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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산 500만원, 상금도 환자에게…짐바브웨 한국 부부의사의 삶[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중앙일보

2025.07.22 08:24 2025.07.2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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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JW성천상' 수상자인 강동원(맨 오른쪽)·전진경 부부 의사가 22일 짐바브웨 현지 진료실에서 소아 뇌성마비 환자를 만났다. 이날 전 전문의가 소아의 재활치료 진행 상태를 평가했다. 부부는 아프리카미래재단 짐바브웨 지부 소속으로 13년째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사진 강동원·전진경 제공
1988년 수험생 전진경은 '의대에 합격하면 아프리카에서 봉사하겠다"며 합격을 기도했다. 그리고 연세대 의대에 합격했고 의사가 돼 아프리카 짐바브웨로 떠났다. 그의 연세대 의대 선배이자 남편도 고교 3학년 때 "의사가 돼 남을 돕겠다"고 주변에 말했고, 아내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남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13년 의료 봉사를 해온 강동원(56·약리학)·전진경(54·소아청소년과) 부부 의사가 22일 JW중외제약 공익재단인 JW이종호재단의 '2025 JW성천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이성낙 JW성천상위원장은 "부부는 생존의 갈림길에 선 아이와 현지인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손을 내밀고 헌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두 시간 전화 인터뷰, 카카오톡 대화로 부부의 얘기를 들었다.
JW성천상 강동원·전진경 인터뷰
13년 강의·소아진료 무보수 헌신
후원금 111만원으로 한 달 생활
"돈 많으면 더 도울 수 있을텐데…"

부부는 비정부기구(NGO) 아프리카미래재단 짐바브웨 지부 소속이다. 각각 짐바브웨 국립의과대학 임상약리학교실 교수, 소아과학교실 교수를 맡고 있다. 전 교수는 이 나라 유일의 3차 병원인 샐리 무가베 중앙병원(SMCH), 부디리로 보건소 등에서 소아를 진료한다.

봉사하니 지병 거의 사라져
강 교수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박사후연수, 관동대 의대 약리학교실 주임교수를 했다. 전 교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의를 마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소아감염 세부전문의를 취득했다.

강 교수는 강직성척추염 환자다. 주기적으로 항체 주사를 맞아야 해서 선뜻 아프리카 행을 결정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부모 반대가 컸다. 어렵게 얘기를 꺼냈더니 어머니가 "그냥 가"라고 했다. 어머니 꿈에서 강 교수가 물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블루오션(새로운 가치의 시장)이 열린다고 판단했다. 부부에게 아프리카는 블루오션이다. 거짓말처럼 강 교수의 병이 거의 사라졌다. 부부는 "신명(神命·신의 명령)"이라고 말한다.

 '2025 JW성천상' 수상자인 강동원(맨 오른쪽)·전진경 부부 의사가 22일 짐바브웨 현지 진료실에서 소아 뇌성마비 환자와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강동원·전진경 제공

강 교수는 기초의학자(약리학)이다. 진료하지 않고 의대생을 키운다. 약리학교실의 유일한 의사이다. 그간 의대·약대생 4000여명을 가르쳤다. 제자들이 병원·제약회사·약국 등에서 맹활약한다. 전 교수에게 물었다.

Q : -어떤 아이를 진료하나.
A : "영양실조에다 에이즈·결핵·말라리아·장티푸스·세균성이질 등의 감염병이 심각하다. 엄마에게서 에이즈에 수직 감염돼 아이가 태어난다. 에이즈에 걸린 산모가 조산하고 이로 인해 미숙아가 태어난다. 뇌성마비 등의 장애를 안게 된다. 병동 환자의 10%가 숨진다."

영양실조 소아 완치하니 큰 보람

Q : -영양실조가 심한가.
A : "몇 년 전 목을 못 가누고 누워서 지내는 두 살배기가 왔다. 영양실조였다. 엄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돈 벌러 갔고 할머니가 데려왔다. 한 달 영양 재활과 세균 치료 후 완치돼 걸어서 나갔다. 엄마의 환한 웃음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서 경험하기 힘든 환자가 많다. '장 결핵(결핵균이 장에 감염)'으로 배가 남산처럼 부풀어 오른 아이, 감기를 방치해 류마티스성 심장판막질환으로 악화한 아이, 간 부전 환자, 말라리아로 인해 심장이 망가졌거나 망막이 손상된 아이 등등 중증 환자가 셀 수 없을 정도다.

전 교수는 "폐·심장 등의 수술 시기를 놓친 아이는 그냥 둘 수밖에 없다. 뒤늦게 수술하면 숨진다. 이럴 때는 죄인이 된다"고 말한다. 폐혈관 기형 아이는 한국에 와서야 원인을 찾았다. 이미 수술 시기(생후 석 달 이내)가 지나서 손 쓸 수 없었고, 7세에 숨졌다.

두 교수는 수많은 짐바브웨 의료진을 세브란스·서울아산·고려대·이대목동 등으로 연결해 한국 연수를 받게 했다. 또 많은 한국 의료팀을 현지로 초청했다. 건국대 서동만 흉부외과 교수팀(지금은 이대서울병원)은 세 차례 방문해 심장기형 환자 30여명을 살리고 의술을 전파했다. 이제 현지 의사가 수술하게 됐다. 부부는 엑스레이·초음파기기 등을 사줬고, 진단과 치료비를 지원한다.

부부에게 다시 물었다.

Q : -월급이 얼마인가.
A : "(웃으며)무보수이다."

Q : -그러면 어떻게 사나.
A : "고맙게도 한국 의사 친구들과 은평감리교회 등이 후원금 3000달러(415만원)를 보내준다. 이 중 800달러(111만원)만 우리가 쓰고 1200달러로 약, 빵(간호사 간식) 등을 산다. 1000달러는 아이들(자녀) 학비에 쓴다."

Q : -재산이 얼마인가.
A : "500만원 남았다. 이것도 학비로 들어가면 곧 사라진다."

의사는 전세계 환자 도울 수 있어

Q : -돈 욕심이 없나.
A : "있다. 돈이 많으면 더 도울 수 있으니까. 아프리카를 보면 돈 욕심이 한도 끝도 없이 생긴다."

Q : -한국에 살면 편안할 텐데.
A : "여기서 아주 잘 먹고 잘산다. 여기가 고산지대라서 배추 질이 좋고, 김치찌개가 맛있다."

Q : -상금(1억원)은 어디에 쓸 건가.
A :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와 소아재활 역량강화사업을 한다. 이 나라 인구의 7%가 장애인이고, 이 중 25%가 5세 미만이다. 조기 재활치료가 중요하다. 이 사업비의 20%(연간 1억 5000만원)를 우리 재단이 모금해서 부담한다. 이걸 마련하려고 성천상에 응모했다. 상금 반은 여기에 쓰고 반은 둘째 아이 학비에 보탤 예정이다."

Q : -아프리카로 간 걸 후회하지 않나.
A : "전혀 그렇지 않다. 힘닿는 데까지 할 거다. 의사는 좋은 직업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Q : -지금 행복한가.
A : "전공의 때 힘들게 수련하고 펠로(전임의) 거쳤는데, 이렇게 쓸 데가 있었던 것 같다. 50세 넘으니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 아이들이 완치된 모습을 보면 너무 행복하다."

JW성천상은 고(故) 이종호 명예회장이 JW중외제약 창업자 성천(星泉) 이기석 선생의 생명 존중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2012년 제정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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