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달러에 날개 단 유로화…4년 만에 최고 수준
수출업체엔 악재·저물가 우려도
"유로 더 강해지면 자멸적"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으로 안전자산으로서 미 달러화의 지위에 의구심이 제기되면서 유로화 가치가 치솟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유로화 가치는 올해 들어 달러 대비 11% 넘게 상승하며 1.18달러까지 올랐다.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유로화는 미 달러에만 강세를 보이는 게 아니다. 일본 엔화나 영국 파운드화, 캐나다달러화, 한국 원화에 대해서도 거의 기록적인 수준까지 가치가 상승했다. 유로의 강세가 달러의 약세만을 반영하는 게 아니란 뜻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글로벌 유로'의 순간이 왔다며 유럽 국가들에 유로의 위상을 확고히 하기 위한 행동을 촉구하기도 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당시 "국제 질서의 심오한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며 그 한 사례로 국제 금융 시장에서 달러의 지배적 역할이 불확실해졌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유로의 부상은 2022년 7월 유로화 가치가 1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던 것에 비춰보면 대반전이다. 당시 유로화 급락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위기 우려와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따른 공포 때문이었다.
다만 유로 강세가 유럽 경제에 좋기만 한 것은 아니란 우려가 경제학자와 기업 경영자들 사이에서 나온다고 NYT는 전했다.
통화 가치 상승은 우선 수출업자에게는 악재다.
유럽 수출업계는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로 고전하고 있다. 통화 강세는 해외 시장에서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려 중국 업체 등과의 경쟁을 한층 격화시킨다.
유럽의 주요 수출기업들은 이미 강(强)유로의 부작용을 경고하고 있다. 최근 유럽의 시가총액 1위 기업에 오른 소프트웨어 업체 SAP는 유로 환율이 1센트 오를 때마다 매출이 3천만유로(약 490억원) 감소한다고 밝혔다.
스포츠의류업체 아디다스도 강유로가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했고, 트럭 제조업체 다임러는 유로 환율의 출렁임이 실적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밝혔다.
크레디 아그리콜 은행의 발렌틴 마리노브 통화전략가는 "유로가 더 강세를 보인다면 자멸적일 것 같다"고 말했다.
유로 강세는 지나치게 낮은 물가 상승률(인플레이션)로 이어질 수도 있다. 수입 물가 하락의 영향이다.
에너지 가격 인플레로 수년간 물가와 씨름했던 ECB는 내년도 인플레가 목표치인 2%를 밑도는 평균 1.6%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런 저물가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로존은 오랜 기간 저물가에 시달리며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유지하기도 했다.
유로 강세가 앞으로도 계속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블룸버그가 분석가들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선 강세가 지속돼 내년에는 유로당 1.21달러까지 올라갈 것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마리노브 전략가는 이는 너무 앞서나간 것이라며 내년에는 환율이 1.10달러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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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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