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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프리즘] 지금 ‘부산대첩’을 다시 소환하는 이유

중앙일보

2025.07.22 08:12 2025.07.2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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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욱 부산총국장
‘그의 동상을 구태여 이곳에 세우는 뜻은, 저 임진왜란 때 왜적이 이 땅에 첫발을 올려놓은 곳이 바로 여기였기로 그날의 고난을 뼈저리게 기억하자 함이요.’

재개발 공사가 한창인 부산 북항 모습. 북항 일대는 부산대첩이 벌어진 장소다. [사진 부산시]
1956년 부산 중구 용두산공원에 건립된 이순신 동상(높이 12m)에 있는 비문 일부다. 이 비문은 이순신 연구의 최고 권위자였던 노산 이은상이 지었다. 그는 이 비문에서 이렇게 이어간다. ‘또 그가 왜적과 더불어 칠년 동안 싸우던 중에서도 부산 앞바다의 큰 승첩이 가장 결정적이었기로 그것을 외치며 자랑하자 함이요. 그리고 또 여기가 이 나라의 관문이라 예서부터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워 국토수호의 피어린 정신을 안팎으로 나타내자 함이니, (중략).’

비문에도 있지만, 이 동상은 1592년 부산대첩(부산포해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했다. 이순신 동상이 내려다보고 있는 곳이 바로 부산대첩이 벌어진 북항 일대다. 부산대첩은 이순신 장군이 4차례 해전(옥포·당포·한산·부산) 중에서 가장 큰 승리로 여겼던 싸움이다. 그가 부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뒤 선조에게 올린 장계에서 “이때까지 네 번이나 출전하고 열 번을 싸워 번번이 승첩을 거두었으나 장수들과 군졸들의 공로를 논한다면 이번 부산싸움(부산대첩)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전투에 승리하면서 조선은 제해권을 장악해 7년간 전쟁을 치를 수 있었던 반면 왜적은 수륙병진 전략이 무위가 되어 사면초가의 신세로 전락했다. 부산시가 부산대첩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기 위해 1980년부터 부산대첩 승전일인 10월 5일(음력 9월 1일)을 ‘부산시민의 날’로 결정한 배경이다. 2023년 5월 부산 북항재개발지역 내 신설 도로명 주소를 ‘이순신대로’로 명명하고, 이곳에 기념관을 추진하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 북항재개발지역 내에 조성된 공원의 정식 이름을 놓고 다시 논란이다. 2023년 11월 개장 이후 명칭인 ‘북항친수공원’을 유지하자는 의견과 북항의 역사성을 반영해 ‘부산대첩기념공원’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부산시는 이에 따라 지난달 17일부터 공원 명칭에 대한 지역 주민 선호도 조사를 한 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중구와 동구 지명위원회를 거쳐 최종적으로 명칭을 결정할 계획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등을 보면 이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다른 사람이나 사물과의 구별’이다. 이름을 지을 때 고유성과 독창성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 역사성도 빼놓을 수 없다. 시인 정현종은 그의 시 ‘방문객’에서 ‘이름’으로 바꿔 읽어도 좋을 ‘사람’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후략).’





위성욱([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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