 그는 "아내가 (기부를) 극구 반대했지만 차려주는 밥은 전과 다를 게 없다"며 웃었다.
이씨는 "이렇게 (선행이) 알려지는 바람에 전날 위촉식이 마치 나를 위한 것처럼 돼 버려 쑥스럽다"며 "한부모 가정에 기부금이 전달될 수 있도록 애 써준 많은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유재욱 대전 사랑의열매 회장은 "이형진 기부자님의 나눔은 단순한 도움이 아니라 신념과 철학이 담긴 위대한 실천"이라며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