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폴 볼커 당시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고금리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한 이후 채권은 40년 가까이 투자자에게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제공했다. 특히 주식이 하락할 때 채권이 반등하는 상호보완 관계 덕분에 ‘60/40 포트폴리오’는 자산운용의 황금비율로 통했다. 주식 60%, 채권 40%라는 이 단순한 조합은 리스크를 분산시키면서도 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 개인부터 기관까지 널리 활용했다.
이 공식은 팬데믹 이후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물가가 급등하자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했고, 그 여파로 채권 가격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주식과 채권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 40개월 중 31개월 동안, 두 자산군은 나란히 하락하거나 상승했다. 이제 상호 보완 기능도 기대하기 어렵다.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라는 공통 변수 아래, 자산 간 상관관계가 변하면서 분산투자의 기본 전제가 무너진 것이다.
채권 시장의 불안정성도 눈에 띄게 커졌다. 경제지표 하나, 연준 인사의 발언 한마디에 수익률 곡선이 출렁이고, 투자자 심리가 요동친다. 미국 국채를 ‘무위험 자산’으로 간주하던 해외 중앙은행들조차 등을 돌리는 모습이다. 독일과 일본 국채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으며, 미국 10년물 국채에 요구되는 위험 프리미엄은 11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시장이 미국 국채마저 절대적인 안전자산으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런 배경에서 ‘사모 크레딧(Private Credit)’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이는 은행이 아닌 사모펀드 등이 비상장 기업에 직접 대출하거나 회사채를 비공개 방식으로 거래하는 시장이다. 중개 절차가 간소해 거래비용이 적고,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커진다. 대부분 변동금리 기반이기에 고금리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으며, 공개 시장보다 정책 변화나 외부 충격에 덜 민감하다. 실제로 지난 4월 미국의 대중국 관세 이슈로 공개 채권 시장이 크게 출렁였을 때도, 사모 크레딧 시장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글로벌 사모 크레딧 시장 규모는 이미 30조 달러를 넘어섰다. 에너지, 디지털 인프라, 운송 등 고성장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며 꾸준한 현금흐름을 창출하고 있다. 물론 유동성이 낮고 정보 접근이 제한되며, 진입 장벽도 높다. 하지만 60/40 전략이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는 지금, 새로운 해법을 찾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에 가깝다.
시장 환경이 달라졌다면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과거의 공식에 안주하는 자는 뒤처지고,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자가 기회를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