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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꺼내기도 무섭다"…5000원 소꼬리에 울게 한 축구의 나라

중앙일보

2025.07.22 13:00 2025.07.2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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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신혼여행〈27〉브라질 사우바도르
브라질 사우바도르. 대서양에 접한 항구도시로 아름다운 해변을 품고 있다. 열대기후라서 일년 내내 무덥지만,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열기를 식혀준다.
브라질에서도 범죄율이 높기로 악명 높은 사우바도르에서 불안과 긴장, 그리고 흥분이 뒤섞인 한 달을 보냈다. 2014년 7월의 일이다. 11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그때의 충격이 워낙 강해서다. 그해 여름, 정확히 7월 8일 브라질은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축구 준결승전에서 독일에 1대 7로 대패했다. 브라질 축구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이었다. 하필 그때, 우리는 브라질에 있었다.
아내의 여행
사우바도르는 카포에이라의 발상지이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이 몸을 숨긴 채 연마한 무예다.
사우바도르는 브라질 북동부 바히아주의 주도다. 광고 촬영지처럼 눈부신 해변이 끝도 없이 펼쳐진 곳이다. 그러나 이곳의 주인은 여행자도, 글로벌 리조트 체인도 아닌 흑인이다. 사우바도르 주민의 80% 이상이 까마득한 시절 아프리카에서 끌려왔던 노예의 후예다. 노예들이 감시자의 눈을 피해 낮은 자세로 익힌 무예, 카포에이라가 바로 사우바도르에서 탄생했다. 그야말로 아프리카계 브라질리언의 문화가 심장처럼 뛰는 곳이다.
2014년 브라질은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의 열기로 나라 전체가 뜨거웠고, 온 시내가 국기로 장식돼 있었다.
사우바도르에서 우리는 아담한 이층집에 머물렀다. 주인은 미국인이었다. 1층은 현지 브라질 가족에게 내주고, 2층은 본인이 썼는데 마침 긴 휴가를 떠나며 우리에게 방을 내줬다. 호세 가족과의 한집 살이는 녹녹지 않았다. 호세의 열두 살 난 딸이 마구 틀어대는 음악 소리에 우리는 온종일 시달려야 했다.

그래도 행복한 마음이 컸다. 집주인 알레한드로는 글을 쓰는 작가였는데, 거실에 8명이 둘러앉아도 될 만큼 넉넉한 크기의 테이블이 있었다. 마침 원고 마감에 몰려 있던 나는 12살 소녀가 골라주는 브라질 최신 음악을 비지엠 삼아 참으로 열심히 글을 썼다. 창문 너머에는 너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매일 해 질 녘 강렬하게 불타는 노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시내에 나갈 때면 큰 결심이 필요했다. 사우바도르가 브라질에서 손꼽히는 위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현지 흑인 사이에서 우리의 외모는 튀어도 너무 튀었다. 현지인이 알려준 대로 휴대폰은 사용할 때가 아니면, 늘 가방 깊숙이 넣어두고 이동했다. 강도에 대비해 여분의 지갑도 따로 준비해 다녔는데, 다행히 불상사는 없었다. 바다만 보면 천방지축 정신 줄을 놓는 나도 사우바도르에서만큼은 맘 놓고 해변으로 뛰어들지 못했다.
'황금 성당'으로 통하는 상 프란시스쿠 성당. 내부 전체를 금으로 입혔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빨빨대며 이곳저곳을 누볐다. 추천할 만한 관광지는 198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사우바도르 역사 지구다. 사우바도르는 16세기 브라질을 지배했던 포르투갈이 식민지 수도로 삼았던 도시다. 당시 최고의 부자 나라였던 포르투갈은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을 도시 곳곳에 세웠다.

하이라이트는 일명 ‘황금 성당’이라 불리는 상 프란시스쿠 성당이었다. 아예 성당과 수도원 내부가 황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무려 800㎏ 이상의 황금을 내부에 입혔단다. 그 찬란한 유혹에 빠져 우리는 한참이나 성당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

김은덕 [email protected]
남편의 여행
긴 여행에 지친 우리는 기력을 되찾기 위해 직접 소꼬리곰탕을 끓여 먹고, 해물 부침개도 부쳐 먹었다.
해외 도시를 다니다 보면, ‘이건 왜 이렇게 싸지?’ 싶은 보물 같은 물건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사우바도르에서는 그 주인공이 소꼬리였다. 이 귀한 식재료를 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소꼬리 1㎏이 우리 돈 5000원에 불과했다. 긴 여행에 지쳐있던 우리는 몸보신이 절실했기에, 기어코 소꼬리를 한 아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인생 첫 소꼬리 곰탕 요리 도전. 큼지막한 들통까지 꺼내고 설레는 마음으로 불을 올렸는데, 국물이 끓기도 전에 가스가 바닥나고 말았다. 사우바도르에서는 집마다 LPG 가스통을 두고 쓴다. 분명 체크인할 때 새 가스통을 받았는데, 빈 깡통이라니.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층간 소음은 참았지만, 꺼진 불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우리는 집주인 알레한드로에게 연락해 격하게 따졌고, 새 가스통을 배달받을 수 있었다.

소꼬리 곰탕을 끓이려면 적어도 가스통 두 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우리고 또 우리고, 곰탕 특유의 뽀얀 육수를 내는 데 장장 12시간이 걸렸다. 한바탕 소동을 벌인 후 우리는 드디어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곰탕 맛이 어땠느냐고? 한국에서 먹던 그 맛 그대로였다. 소꼬리 앞에서 그만 진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사우바도르 앞바다에서 혹등고래를 만났다. 출산을 앞두고 연안으로 돌아오는 7~10월이 관찰하기 좋다.
바히아 바다는 유명한 고래 출몰지역이다. 7~10월 남극 혹등고래가 출산을 위해 바히아 연안으로 몰려온다. 한번은 배를 타고 고래 관찰 투어에 나섰다. 2시간 넘게 파도를 넘나들며 고래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뱃머리에서 가이드의 고함이 들렸다. 곳곳에서 ‘우와!’ 하는 감탄사가 터졌다. 혹등고래였다. 기차 한 량만 한 혹등고래가 바다 위로 솟구쳐오르고, 새하얀 파도가 터지는 장관 앞에서 우리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너무 순식간이고, 압도적이라 카메라도 제대로 들지 못했지만, 그 순간의 감동과 떨림 만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백종민 [email protected]
브라질 유일의 해상 요새 ‘상 마르셀루’가 사우바도르를 지키고 있다.
사우바도르 한 달 살기
박경민 기자
비행시간 : 30시간 이상(상파울루에서 국내선 환승)
날씨 : 365일 무더운 열대우림기후
언어 : 포르투갈어
물가 : 외식·교통비는 한국과 비슷하나 농수산물은 저렴한 편
숙소 : 500달러 이하(집 전체, 주택)
여행작가 부부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작가 부부이자 유튜버 부부.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고, 그 경험의 조각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서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마흔여섯 번의 한 달 살기 후 그 노하우를 담은 책 『여행 말고 한달살기』를 출간했다. 지은 책으로 『사랑한다면 왜』 『없어도 괜찮아』 『출근하지 않아도 단단한 하루를 보낸다』 등이 있다. 현재 미니멀 라이프 유튜브 ‘띵끄띵스’를 운영하며 ‘사지 않고 비우는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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