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수험생 전진경은 '의대에 합격하면 아프리카에서 봉사하겠다"며 합격을 기도했다. 그리고 연세대 의대에 합격했고 의사가 돼 아프리카 짐바브웨로 떠났다. 그의 연세대 의대 선배이자 남편도 고교 3학년 때 "의사가 돼 남을 돕겠다"고 주변에 말했고, 아내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남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13년 의료 봉사를 해온 강동원(56·약리학)·전진경(54·소아청소년과) 부부 의사가 22일 JW중외제약 공익재단인 JW이종호재단의 '2025 JW성천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이성낙 JW성천상위원장은 "부부는 생존의 갈림길에 선 아이와 현지인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손을 내밀고 헌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두 시간 전화 인터뷰, 카카오톡 대화로 부부의 얘기를 들었다.
JW성천상 강동원·전진경 인터뷰
13년 강의·소아진료 무보수 헌신
후원금 111만원으로 한 달 생활
"돈 많으면 더 도울 수 있을텐데…"
부부는 비정부기구(NGO) 아프리카미래재단 짐바브웨 지부 소속이다. 각각 짐바브웨 국립의과대학 임상약리학교실 교수, 소아과학교실 교수를 맡고 있다. 전 교수는 이 나라 유일의 3차 병원인 샐리 무가베 중앙병원(SMCH), 부디리로 보건소 등에서 소아를 진료한다.
봉사하니 지병 거의 사라져
강 교수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박사후연수, 관동대 의대 약리학교실 주임교수를 했다. 전 교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의를 마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소아감염 세부전문의를 취득했다.
강 교수는 강직성척추염 환자다. 주기적으로 항체 주사를 맞아야 해서 선뜻 아프리카 행을 결정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부모 반대가 컸다. 어렵게 얘기를 꺼냈더니 어머니가 "그냥 가"라고 했다. 어머니 꿈에서 강 교수가 물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블루오션(새로운 가치의 시장)이 열린다고 판단했다. 부부에게 아프리카는 블루오션이다. 거짓말처럼 강 교수의 병이 거의 사라졌다. 부부는 "신명(神命·신의 명령)"이라고 말한다.
강 교수는 기초의학자(약리학)이다. 진료하지 않고 의대생을 키운다. 약리학교실의 유일한 의사이다. 그간 의대·약대생 4000여명을 가르쳤다. 제자들이 병원·제약회사·약국 등에서 맹활약한다. 전 교수에게 물었다.
Q : -어떤 아이를 진료하나.
A : "영양실조에다 에이즈·결핵·말라리아·장티푸스·세균성이질 등의 감염병이 심각하다. 엄마에게서 에이즈에 수직 감염돼 아이가 태어난다. 에이즈에 걸린 산모가 조산하고 이로 인해 미숙아가 태어난다. 뇌성마비 등의 장애를 안게 된다. 병동 환자의 10%가 숨진다."
영양실조 소아 완치하니 큰 보람
Q : -영양실조가 심한가.
A : "몇 년 전 목을 못 가누고 누워서 지내는 두 살배기가 왔다. 영양실조였다. 엄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돈 벌러 갔고 할머니가 데려왔다. 한 달 영양 재활과 세균 치료 후 완치돼 걸어서 나갔다. 엄마의 환한 웃음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서 경험하기 힘든 환자가 많다. '장 결핵(결핵균이 장에 감염)'으로 배가 남산처럼 부풀어 오른 아이, 감기를 방치해 류마티스성 심장판막질환으로 악화한 아이, 간 부전 환자, 말라리아로 인해 심장이 망가졌거나 망막이 손상된 아이 등등 중증 환자가 셀 수 없을 정도다.
전 교수는 "폐·심장 등의 수술 시기를 놓친 아이는 그냥 둘 수밖에 없다. 뒤늦게 수술하면 숨진다. 이럴 때는 죄인이 된다"고 말한다. 폐혈관 기형 아이는 한국에 와서야 원인을 찾았다. 이미 수술 시기(생후 석 달 이내)가 지나서 손 쓸 수 없었고, 7세에 숨졌다.
두 교수는 수많은 짐바브웨 의료진을 세브란스·서울아산·고려대·이대목동 등으로 연결해 한국 연수를 받게 했다. 또 많은 한국 의료팀을 현지로 초청했다. 건국대 서동만 흉부외과 교수팀(지금은 이대서울병원)은 세 차례 방문해 심장기형 환자 30여명을 살리고 의술을 전파했다. 이제 현지 의사가 수술하게 됐다. 부부는 엑스레이·초음파기기 등을 사줬고, 진단과 치료비를 지원한다.
부부에게 다시 물었다.
Q : -월급이 얼마인가.
A : "(웃으며)무보수이다."
Q : -그러면 어떻게 사나.
A : "고맙게도 한국 의사 친구들과 은평감리교회 등이 후원금 3000달러(415만원)를 보내준다. 이 중 800달러(111만원)만 우리가 쓰고 1200달러로 약, 빵(간호사 간식) 등을 산다. 1000달러는 아이들(자녀) 학비에 쓴다."
Q : -재산이 얼마인가.
A : "500만원 남았다. 이것도 학비로 들어가면 곧 사라진다."
의사는 전세계 환자 도울 수 있어
Q : -돈 욕심이 없나.
A : "있다. 돈이 많으면 더 도울 수 있으니까. 아프리카를 보면 돈 욕심이 한도 끝도 없이 생긴다."
Q : -한국에 살면 편안할 텐데.
A : "여기서 아주 잘 먹고 잘산다. 여기가 고산지대라서 배추 질이 좋고, 김치찌개가 맛있다."
Q : -상금(1억원)은 어디에 쓸 건가.
A :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와 소아재활 역량강화사업을 한다. 이 나라 인구의 7%가 장애인이고, 이 중 25%가 5세 미만이다. 조기 재활치료가 중요하다. 이 사업비의 20%(연간 1억 5000만원)를 우리 재단이 모금해서 부담한다. 이걸 마련하려고 성천상에 응모했다. 상금 반은 여기에 쓰고 반은 둘째 아이 학비에 보탤 예정이다."
Q : -아프리카로 간 걸 후회하지 않나.
A : "전혀 그렇지 않다. 힘닿는 데까지 할 거다. 의사는 좋은 직업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Q : -지금 행복한가.
A : "전공의 때 힘들게 수련하고 펠로(전임의) 거쳤는데, 이렇게 쓸 데가 있었던 것 같다. 50세 넘으니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 아이들이 완치된 모습을 보면 너무 행복하다."
JW성천상은 고(故) 이종호 명예회장이 JW중외제약 창업자 성천(星泉) 이기석 선생의 생명 존중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2012년 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