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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의 시선] 진보 정권은 왜 검찰을 못 이겼나

중앙일보

2025.07.22 08:22 2025.07.2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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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 기획취재2국장
“초연히 사라지는 것이 의연한 줄 알지만, 불명예스럽게 서울고검에 부임한 뒤 떠나는 것은 스스로 물러서기보다는 차라리 인사조치의 총탄에 맞아 죽어나가기로 마음먹은 때문입니다.”

한 글자, 한 글자에서 피 냄새가 배어났다. 그럴 법도 했다. 핵심 실세인 법무부 검찰국장이 하루아침에 초임 검사장 보직인 서울고검 차장으로 밀려났다. “나가라”는 노골적 신호였다. 그러나 그 당사자인 장윤석 검찰국장(전 의원)은 굳이 그 자리에 부임한 뒤에야 사직서를 제출했다. ‘자발적 용퇴’가 아니라 ‘타율적 전사(戰死)’였다는 사실을 기록에 남기기 위해서였다.

노, 거친 ‘인사 파괴’로 후환 자초
문, 무자격자 양산해 정권 상납
아직은 기시감…뒤엎되 슬기롭게

노무현 정권은 거칠었다. 검찰총장 임기제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김각영 총장을 “나는 지금의 검찰을 믿지 않습니다”라는 ‘돌직구’ 한방에 내몬 것을 비롯해 장 국장 등 검찰 간부 십수 명의 수십 년 공직 생활을 배신감과 분노로 마감시켰다.

그때 선보인, ‘인사 파괴를 통한 검찰 전복’ 전략은 이후 진보 정권의 대(對) 검찰 교본이 됐다. 이유는 있었다.

검찰은 본디 보수 정권의 것이었다. ‘법률 수호를 통한 사회 질서의 유지’라는 검찰의 지고의 가치는 보수 정권과 자연스레 맥이 닿았다. 그리하여 보수 정권은 검찰을 틀어쥔 채 부렸고, 검찰은 자발적으로 정권을 섬겼다. 검찰 수사의 보혁 유불리 총량을 따져보면 결국 진보 쪽에 불리한 장사가 됐던 이유다.

그 질서를 깨야 했던 진보 정권은 ‘인사 파괴’를 통해 주류를 내쫓은 뒤 자신의 사람들로 그 자리를 채웠다. 문제는 그 과정이 매우 거칠었고, 결과가 나빴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정권은 검찰 밥을 단 한 술도 뜨지 않은 판사 출신의 진보 여성 변호사, 게다가 상당수 검찰 간부의 ‘어린 후배’인 강금실을 법무부 장관으로 앉히면서 인사 파괴의 정점을 찍었다. 그 과정에서 조직 전체가 모욕감을 공유했다. 검찰은 불법 대선자금 수사 등을 통해 끊임없이 노무현과 그의 사람들을 두들겼고 결국 ‘정권 교체’ 공신록 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문재인 정권 때도 다르지 않았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등용은 혁명적 인사 질서 파괴였다. 정권은 일선 지검 차장 한번 해보지 않은 그를 순식간에 최대 검찰청 수장으로 벼락출세 시키더니 끝내 검찰총장 자리에까지 앉혔다. 그리하여 그의 사시 선배인 검찰 간부들을 무수히 내쫓았다.

그 ‘우리 총장님’이 ‘배신’을 감행한 이후 검찰 인사는 더욱 거칠어졌다. 정권은 급한 나머지 ‘자기 사람들’을 빠르게 수소문한 뒤 졸속으로 요직에 앉혔고, 그 과정에서 무자격자가 속출했다. 판사 출신 여성 정치인 추미애를 법무부 장관에 앉히더니 법무부 과장 한 번 해보지 않은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 중수과장이나 중앙지검 특수부장 이력이 없던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옛 중수부장), 역시 대검 공안과장이나 중앙지검 공안부장을 역임하지 않은 대검 공공수사부장(옛 공안부장) 등을 양산했다. 그들은 역시나 전문성과 정무성 부족으로 ‘윤석열 사단’과의 쟁투에서 판판이 패했고, 결국 윤석열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이 됐다.

이제 다시 진보 정권이 들어섰다. 윤석열 정권 내내 굴종과 은폐로 일관한 검찰은 반드시 뒤엎어야 하지만, 이쯤 되면 노무현·문재인 정권의 실수에서 배우는 게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은 기시감의 연속이다. 정권이 쫓아냈다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전 정권의 검찰총장은 지레 손을 들고 나갔고, 정해진 수순인 것처럼 비(非) 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이 임용됐다.

장관도, 총장도 없는 상태에서 도대체 누가 한 것인지 의문스럽기 짝이 없는 7월 1일의 간부 인사에서도 전복은 있었다. 그 뒤엎음의 상징은 역시 윤석열 전 대통령처럼 부장검사에서 곧바로 지검장 자리로 ‘퀀텀 점프’한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이다. 내부 고발자이자 검찰 부조리에 맞선 투사로서의 활약과 가치, 그로 인한 고초 및 승진 누락의 피해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지적하고 반항하고 비판했을지언정 수사도, 기소도, 공소유지도, 수사·기소·공소유지에 대한 지휘나 판단도 제대로 해보지 않았다.

그런 그를 기획 보직 대신 굳이 수사하고 기소하며 공소 유지해야 하는 대형 검찰청 수장 자리에 앉혀야 했을까. 그는 중요 사안, 특히 여당과 관련된 중차대한 일이 터졌을 때 제대로 판단하고 지휘할 수 있을까.

기득권을 뒤엎되 그 작업을 슬기롭고 동티 나지 않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적재적소에 쓰는 것. 이재명 대통령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지난 진보 정권의 대 검찰 행보에서 배워야 할 교훈일 것이다. 검찰을 슬기롭게 ‘없애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박진석([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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